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입은 우리 방위산업 수출에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효과를 불러왔다. 전쟁이 격화되자 이웃 나라이자 러시아(소련 포함)의 핍박을 받아 온 폴란드가 30조 원 규모의 한국산 무기 수입을 결정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폴란드의 수입 규모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는 한국 수출입은행의 수출금융 한도를 넘어선 것이라는 점에서도 읽을 수 있다. 국회서 수출입은행법 개정 (수출금융 한도 확대) 표류로 ‘말로만 끝날’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시중 4대 은행과 농협의 신디케이트 론 방식으로 일단 실마리를 풀었다. 폴란드가 이처럼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방산 수입을 결정한 것은 러시아가 조성한 위기도 위기지만, 세계서 폴란드가 원하는 수준의 품질을 원하는 기간에 납품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을 제외하면 한국뿐이라는 현실 때문이다.

폴란드의 이러한 대담한 수입 결정으로 한국은 세계 방산시장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폴란드의 수입은 K2전차, K9 자주포, FA 전투기, 다연장 로켓 천무 등 함정을 제외한 전 품목에 걸쳤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품질을 보장하면서 단기간 안에 납품할 곳을 찾아낸 폴란드가 스스로 행운이라고 말할 정도다. 이뿐만 아니다.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인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으로 발발한 가자지구 전쟁이 중동 전체, 이슬람권까지 말려들 개연성이 높아지자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UAE) 역시 한국 방산 고객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중동 방문에서 돌아온 신원식 국방장관은 한국판 패트리엇 (PAC3)으로 불리는 대공 방어체계 M⁃SAM⁃Ⅱ(천궁Ⅱ)를 UAE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와도 수출계약에 성공했음을 밝힌 바 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 여러 나라와 잠수함과 호위함 중심의 해군 설비 수출도 활발하다. 중동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해상무기와 장비는 유럽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우선 동남아 시장 개척에 성공한 의미는 가볍지 않다. 특히 북한이 3000톤급 잠수함인 김군옥영웅함 건조를 자랑하고 있으나 이는 1950년대 소련 디젤 잠수함을 개량한 것임으로 기술력에서 한국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핵잠수함 보유국(미 러 영, 불, 중, 인도)을 제외하면 재래식 잠수함에서는 한국이 선두임과 다르지 않다. 남미 7개국도 보유하고 있는 노후 잠수함 20척을 대체할 공급선으로 한국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중동 여러 나라도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한국 방산이 이처럼 세계시장의 주목을 받는 것은 신원식 국방장관이 말한 것처럼 ‘독자성, 가성비, 현지화와 통합체계’의 장점을 골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관민 일체로 다져 온 이른바 군민 양용 체제 (듀얼 유스)의 성공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스타트업 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거의 실시간으로 적용하는 것도 한국 방산의 강점으로 꼽힌다. 예를 들면 위성사진을 인공지능(AI)으로 분석, 미세한 변화도 읽어내는 다비오(Dabeeo)의 기술로 북한의 핵실험 준비 동향과 미사일 발사 징후를 파악하는 것 등이다.

한국 방산의 급속한 발전을 세계 방어를 책임지고 있는 미국이 놓칠 까닭이 없다. 지난달 12일 발표한 ‘국가 방위산업 전략’문서는 유사시에 대비, 원활한 무기 생산과 조달을 위해 아시아 각국과 협력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자는 제안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구상 배경에는 중국의 군비 강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30년간 조선과 희토류, 전자기가 등 중요 분야에서 세계적 산업 강국으로 부상했다는 것이 미국의 시각이다. 중국의 산업 생산 능력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주요 국가를 합친 것보다 크다는 경고도 이 문서에 담겨 있다.

미국이 제안한 아시아 방위산업 협력체제 모델은 우크라이나 지원 체제다.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러시아 침입 이후 거의 50개국 국방담당 고위층과 정기적 회담을 이어왔다, 방공 시스템을 비롯하여 탄약 보금 무기 증산 등이 주요 의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바라는 아시아 방산 협력체제는 궁극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이다. 러시아까지 북한 핵실험을 앞세워 압박을 가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한국의 선택지는 이미 정해진 것과 다르지 않다. 이를 계기로 우리 방산의 기술력을 높이고 시장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유일한 선택일 수도 있으며 이것이 바로 국가 안보의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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