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공무원을 북한군이 총살, 소각한 사건에 대한 이른바 ‘진상 규명’이 정파적 이해충돌로 변형되는 상황은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초기 단계서 정부 의 대응이 신속하고 정상적이었다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사건이고 설령 북한군의 과잉 반응으로 사건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국민이 납득할 수준에서 적절하게 수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그래서 2년이 지난 지금 정권이 바뀐 상황에서 이슈로 등장하게 만든 1차적 책임은 당시 집권자인 문재인 정부에 있다. 특히 유가족이 청구한 정보공개 요청을 법원이 받아들이자 즉각적으로 고법에 항소, 시간을 번 다음 임기가 끝나자 관련 기록 전부를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 30년간 봉인한 책임은 (부정적 의미에서) 가히 역사적인 무거움과 함께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다.
지금까지 여당(당시 야당)인 국민의 힘 진상조사 TF는 문제점을 여섯 가지 의혹으로 요약했다. ⓵국방부가 서면보고 했으나 문재인 대통령은 구조 지시를 하지 않았고 ②남북통신선이 끊겨 대응이 어려웠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며(판문점 채널은 교신 가능) ③이대준씨 사망을 하루 동안 은폐했고 ④북의 ‘시신 소각 만행’발표를 ‘추정’으로 번복 ⑤ 문 정부가 ‘월북’으로 단정했으나 북한 통신에는 단 한 번만 ‘월북’이라는 단어가 등장 ⑥월북 증거로 슬리퍼 구명조끼 착용을 들고 있으나 방수복 미착용은 누락 등이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해경에 찾아와서 상당한 압력을 가했다는 주장도 나왔으나 그 행정관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당의 진상 규명을 계기로 해경청은 당초 발표를 번복, 월북 증거가 약한 점을 들어 대국민 사과와 함께 고위간부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는 점이다. 비록 반려는 되었으나 지휘부 전원이 사표를 낼 정도라면 해경이 이번 상황을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느냐를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일부 야권이 주장하는 대로 정치적 흠집 내기 또는 신색깔론이라면 당시 기록을 샅샅이 공개하면 깨끗하게 의혹을 해소할 수 있다. 여기에는 대통령 기록물로 봉인된 것도 포함이 된다. 더불어민주당이 협력하면 국회 재적 3분의 2 찬성으로 봉인을 해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말꼬리 잡기 정쟁으로 상황을 왜곡시킨다면 결국 북한만 즐거운 상황을 연출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북한에서 귀순한 어부를 단 이틀 만에 북한으로 되돌려보낸 사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에는 북한과의 교신이 그처럼 원활했는데 유독 해수부 공무원 실종 때는 대통령이 대응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 어쩌면 영원한 숙제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의혹은 시간이 흐르면, 최악의 경우 대통령 기록물 봉인이 해제되는 30년 뒤에는 해소될 것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 주류인 동시에 더불어민주당 핵심이 86세대의 인권 인식의 변화, 또는 타락이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고인의 아들이 보낸 편지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절절한 마음을 담아 위로하면서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그뿐이었다. 그 학생의 부르짖음은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신축한 양산 사저에서 채소 가꾸기, 등산, 그리고 반려견과의 망중한을 즐기는 그 시간, 그를 지키기에 앞장선 더불어민주당 핵심인사의 관련 발언은 그들이 과연 인권과 민주화 투쟁에 젊음을 바친 이른바 386세대인가를 의심하게 만든다. 다시 말하면 386이 권력과 그에 부수된 부를 향수 하면서 ‘성장’한586의 민낯을 보여준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북한의 사과도 받았는데 월북 의사 여부가 왜 중요한가? 지금 그것(진상 규명)을 할 때인가? 민생이 심각하지 않는가?’고 했으며 설훈 의원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했다가 취소했다. 이들은 386세대의 핵심이며 그 투쟁 경력으로 다선 국회의원이 된 중진들이다. 이들은 학창시절 위장 취업 등으로 인권과 민주화에 온몸을 바쳤다. 386세대는 박정희의 경제 개발을 인권을 무시한 비민주적 행태라고 해서 인정하지 도 평가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민생이 심각하다’고 월북 프레임 여부 조사를 비판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박정희 시대는 춘궁기가 되면 수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시대였다. 당시의 민생과 지금의 민생은 심각성과 절박성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런데도 인권문제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여겨 민생을 앞세우는 것을 일종의 도덕적 파탄으로 본다면 불같이 화를 낼 것인가? 그렇더라도 86세대의 이러한 변신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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