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1999년 11월, 합법화된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민노총의 위기는 곧바로 한국 노동운동의 위기와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는 노총에서 볼 때 그렇다는 뜻이다. 그러나 제3 자의 눈에는 하나의 변곡점으로 비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변곡점이 되었건 위기가 되었건 민노총 자신도 상당한 압박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말마다 거의 빼지 않고 벌여 온 반정부 시위가 최근엔 평일에도 서울 도심의 퇴근길 차도를 가로막고 나선 것이 그 증거다.
민노총의 위기는 그동안, 창립 (1995년 11월)이래 18년 동안 투쟁 이력을 쌓는 과정에서 벌여 온 불법 또는 법규를 교묘하게 해석한 줄타기가 더이상 용납되지 않는 임계점에 이른 데서 비롯된 것이다. 시각에 따라서는 민노총의 이러한 위기, 또는 변곡점은 민노총 자신이 유발한, 따라서 그 책임 또한 민노총 자신에게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민노총에 쏠리고 있는 ‘법의 칼’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북한과의 은밀한 접촉. 이는 당연히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사안이며 간부 4명의 구속 기소로 일단 매듭이 지어졌다. 남은 것은 법의 심판뿐이다.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사안으로는 건설노조도 있다. 타워 크레인을 앞세워 건설현장의 장비와 인력배치를 마음대로 한 그들을 건설현장 관계자들은 ‘조폭 이상의 행패’, ‘건폭’이라고 성토한다. 1백 18개 사로부터 무려 1천6백 80억 원을 갈취한 사실이 밝혀졌을 정도로 건설노조는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건설노조 간부가 구속에 이어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있던 강원지역 간부가 항의로 분신자살한 사건이 터졌다. 이른바 민주화 투쟁의 진보세력은 극단적 투쟁의 한 방편으로 분신을 선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아마도 경제개발을 강행해 온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노동자 기본권 확립을 내세우고 분신한 전태일 열사를 본보기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전태일을 열사로 추앙하는 것은, 그가 자신의 목숨을 노동자 기본권 확립을 위해, 다시 말하면 ‘멸사봉공(滅私奉公:공을 위해 사를 버린다는 뜻)한 숭고함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분신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숭고함을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번 민노총 간부의 분신은 영장 실질심사를 앞둔 시점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억울하다면 영장 담당 법관 앞에서 당당하게 주장하면 되는데도 이를 마다 히고 분신한 것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 두고 민노총과 진보당 관계의 정치적 성토가 울림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진보당 대표는 건설현장에 출근한 것처럼 꾸며서 일당을 챙겨온 전력이 있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으로부터 받은 지령이 무려 90건이나 되는 보안법 위반사건이다. 간첩 사건에 민노총만큼 당당한 집단이 또 있을까 할 정도로 민노총은 이를 계기로 윤석열 대통령 퇴진 운동에 나섰다. 보안법 위반사건(간첩) 수사와 노동권 지키기가 무슨 상관인지, 또 그것을 대통령 퇴진으로 연결하는 논리적 근거가 무엇인지부터 밝히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지금까지 밝혀낸 민노총과 한노총의 바르지 못한 행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오죽했으면 정부의 노조 지원금을 내년부터 대폭 삭감하려 드는 것일까?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복원과 함께 노동 개혁을 최대의 현안으로 꼽고 있다. 민노총이 사사건건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배경이다. 민노총은 이처럼 정부와 맞서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 전에 진보계열의 원로 정치학자 최창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한 강연에서 지적한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진보와 보수 간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 되면서) 여러 영역에서 중첩되면서 민주주의의 안정적 운영을 위협하게 되었다’
촛불 지분을 챙긴 민노총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지금은 투쟁에 나설 시점이 아니라 지난 18년간의 투쟁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극단적 ‘이기 권력 집단’으로 전락한 반성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것이 사회 상식이자 도리이며 민노총이라고 예외가 될수는 없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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