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대한상공회의소가 마련한 제주포럼에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기득권이 신산업으로의 전환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총재 자신도 밝힌 것처럼 단기적인 거시경제 안정이나 인플레이션 제동 등이 한국은행이 할 일이다. 따라서 이번 포럼에서 이 총재가 신산업으로의 전환을 위한 구조조정 등은 중앙은행 몫이 아니다. 그런데도 간곡히, 듣기 나름으로는 ‘긴급동의’와 다름없는 기득권을 성토한 것은 우리 경제의 당면 과제에 대한 답답함 때문일 것이다.
지금 세계 경제는 새로운 냉전 시대에 접어든 것으로 보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소련과 중국, 그리고 북한을 중심으로 한 전제 국가 대 민주체제 자유시장 경제를 공통의 가치로 삼는 한국을 비롯한 미국, 유럽연합, 일본 그리고 태평양 연안 국가의 대결 구도는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음을 본다. 이를 상징하는 변화가 바로 미국과 중국의 교역 규모 감소다. 미국 상무부 무역통계를 근거로 작성한 올 1~5월 대중국 수입은 6백 90억 달러,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3.4%로 작년 대비 3.3%포인트 줄어 멕시코 캐나다에 이어 3위로 쳐졌다.
이처럼 실물경제에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는 중국 변수가 한국경제라고 예외일 수가 없다. 오히려 지난 10여 년 동안 대중국 수출 호조에 감각이 무디어져 대비에 소홀했다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제주포럼에서 지적한 것 역시 대중국 정책의 소홀로 인해 신산업 개척 속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변수, 전제 국가 대 자유국가의 대립에 따른 경제의 신냉전 시대라고 하더라도 세게 최대 시장인 중국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배제할 수는 없다. 대중국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미국조차 고위급접촉을 통해 ‘대결과 소통’ 양면 정책을 쓸 정도로 비중이 막중하다. 따라서 대중국 수출 부조로 무역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한국 사정은 더욱 절박하다고 봐야 한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미국과 중국 갈등에 대비,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제4의 경제 블럭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그러나 중국이라고 해서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과 완전한 단절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새로운 경제 냉전이 심화 될수록 경제력을 앞세워 정치적 양보를 얻어내려고 할 것이다. 이는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그 대상은 지정학상 한국과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이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 대학의 시로 암스트롱 교수는 ‘워싱턴과 북경은 상대방의 이익이 곧 자신의 손실이라고 보는 전략에 근거하여 이들 국가에 양자(미중)택일을 강요하는 시대’라고 지적한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이나 일본 등이 미국과 중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중국 변수를 현실적으로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특히 중국은 희토류를 비롯하여 첨단 산업에 필수적인 자원 대국이다. 중국이 이를 공급하지 않는, 다시 말해서 중동 산유국이 석유 수출을 중단하는 것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세계 질서 안에 묶어 둘 필요가 있다. 물론 중국은 국제 룰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경향이 없지 않음으로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은 야오위다오 (일본명 센가쿠열도) 영토분쟁으로 한때 희토류 수출을 중단했으나 일본이 제소한 WTO에서 패배한 전력이 있다. 이는 세계 최대무역국인 중국이 다국간 무역 시스템의 이해관계를 완전단절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입증한 대표적 사례의 하나로 꼽힌다. 특히 미국이 탈퇴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TPP) 가입을 신청한 것 역시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당장은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지적한 것처럼 신산업으로의 전환을 가로막고 있는 기득권 개혁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교수들의 이기심 때문에 시대가 요구하는 부문의 대학 정원을 묶어두는 것을 비롯하여 강성 노총 때문에 기업이 정년 조정이나 인력 수급에 따른 해고와 임용의 재량권이 제한되는 사태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아무리 대외 환경이 개선되더라도 자체 경쟁력이 없다면 모두 허사이기 때문이다. 중국 변수, 경제의 신냉전을 말하기 전에 고도성장의 열매를 독식하려는 기득권부터 혁명하는 각오로 개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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