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위해 뛰는 데 힘들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지금 카타르에서 아시아 축구 선수권 우승을 목표로 뛰고 있는 대표팀 주장 손흥민의 말이다. 우리 사회 각 분야, 특히 정치권이 갈팡질팡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이 한마디는 삼복더위의 얼음 바람보다 더 시원하게 속을 뚫어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 호주와 8강전을 모두 연장전 끝에(사우디와는 승부차기까지 했다) 승리한 선수들은 체력이 고갈되었으나 그것은 대표팀 선수로서 져야 할 당연한 짐이라는, 극히 상식적인 말이다. 그런데도 듣는 이가 하나같이 감동하는 것은 이 당연함이 거의 실종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총선거가 있는 해다. 불과 60여 일 뒤에는 4년마다 새로 그리는 입법부 ‘힘의 지도’가 세상에 나온다. 그러나 우리 정계는 아직도 선거구 획정도 못하고 당리당략, 나아가서는 자기 정파의 유불리를 따지느라고 ‘나라를 위해 뛰는’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날마다 신문이나 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전자시대 지라시(선전지)’로 불리는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힘들다는 핑계’만 난무한다. 이 힘듦이 결국에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어깨를 짓누르는 짐으로 변하게 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들은 민생을 강조하고 국가 안보를 논한다. 국민을 무시한 민생이, 국가를 도외시한 안보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로지 ‘표를 달라’는 딱 하나에 집착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른바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린다.
지금 우리 정치는 입법부와 행정부로 나뉜 ‘2원 체제’가 2년이나 이어지고 있다. 국회를 지배하는 거대 야당은 행정부가 수용할 수 없는 법만 열심히 만들고 행정부는 이를 거부하느라고 바쁘다. 입법권을 쥐고 있는 거대 야당이 고민하는 선거제도의 핵심은 비례대표 선출 방법이다. 21대에 처음 시도한 연동형은 위성 정당 난립이라는 비생산적 현상을 낳았음으로 이번엔 종전처럼 병립형으로 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그러나 거대 야당은 당내 사정 때문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당원투표에 붙이기로 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정무수석을 역임한 원로 정치인 유인태가 ‘천벌 받을 짓’이라고 호통치는 바람에 이재명 대표에게로 결정권을 넘겼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결정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다. 검찰 출신이 많다는 이유로 ‘검찰 독재’라고 비판하는 더불어민주당이 ‘개딸 독재’ 소리를 듣지 않게 된 것만 하더라도 자다가 생긴 떡이기 때문이다.
선거제 결정을 위임받았으면 여당 대표를 만나 의논하는 것이 순리지만 이재명 대표는 한동훈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 대신에 양산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을 찾았다. 그 이튿날 (2월 5일) 광주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준연동제로 승리하겠음을밝혔다. 21대처럼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뽑겠다는 뜻이다. 선거제도 문제에 관한 여야 대표의 협의가 생략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 정치의 한계라면 한계로 봐야 한다. 총선 1년 전에 결정이 났어야 할 선거구 개편도 아직은 오리무중(五里霧中:안개가 자욱하여 5리 앞도 안 보인다는 뜻)이다. 인천보다 인구가 적은 광주 선거구가 1개 더 많은 것은 아예 논의 대상에도 들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앙선관위가 인구 규모를 기준으로 통폐합한 안을 자기 정당의 유불리를 따져 표류시키면서 갑론을박하는 것을 아무리 관대하게 봐도 옹졸하기 짝이 없을 따름이다. 그러면서 총선정국에서 쏟아내는 정책을 여와 야는 서로 포퓰리즘의 극치라고 비판한다. 재원 없이 무엇을 해 주겠다는 약속은 포퓰리즘이는 비판을 받아 당연하다.
포퓰리즘으로 국가 경제를 말아먹은 나라가 한둘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남미 여러 국가는 제쳐두고라도 유럽연합의 그리스는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나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으로 겨우 지탱해 왔다. 그러다가 포퓰리즘의 원흉이던 좌파 총리가 퇴진한 이후 우파가 집권, 긴축으로 경제를 되살려 지난해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탁월한 경제 성과를 낸 ‘올해의 국가’로 선정될 정도로 부활했다. 당리당략도 중요하고 정파 이익도 정치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은 ‘나라를 위하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총선 60여 일 앞서 볼티지를 올리는 정치지도자들은 ‘나라를 위해 뛰는 데 힙든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라고 한 손흥민 앞에서 옷깃부터 여며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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