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비 지원 사업에 대한 이미지@국립교통재활병원

정부의 ‘국민 간병비 부담 경감 방안’은 국민 피부에 와 닿는, 현실적인 정책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를 강조한 것이며 따라서 이제야 실천 단계의 세부계획을 제시한 것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 ‘늦은 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정부가 스스로 직무를 유기한 것은 아니더라도 그 중요성과 우선순위를 자의적으로 낮추어 왔다는 뜻이다. ‘득표’를 위해 세계10 위 권 경제 대국임을 자랑하면서 지방공항 따위에 재정을 낭비한 역대 정부가 조금만 정신을 차렸더라도 연간 10조 원이 넘는 간병비 부담에 허덕이는 가족의 짐을 덜 수 있었음을 생각할 때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이른바 웰빙과 웰다잉이 시대적 키워드로 등장한 지 오래다. 이미 노인의 기준을 현재의 65세에서 75세로 높였다. 1889년 독일이 노년 연금제도를 도입할 때 규정한 ‘65세 노인’이 1백 34년 만에 10년을 올려 ‘75세 노인’이 된 것이다. 지난 1백 년 동안 기대 수명은 두 배로 늘어났다. 이로 인해 경제학자조차 국가의 성공척도를 국내총생산(GDP)이 아니라 국내총행복(GDH:Gross Domestic Happiness)으로 보완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생명 추구권, 자유 추구권과 함께 행복 추구권을 보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추구권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선언적 의미일 뿐 국가가 이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일부 진보학계는 비판한다.

기아(飢餓=빈곤), 질병, 폭력(전쟁)은 인류의 숙명적 명제다. 중세 유럽 봉건제가 무너진 것은 흑사병(黑死病: 페스트)으로 인구의 절반이 줄어듦에 따라 지주계급이 몰락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유명하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당시 페스트는 흑사병(시체가 검게 변색한 데서 비롯된 표현), 콜레라는 청사병(시체가 청색으로 변한 데 따른 것) 등으로 부를 정도였다. 기아는 더 심했다. ‘20세기 중국, 중세의 인도, 고대 이집트 인이 기아의 대표적 희생자’라는 것이 유발 하라리 교수(히브리 대학 역사 인류학)의 주장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폭력(전쟁)과 기아는 상당히 줄었다. 2010년 현재 비만과 그 관련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3백만 명인 데 반해 테러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전 세계서 8천 명이 채 안 된다는 것. 한국이 보릿고개를 극복한 것은 불과 한 세대 전이다.

인류가 기아, 질병, 폭력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은 개인적 노력에 따른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적 시스템 덕분이다. 한국 역시 지난 1988년부터 국민연금 제도 도입을 비롯하여 건강보험도 실시하게 이르렀다. 그러나 관계법을 제정해 놓고도 실시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국민연금만 하더라도 ‘국민복지연금법’이 1974년 실시된 지 불과 열흘 만에 대통령 긴급조치로 효력이 정지된 것이 대표적 ‘진통’일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연금과 건강보험이 제 궤도에 들어선 것은 고무적인 발전이기는 하지만 이 ‘발전’을 담보로 정치권은 인심 쓰기의 포퓰리즘 도구로 이용하기 시작, 기금 낭비가 심했다. 만약 MRA(I)등 고가 진단 등 불요 불급 부문에 건강보험을 지원하지 않고 간병 등 수명연장에 따른 극빈 서민층 지원에 돌렸다면 상황은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간흘적으로 반복되는 선심용으로 전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75세 이상 노인의 52%가 빈곤층으로 분류된다. 또 노령층의 34.9%가 일을 하며 이 가운데 74%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다. 취업률 2위 일본은 25.1%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다. 여기에 저출산까지 겹쳐 운신의 폭이 날로 좁아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노인들의 고독사 증가는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웰다잉’은 꿈도 못 꿀 상황이다. 지금 80대 이상은 개발시대 주역으로 웰빙은 남의 일처럼 생소할 것이다. 그런 고난을 겪은 세대가 이제는 웰다잉도 못 누릴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간병비 경감 정책은, 따라서 고령화 저출산 사회에 걸맞게 의료복지의 패러다임을 새로 짜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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