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국제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해제함으로써 2020년 1월 이후 3년 4개월 만에 일단 숨통이 틔었다. 국제공중보건비상사태 해제가 코로나19를 완전히 극복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동안 국제보건기구가 강력하게 권고한 역학조사와 방역 조치 의무를 각국 정부가 현지 사정에 맞추어 알아서 집행토록 한데 지나지 않는다. WHO가 지난 2005년 국제보건규칙을 개정한 이후 ‘긴급(비상)사태’를 선언한 것은 코로나19를 포함하여 모두 일곱 번이다. 이 가운데는 2014년의 폴리오(Polio:척추성 소아마비)와 2022년의 엠폭스 (원숭이 두창) 는 여전히 비상사태 대상 질환이다. WHO의 코로나19 비상사태 해제로 정부도 국내 위기단계를 ‘심각’에서 ‘경계’로 한 단계 낮춤에 따라 임시 선벌 검사소 운영이 중단되며 국무총리가 주재하던 중앙재난안전본부 대신 보건복지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사고수습본부 체제로 바뀐다.
코로나 펜대믹은 초기 대응 미숙으로 국민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고통을 당하는 동안 허둥대던 정부가 재정을 동원한 이른바 재난지원금으로 들끓는 여론을 진정시키는 꼼수를 둔 것은 앞으로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더욱이 코로나19 펜대믹이 2년째로 접어든 2022년부터는 지방선거, 대통령 선거를 전후하여 재난지원금 명목으로 돈 뿌리기 포퓰리즘이 극성을 떤 것도 반성할 대목의 하나다. 이러한 풍조는 지금도 여전히 틈을 노리고 있어 재정 건전성 유지에 비상이 걸린 것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인류가 경험한 감염병은 코로나19 만이 아니다. 의학 수준이 극히 낮았던, 세균학이란 용어조차 없었던 중세이래 페스트(흑사병), 코레라(청사병), 천연두, 20세기 초기에는 스페인 독감이 큰 상처를 남겼다. 특히 14세기 유럽에는 페스트로 5천만 명이나 희생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서양의학은 이른바 체액설(體液說)에 근거한, 감염증의 실체를 찾지 못한 주술적 대응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인명 피해 규모가 클 수밖에 없었다. ‘체액설’이란 인간 체내를 흐르는 네 가지 액체-혈액, 점액(粘液), 황담즙(黃膽汁), 흑담즙(黑膽汁)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질병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감염병이 유행할 때 환자 격리 따위는 생각조차 못 한 시대였으며 오로지 주술이나 종교적 신앙에만 의존했다. 페스트로 5천만 명이나 사망한 후유증은 컸다. 인구의 절망적 감소에 따른 노동력 부족으로 대지주를 기반으로 군림해 온 교회 권력과 봉건 군주제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펜대믹 기간 동안 자생적으로 발달한 치안과 방역 조직을 기반으로 시민 권력의 조직적 발언권이 힘을 얻었다. 이후 몇 세기에 걸쳐 종교개혁, 르네상스에 이어 갈릴레오로 대표되는 실증적 과학 발전의 기초를 닦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코로나19 역시 우리 생활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대표적 사례로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비대면 문화’가 상당 수준으로 정착하고 있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비대면 시대는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계속 확산 발전하게 마련이다. 그동안 정부가 한시적으로 허용했던 비대면 의료는 ‘비상사태 해제’로 법적 근거를 잃어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문명사적 변혁으로 볼 수 있는 비대면 문화(진료) 추세가 이익 단체의 반발로 입법이 순조롭지 못한 것은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또 펜대믹 기간 동안 호황을 보였던 PC 등의 수요감퇴로 반도체가 불황을 맞고 있는 것도 우리로서는 아픈 대목이다. 그뿐이 아니다. 코로나19로 각국이 돈을 푼, 이른바 저금리 금융완화 후유증을 다잡기 위해 급속한 금리인상이 이어져 왔다. 이로 인한 수요와 투자 감퇴는 전체 경제의 탄력을 훼손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연관하여 WHO가 코로나 비상사태 해제 이틀 앞서 인천에서 열린 한 중 일 3국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회담에서 코로나19 이후의 경제 회복에 3국의 유기적인 협력이 불가결하다는 공동성명을 채택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3국의 경제⁃ 무역 관계 강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일단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3국 경제 무역 관계 강화가 미국의 중국 견제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는 앞으로의 과제임도 분명하다. 따라서 코로나19 비상 해제를 경제 회복에 총력을 기울이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여 허리끈을 다시 한번 조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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