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을 두고 아이러니라 하는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면서 전공의가 파업에 들어간 지 18일째 되던 날(3월 8일), 정부는 문신, 심폐소생술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의사가 독점해 온 의료행위 상당 부분을 간호사에게 개방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비대면 진료도 포함된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 그들이 현장에 투입되는 19년 뒤엔 경쟁이 치열해져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제 아래 강행된 파업이 오히려 지금까지 의료계 반대로 제자리걸음만 하던 의료개혁에 탄력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강력 투쟁에 나선 결과가 오히려 불이익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은, 예상하지 못한, 파업을 하지 않는 것만도 못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거슬러 올라가 2000년 의약분업에 반대하여 파업을 강행, 당시 정부로부터 의과대학 정원 감축을 얻어낸 데 재미를 붙인 것일지도 모른다. 곧 이어 비대면 진료 반대와 코로나 이후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 정부를 상대로 3전 전승한 결과는 ‘잘못된 용기와 힘’을 지나치게 믿는 관행을 낳았다. 특히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의약분업을 반대하는 의료계를 달래기 위해 의대 정원 감축이라는 당근을 내어 준 데서부터 버릇이 잘못 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래서 이번 파업에서도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계는 ‘우리를 이길 정부는 없다’고 기고만장(氣高萬丈:기세가 하늘을 찌른다는 뜻)한 것이다. 의약분업의 합리성은 대부분이 선진국 연수를 다녀온 의사들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 터인데도 반대에 나섰고 정부는 명분 없이 뒤로 물러난 것이 2000년의 전공의 파업이다.
동양 문화권에서는 의술을 인술(仁術)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자기희생을 밑거름으로 삼는 이타성(利他性)을 높이 받들었다. 이는 중국 전설의 삼황오제(三皇五帝) 가운데 농사와 의술 개척자인 염제 신농씨(炎帝-神農氏)의 자기 희생정신에서 유래된 것이다. 신농씨는 질병을 고치기 위해 천하의 풀을 모두 직접 씹어보는 실험으로 독초와 약초를 가려냈다는 전설을 남겼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즐기는 차문화(茶文化)도 신농씨의 약초와 독초 분별 실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기 이익을 돌아보지 않고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를 의성(醫聖)으로 우러러 받드는 풍습 역시 서구에서는 히포크라테스, 동양에서는 신농씨가 시원(始元)이다. 지금 파업 중인 전공의와 이들에 동조할 준비가 끝난 교수급 의료인들 가운데 의성이 되고 싶은 이가 얼마나 되며 또 그렇게 불릴 자격을 갖추었다고 자부하는 자가 얼마나 될까, 스스로 자문해 보기 바란다.
의료인이라면, 의사라면 하나같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마음에 새기고 현장에 투입된다. 그러나 물질 만능시대의 의사는 자기 수입에만 집착하는 풍조가 강하게 작용하기 시작한다. 만약 자동차 회사에 근무하는 엔지니어가, 반도체 회사에 근무하는 기술자가 기계공학과 ⁃ 반도체 학과 정원을 사전 논의 한마디 없이 늘인다고 해서 파업에 들어간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반응할까?
대학의 그리고 단위 학과 정원 증원 여부는 국가 백년대계를 전제로 정부가 정하는 것이 원칙이자 의무다. 이를 이해당사자인 같은 전공학과 출신의 취업자와 사전에 의논한다면 나쁘게 말해서 ‘담합’이 될 수도 있다.
간호사에게 일부이기는 하지만 진료 자격을 부여하려는 정부에 대해 의료계와 야당은 개정 간호사 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윤 대통령을 비판한다. 논리상으로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하고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 윤 대통령이 자기 입장이나 체면을 생각지 않고 번복 결정한 용기를 평가해야 마땅할 것이다. 국민의 생명이 볼모로 잡혀 있는 현실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간호사에게 기대보자는 것이 아닌가? 만약 전공의 파업에 교수급이 동참하고 의대생 동맹휴학이 확산된다면 정부가 취할 다음 단계의 ‘비상조치’가 어떤 것일지, 또 무엇일지 현 단계선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전공의 파업이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의료인의 마당은 더욱 좁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를 오직 의료계만 모르고 있다, ‘잠재적 환자들’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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