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부 권한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키로 한 ‘중앙⁃지방협력회의’의 결정은 ‘지방자치 시대 시즌 2’로 보아 마땅하다.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방정부 중요성에 대해서는 제가 여러분보다 더 혁신적’이라고 말한 것에서 읽을 수 있듯이 현재 인구 이탈 후유증이 지방자치단체는 말할 것도 지역 자체의 존립까지 위협할 정도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문제는 어제오늘 갑자기 심각하게 대두된 것이 아니라 경제개발 성공으로 도시화의 급격한 전개에 따른 피할 수 없는 흐름이며 따라서 역대 정부, 경제개발을 시작한 박정희 정부부터 지방 지키기에 힘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성과는 기대 이하임을 현재 우리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현실이 증명하고 있다.
대표적인 지방 살리기 정책으로는 행정수도와 공공 기관의 지방 이전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가시적 전시효과를 앞세운 정권홍보에는 성과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실질적인 지방 지키기에는 역부족임을 알리는 데 그쳤다. 세종시에 행정수도를 건설, 중앙부처 대부분이 옮겨갔고 국회 분원과 대통령 집무실도 마련한다는 계획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세종시 근무 공무원 상당수는 단신 부임이며 주말이면 서울(또는 가족 거주지역)로 올라간다.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 기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말하자면 행정수도나 지방으로 간 공공 기관은 공공 기관대로, 근무자는 근무자대로 ‘외딴 섬’처럼 고립되었을 뿐 그 지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을 비롯한 문화생활 인프라가 없기 때문이다. 화학적 융합 없는, 정책에 따른 지방 이전은 결국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행정적 비용’지출만 증대시킬 뿐임을 가르쳐주고 있다.
행정수도를 비롯한 유력한 공공 기관 이전만으로는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결정적 원인은 지역 특성에 맞는 발전 동력 확보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 데서 찾아야 한다. 경제개발에 시동을 건 1960년대만 하더라도 각 지역은 나름대로 ‘지역축제’ 활성화를 통한 주민 결합 동력 확보에 일단은 성공했다. 경주와 대구를 중심으로 한 ‘신라 문화제. 부여 공주의 ’백제문화제‘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이러한 축제보다는 산업화 진전에 따른 경제적 열매가 집중되는 서울 수도권이 훨씬 현실적이고 윤택한 삶의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또 산업인력 확보 차원에서 농어촌 인구, 특히 젊은 인구의 수도권 유입을 막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민주화 이후 지방자치제 도입 역시 지방 지키기의 유력한 정책적 도구라는 발상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아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지방자치는 명목 차원에 그칠 뿐 ‘실절적인 자치’는 중앙정부의 규제 범위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경제적인 자립도가 낮은 현실에서 막대한 예산권(지방교부금 등)을 쥔 중앙정부의 ‘지도’는 거부할 수 없는 절대 명제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지금까지 지방자치단체의 사업과 정책은 단체장의 선거대책과 중앙정부 눈치 보기 차원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지방특성이 아니라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경쟁을 염두에 둔 ‘비슷한 사업, 비슷한 아이디어’로 예산만 낭비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이번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중앙정부의 주요 권한 57개를 지방에 이전하기로 한 것은 ‘지방자치 시즌 2’로 평가할만한 한 아주 획기적인 결단이다. 국토개발권(그린벨트 해제권)의 확대를 비롯하여 농지전용허가권, 환경영향평가권의 우선순위 제공, 고용 분야, 지방대학 발전을 중심으로 한 교육 분야 등, 이번 권한 이양이 순기능을 발휘한다면 각 지역은 특성에 맞춘 발전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생각하지 못한, 또는 생각은 했어도 실행하지 못한 것을 행동에 옮긴 결단으로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문제는 이양되는 권한을 자치단체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하는 견제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서울의 경우 오세훈 시장 후임인 고 박원순 시장의 ‘오 시장 지우기’와 오 시장 컴백 이후 ‘전임자 지우기’와 같은 사례가 다른 지역에서 반북 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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