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8세 이상 60세 미만 국민이면 누구나 가입해야 하는 것이 국민연금이다. 따로 연금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 공무원, 군인, 공사립 교직원을 제외하면 전 국민의 노후를 보장하는 ‘복지’의 주춧돌이다. 그래서 ‘나라가 망하지 않는한, 연금은 반드시 받는다’는 캐치프레이즈로 홍보를 한다. 그러나 나라가 망한 것이 아닌데도 연금은 고갈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1월 발표된 ‘제5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는 (이 상태로라면) 2055년엔 기금이 고갈된다고 했다. 현재의 납부액으로는 출산율 격감과 노령인구 증가에 맞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연금개혁을 서둘기 시작했고 국회 역시 연금특별위원회를 구성, 논의에 들어갔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치근 국민연금에 두 가지 ‘의미 있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하나는 오는 7월부터 연금 납부액을 6.7% 올리기로 한 것과 2022년 연금 운용실적이 -8%나 된다는 점이다. 납부액을 25년 만에 최대규모로 인상한 것은, 그러나 연금개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년 7월까지 1년간만 적용하는 것인 데다 더 낸 만큼 받아갈 돈도 그만큼 증가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나마 수익을 올리던 연금 운용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복합요인이 작용한, 따라서 국민연금만의 책임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나라 연금 손실 (마이너스) 폭에 비하면 선방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일본의 GPIF는 –4.8%, 캐나다 CPPIB는 –5.0%다. 국민연금 마이너스율의 절반 또는 3분의 2수준이다. 어쩌면 이것은 자금 운용 실력 차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연금개혁에 나선 국회의 특별위원회는 제대로 된 초안을 내어놓지 못한 채 ‘구조개혁의 필요성만 강조’하는 수준의 결과를 제시할 모양이다. 결국에는 오는 3월에 확정될 재정 추계 결과를 보고 정부가 10월까지 제5차 종합운용계획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5차 계획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해 온대로 임시변통에 지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지금 국민연금은 기금고갈을 향해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이나 다르지 않은 위기상황이다. 그런데도 근본적인 개혁안 마련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지 않고 있다. 기금고갈이 예상된다는 2055년은 32년 뒤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 사회 허리역을 담당하고 있는 4050세대 대부분이 은퇴한 뒤다. 따라서 얼렁뚱땅 시간만 떼우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안일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안일한 생각이라면 2017년 국민연금공단을 전주로 이전시킨 문재인 정부를 따를 자가 없다고 본다. ‘전주를 금융도시로 육성’한다는 약속은 처음부터 부도를 예상한 것이지만 연금 재정안정에 대한 경고가 나온 2018년에 전혀 손을 쓰지 않아 그 부담이 이번으로 넘어왔다. 전주를 금융도시로 육성하지 못하게 되었다면 연금공단 본사 직원에 대한 배려라도 해야 할 문재인 정부는 그것조차 방치한 때문에 인력난을 유발한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전주 이전이 얼마나 설득력이 없는 것인지는 당시 외지(外紙)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한 논평에서도 읽을 수 있다. 중앙기관의 지방 이전이 지방 살리기를 돕는 결정타라는 주장에 따라 많은 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투자기관이라는 특성상 지방 이전 효과는 거의 없다. 현재 국민연금 운용방침을 최종결정하는 ‘기금운용위원회’에 투자 전문가가 한 사람도 없게 된 이유가 바로 지방 이전에 따른 근무환경과 생활기반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데 있다. 투자 전문가라면 전주에 상주해서는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다. 자본 시장과 접촉면을 넓혀, 사람과의 접촉이 빈번해야 시장흐름과 투자 관련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투자 전문가가 전무한 상태에서 –8%를 기록한 것은 운 좋은 선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운에만 맡겨둘 수는 없지 않은가. 때문에 정부는 개혁에 가속도를 내는 동시에 당장 전문인력 확보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정부까지 국민연금 고갈 카운트다운을 방치한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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