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예견한 ‘상저하고(上低下高 : 상반기는 낮고 하반기엔 회복)’의 한국 경제에 느닷없는 중동 폭탄이 터졌다. 팔레스타인 무장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은 원유의 대부분을 중동에서 조달하는 우리 경제에도 직격탄이 죈다. 대통령실은 재빨리 ‘하마스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음’을 밝혔으나 불안이 여전히 남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감산으로 국제유가가 고공 행진을 하는 가운데 금리가 오르는 등 고물가 고환율이라 신 3고 악재가 겹치는 가운데 하마스 사태가 겹쳐 경제적 운신의 폭은 더욱 좁혀지고 있다.

 하마스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저하고’는 비록 속도는 처졌으나 이 예견이 맞아들어가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지난 8일 발표한 통계청의 8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생산과 소비 모두 전월 대비 성장세로 돌아섰다. 광공업 생산은 3년 8개월 만에 최대 증가세를 보였다. 전산업 생산지수(계절 조정. 농림어업 제외, 2020년 100)는 112.1을 기록, 전달 보다 2.2% 증가, 2021년 2월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반도체 생산이 13.4%나 늘어나 전 산업 증가세를 주도한 것으로 나타난 것도 고무적이다. 생산뿐만 아니라 설비투자도 1년 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한 것도 호재로 작용한다. 기획재정부가 경기 전반이 반등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평가한 배경이다. 

그러나 이달 들어 심상찮은 낌새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제 원유가격, 금리와 물가, 이에 따른 고환율 움직임이 새로운 변수로 위력을 높이고 있다. 9월 소비자 물가가 3.7%나 올라 지난 4월 이후 최대 상승 폭을 나타냈다. 현재의 경기를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0.2%포인트 하락한 99.4를 기록, 석 달 연속 하락세를 보이는 점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한마디로 말해서 생산 투자가 늘어나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최근 들어 원유, 금리와 물가 오름세가 심상하지 않은 탓에 원화 가치도 떨어지고 있는, 고환율 추세가 하반기 우리 경제의 새로운 올무로 작용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물가가 급격하게 오르는 직접적인 원인은 원유가격의 급등이다. 우크라이나 ⁃ 러시아 전쟁이 장기화함에 따라 러시아가 석유생산과 수출을 줄임과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도 감산에 들어감으로써 연말까지 80~90달러 선으로 예상하던 유가가 1백 달러 안팎으로, 심지어는 1백 5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원유 수요는(3분기 기준) 1억 2백 60만 배럴인 데 반해 공급은 이보다 1백 30만 배럴이 부족한 1억 1백 30만 배럴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북해 브렌트유는 배럴당 10달러가 오른 93달러에, 미국원유지표인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는 93달러에서 1백 달러를 가볍게 뛰어넘어 1백 50달러까지 오를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원유가격이 불안해지면서 자본시장 금리도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세계 금리의 기준점이 되는 미국 10년 장기 국채 금리가 2007년 8월 이후 최고치인 4.81%까지 올랐다 (채권가치 하락). 이에 자극받아 미국 국채 30년 장기채 금리는 5% 선에 육박할 정도로 오름세가 강하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 해외 자본시장 자금이 옮겨갈 개연성이 높아진다. 그렇지 않아도 고물가에 허덕이는 유럽 각국의 인플레이션 압력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 환율 역시 불안해지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는 새해 예산안을 짜면서 세수 부족이 9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모자라는 돈은 외환평형기금으로 메우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동시에 한국은행으로부터 빌려 쓰는 이른바 마이너스 통장 운용비로 3천 2백억 원을 계상할 정도로 내년도 재정 형편은 군색하다. 여기에 예상을 벗어난 고유가와 고금리, 그리고 고환율이 겹치면 나라 살림이 더욱 쪼들릴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이럴 때의 처방은 재정 긴축, 돈을 아껴 쓰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내년 예산안은 아직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가지 않은 상황이지만 여야 모두 내년 4월 총선 대책으로 지역구 사업에 막대한 재정 투입을 요구할 태세다. 이른바 유력의원들의 예결위에서 ‘쪽지 정치’로 재정의 구멍을 키우는 것이 이른바 관행처럼 굳어있다. 그러나 신 3고 파고가 덮칠 기세인 내년 예산안 심의에서는 이러한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야의 힘 있는 의원, 지도층이 솔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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