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李克强)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망(10월 27일)으로 시진핑 중국은 ‘보이지 않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리커창의 고향인 안후이성(安徽省) 수도 허페이(合肥)시 중심가인 홍싱로(紅星路)에는 조화 행렬이 3백 미터에 이를 정도였으며 이틀 동안 1만 명 이상의 조문객이 몰렸다. 당국은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사회관계망(SNS)에 올리지 말라고 권고할 정도로 신경을 쓴다.
이미 리커창 추모 관련 검색어도 SNS서 뒤로 밀렸거나 사라진 상태다. 시진핑 중국이 이처럼 신경을 쓰는 것은 리커창 죽음이 덩샤오핑(鄧小平) 이래 의 고도, 또는 안정성장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재 경제 상황이 나쁘지 않다면 리커창에 대한 추모 양상도 달라졌을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 못하다. 당국은 경제회복이 늦어져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층이 리커창 조문을 명분 삼아 반정부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번지는 것을 꺼리고 있다.
리커창은 시진핑 지도부에서 10년간(2013~2023년) 총리로 있으면서 중국경제를 고도성장에서 안정성장으로 연착륙시킨 장본인이다. 베이징 대학을 나와 공산당 청년조직인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제1서기를 거쳐 역시 공청단 출신인 후진타오(胡錦濤)의 후계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시진핑 지도부 발족과 함께 수상에 오른 그는 중국경제를 한 손에 쥐고 2015년 중국 주식 폭락에 따른 ‘차이나쇼크’와 철강 등 공급과잉 문제를 안정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의 경제정책을 한때 (리커창+이코노믹스) 리코노믹스 불린 배경이다. 그가 총리로 재임한 2013~2022년의 평균 성장률은 6.2%였다. 코로나 펜데믹과 수습, 부동산 불황 등 악재가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안정적 성장을 이끌어 시진핑이 ‘공동부유’ 슬로건을 내걸고 류하(劉鶴)를 부총리에 앉혀 거시경제 정책에 개입하는 발판을 만들어 준 것. 역대급 공적이 자신을 낙마시킨 역설을 낳은 것이다. ‘공동부유’정책은 이미 좌초한 것으로 판정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정치와 외교는 국가주석이, 경제는 총리가 맡아왔다. 그러나 2016년부터 시진핑이 앞에서 언급한 류하를 앞세워 경제에 개입함으로써 리커창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상하이 봉쇄 (록다운)등 실패가 거듭되자 2023년 5월 리커창이 다시 전면에 나서 고용중시를 앞세운 경기대책을 마련했으나 같은 달 전인대(全人代) 개막식에서 시진핑과 악수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사라졌다.
리커창의 완전한 퇴장은 경제뿐만 아니라 중국 공산당 내 힘의 균형도 무너지게 되었다. 중국 공산당은 공청단과 이른바 금수저인 당 간부 자녀 중심의 태자당이 핵심 기둥 노릇을 하면서 견제와 화합으로 당을 끌어왔다. 이번 리커창 총리의 사망으로 공청단은 중심 지도자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후계자도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 중국 공산당은 태자당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며 그 중심에는 역시 태자당 출신인 시진핑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리커창은 마지막 10년 동안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명언을 남겼으며 공산당과 정부가 태자당 중심으로 운용되는 이 시점에서도 14억 인민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일 것이다. 이 명언의 위력을 잠재우는 것이 시진핑 중국이 해결해야 할 최대과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리커창이 명언을 남긴 장면이 담긴 영상을 국영 중앙 텔레비전은 방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민간의 사회관계망(SNS)에서 전파되는 것도 견제하고 있을 뿐이다. 근본적 해결이 아닌 시간이 해결해 줄 것(잊혀지기)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리커창이 남긴 명언과 그 명언의 무대를 간략하게 메모한다.
*인민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하늘은 (빠짐없이)보고 있다(2023년 5월 전인대 마지막 인사말 마무리 발언)
*중국인 6억 명은 한 달 수입이 1천 위안(17만 원)이다. 이 돈으로는 도시 집세를 내기도 힘이 든다 (5월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
*양쯔강과 황허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長江黃河不會倒流) (2022년 덩샤오핑 동상에 헌화하면서 시진핑 경제정책 비판의 뜻을 담아)
어떻든 리커창 사망은 마오쩌둥 문화혁명의 폐허를 물려받아 중국을 되살린 덩샤오핑의 개방과 개혁, 그리고 시장경제 시대의 종막을 의미한다. 마오쩌둥-덩샤오핑 시대는 끝나고 ‘완전한’ 시진핑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것이 리커창의 죽음이다. 이로써 리커창이 다져온 중국식의 ‘거의(또는 유사) 시장경제 (Almost Market Economy)’도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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