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조선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선언했다. 2024년을 맞는 ’신년인사‘치고는 역대급 위협이다. 집권 후 가장 강도 높은 이 발언은 작년 12월 30일 열린 노동당 전원위원회 5일 차 회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조선중앙통신이 섣달 그믐날 보도했다. ‘남조선 평정’에는 핵 무력 사용도 주저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포함되어 있다. 지난 30여 년에 걸쳐 노력해 온 북한 핵 저지가 물거품으로 변하는 순간인 동시에 윤석열 부와 워싱턴⁃도쿄가 구축한 동북아 안보 전략 역시 중대한 국면을 맞았다.
남북 상황이 이처럼 최악의 사태로 번진 것은 문재인-트럼프가 ‘북한 비핵화와 평화 협정’에 함몰된 것이 대북정책 약화로 비친데 따른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또 우크라이나와 힘겨운 전쟁을 치르는 러시아에 포탄 등 무기류를 제공함으로써 푸틴을 등에 업고 친중에서 친 러시아로 노선이 바뀐 것도 ‘큰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푸틴 역시 최근 금수 품목을 늘인 한국에 보복하겠다고 밝힌 바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남북 관계는 1953년 7월 정전협정 이래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남관계는 적대적인 전쟁 중인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 되었다’고 밝힘으로써 그동안(적어도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남북을 동족 관계, 동질관계로 오판했음을 스스로 고백한 셈이 되었다.
올해, 2024년은 북한의 강경한 대남 위협이 아니더라도 지구촌은 사상 가장 뜨거운 해다. 한국의 총선거(4월), 미국 대통령 선거(11월), 대만 총통 선거(1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3월), 유럽 의회 선거(6월) 등 76개국 40억 명이 선거를 치른다. 러시아 침공으로 야기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3년째로 접어들었고 이스라엘의 하마스 토벌 작전도 해를 넘기게 되었다. 또 예멘의 후티 반군은 홍해 항해를 위협하는 등 전쟁과 테러, 그리고 선거로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상태다. 털끝 하나 잘못 건드리면 불꽃이 튀어 오르는 일촉즉발 상황이다.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김정은이 ‘남조선 영토 평정’을 공언한 것은 나름대로 노리는 점이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 김정은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다. 만약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의 주인공이 된다면 미국 대외 정책은 거의 180도 바뀌게 마련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사실상 ‘2차대전 전후 질서’가 끝났음을 뜻한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종식으로 세계는 미국 일극(一極) 체제로 바뀌었으나 중국의 급성장과 푸틴의 야심이 실린 러시아팽창 정책에 제동을 걸만한 ‘새로운 질서’는 확립되지 못한 상태다. 러시아와 중국이 브릭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회원국 간의 해킹 방지책의 하나로 양자(量子)통신 시험에 열을 올리는 것 역시 ‘새로운 질서’확립에 대비한 자기편 확충이 목적일 것이다.
현재 세계는 친서방국가가 30%, 친 러시아 중국 국가 30%, 중립이 30%로 삼분되어 있다. 특히 개도국과 신흥국으로 구성된 이른바 ‘사우스 글로벌’을 어느 정도 끌어들이느냐에 따라 판도가 달라진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이 4~5월로 예상되는 인도 총선에 신경을 집중하는 이유다. 현 모디 총리의 재집권 여부가 관심의 대상이다. 이는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미 성향의 민진당이 재집권하면 전쟁이 날 수도 있다는 설을 흘리는 것은 중국이 그만큼 답답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중국은 이미 지난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댓글 공작으로 개입한 전력이 있다.
현재 세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하마스, 예멘 반정부 단체 후티의 홍해 항해 방해 등 세 개의 전장이 불을 뿜고 있다. 이 세 전쟁을 감당하는 핵심세력은 미국이다. 만약 김정은의 공언한 것처럼 한반도와 대만 해협 중심으로 새로운 전선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이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느냐가 문제로 떠 오른다. 우크라이나처럼 한국이나 대만은 우방국 도움 아래 독자적으로 전선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국가 안전을 지켜주는 전쟁을 대신 해 줄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총선거를 앞둔 한국의 선택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지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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