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루어진 2024년도 예산안과 관련된 윤석열 대통령의 시정 연설은 획기적인 정치 이벤트가 될뻔했다. 작년엔 본회의 참석을 거부했던 이재명 민주당이 ‘흔쾌히’ 참석한 점은 긍정적인 측면이었으나 양당 지도부와 국민이 기대했던 ‘협치’ 기반을 다지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아쉬움으로 끝났다. 말하자면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안겨준 것이 대통령 시정 연설에 ‘참여’한 민주당의 정치적 이벤트의 대차대조표라는 뜻이다.
시정 연설 전에 국회의장실에서 이루어진 5부 요인, 여야 지도부와의 환담 자리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이재명 대표와 짧은 인사말과 악수가 교환되는 등 ‘화기로운’ 분위기가 조성된 것으로 보도되었다. 또 연설을 마친 뒤 국회의장을 비롯한 여야 원내대표, 상임위원장 17명과의 오찬도 ‘역대 최초’라는 평가와 여야 원내대표의 덕담이 오가기도 했다. 물론 대통령이 국회에 들어올 때 민주당 의원들의 피켓 시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연설 도중에 고성이 오가는 따위의 볼썽사나운 꼴은 없었다. 따라서 국민의 당 원내대표의 ‘같은 배로 강을 건너는 동주공제(同舟共濟)’나 민주당 원내대표의 ‘서민과 중산층의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덕담의 시효가 적어도 정기국회 내내, 아니면 적어도 예산안 심사 동안만은 이어질 줄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시정 연설을 마친 대통령이 본회의장을 떠나기 전, 민주당 소속 의원 자리를 몰면서 악수를 청할 때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재명 대표는 일어났다) 예의를 갖추기는커녕 악수 자체를 외면한 의원이 적지 않은, 일종의 옹졸함을 과시함으로써 빗나가고 말았다. 특히 악수를 청한 대통령에게 ‘이제 물러나세요’라는 말로 스스로 품위를 깎아내린 의원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대통령과 악수를 하면서 ‘민생에 신경을 써달라’고 한 이재명 대표까지 예산안을 비판하면서 ‘이런 것을 조삼모사(朝三暮四)라고 하며 국민을 원숭이로 보는 것‘이라고 독설을 쏟아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시정 연설에서 ’문 정권 비판‘을 모두 뺌으로써 그동안 야당의 ‘모든 것이 문 정권 탓이냐’는 비판을 수용함과 동시에 ‘협치 소통’요구에도 유연성을 보였다. 이러한 자세 변화를 민주당은 자신들의 승리로 판단한 것일까, 오히려 더욱 기세를 올린다. ‘민생 운운’하던 이재명 대표가 하루 만에 원숭이를 들먹이며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이나 재정을 풀어 3% 성장을 달성하자는 ‘정책 대안’은 아직도 ‘소주성(소득주도 성장)’, 통계조작 의심을 받는 부동산 정책, 의사단체가 반대한다고 해서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포기한 무책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절대 과반수를 확보했으면서 연금개혁에는 손도 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야당으로 전락한 지금 공을 들이는 ’노랑 봉투법‘등은 집권 기간에는 제대로 거론조차 못 하지 않았는가.
윤석열 대통령의 전 정권 탓은 그만큼 물려받은 짐이 벅찬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무작정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당시 집권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자기 비판할 것은 엄중하게 비판하고 사과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당과 지도자의 도리다. 이를 실천할 용기가 없다면 입을 닫아야 한다. 아무리 단식을 하더라도, 또 강성 열성 당원 (이번은 개딸)의 지지가 높다 하더라도 이러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정치지도자로 자부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교수신문은 해마다 연말이면 새해에 대한 기대를 담아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2009년에 선정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은 기원전 6세기 중국 공자의 논어 자로(論語 子路)편에 나온다. 그로부터 2천 5백여 년이 흐른 지금도 화이부동은 실현되지 못한 영원한 수수께끼 아니면 킬러 문항으로 남아 있다. 그동안 이에 대한 해석도 구구하여 공자의 본뜻이 무엇인지 아리숭할 정도다. 가장 간략하게 풀이하면 같지 않더라도 화합하는 것이 군자이며 같더라도 화합을 못 하는 동이불화(同而不和)를 소인배로 분류한다.
자기가 한 말을 돌아서서 부인하는 정치지도자가 활개를 치는 지금, 우리 정계는 군자의 화이부동인가, 소인배의 동이불화인가. 이에 대한 자기반성 없이 협치를 논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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