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이 ‘인플레이와의 싸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세계 경제에 새로운 호재가 분명하다. 지난 2022년 3월부터 시작된 금리 인상 경쟁이 사실상 끝나자 시장의 관심은 언제부터 인하가 시작될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미국연준(FRB)과 함께 금리 인상을 멈춘 것은  독일을 비롯한 역내(域內)의 경기불안이 확산한 데 따른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미국이나 유럽은 그동안의 급속한 금리 인상에 제동을 걸 시점을 맞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인플레이션 진행 속도도 걱정했던 것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미국이 선도한 지난 21개월간의 ‘고금리 시대’를 부른 이번 인플레이션은 사실상 코로나 19에서 비롯된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한 지역봉쇄 (록다운)의 여파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각국 정부는 대량의 돈을 풀었다. 코로나 19가 일단 숨을 죽이기 시작하자 살포한 돈이 인플레이션 확산으로 이어지자 돈줄 조이기에 나선 것이다. 전통적으로 정부가 돈줄 조이는 데는 금리 인상이 가장 효과적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FRB가 전례 없는 속도로 기준금리를 연 5.5%까지 인상한 것은 상황이 그만큼 나빴다는 증거다. 

유럽중앙은행 역시 기준금리를 4.5%까지 올렸다. 한국은행도 미국의 금리 인상에 보조를 맞추기는 했으나 3.5% 선에서 일단 멈추었다. 미국과의 금리 차 2% 포인트는 원화 가치 방어(환율 방어)와 외자 유출 방지의 미지노선으로 여겨왔다. 따라서 미국 금리 인하가 시작되면 한은 역시 인하에 나설 수밖에 없으나 상황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미국이 내년 언제부터 어느 수준까지 금리를 내릴 것인가에는 정책당국(FRB)과 시장의 견해가 엇갈린다. FRB는 내년 금리 인하가 최대 세 번, 기준금리를 4.6%로 보고 있는 데 반해 시장은 내년 3월부터 시작, 최대 6회에 걸쳐 인하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는 FRB의 고유권한임으로 시장의 낙관적 전망이 반드시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금리 인하의 바탕이 되는 경기와 고용 전망에 대한 ‘낙관적 분석’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FRB가 기대하는 ‘이상적 금리 인하’는 고용이나 경기에 새로운 대책 없이 ‘있는 그대로의 상황’에서 단행하는 것이다. 미국이 이상적인 금리 인하가 성공적으로 연착륙할 경우 세계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미국 금리 인하 효과를 제대로 수용, 흡수할 수 있느냐에는 문제가 남는다. 미국의 내년 기준금리 목표가 4.6%임을 생각할 때 한국과의 금리 차는 여전하다. 특히 뉴욕 연준이 신용카드 채무 잔액이 1조 7백 90억 달러나 되는, 사상 최고 수준임을 경고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청년층의 연체가 두드러짐에도 불구하고 카드 이용 소비는 줄어들지 않고 있어 금리 인하의 연착륙 기대를 흐리게 하고 있다는 것이 뉴욕 연준의 경고다.

한국이 미국을 좇아 금리인하에 선뜻 나서기를 망설이는 이유 역시 가계부채의 급증과 물가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데 있다. 3분기 말 현재 가계부채는 1천 8백 76조 원이나 된다. 국제금융협회(IIF)는 한국의 가계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넘어섰다고 경고하고 있다. 가계부채가 GDP보다 많은 나라는 스위스, 호주, 캐나다에 이어 세계 4위다. 그러나 다른 세 나라는 자원 부국임을 생각할 때 한국의 가계부채 위험도는 사실상 세계 1위라고 볼 수 있다. 물가 역시 한은이 목표로 하는 2% 선에는 어림도 없는 3% 후반에 머물고 있으며 실업률, 특히 청년층 실업률도 제자리걸음 아니면 뒷걸음치는 형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금리 인하에 나설 형편이 아니라는 뜻이다.

정책당국은 미국의 금리 인하에 덜뜬 시장을 단속함과 동시에 부동산과 자본시장에서의 투기 현상을 척결할 필요가 있다. 또 면밀한 가계부채 대책도 세워야 한다. 물가가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면 물가가 더욱 오름세를 탈 것이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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