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의 금융통화위원회는 의장인 한국은행 총재 부재 속에 열리게 되었다. 현임 이주열 총재는 31일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반면 후임으로 지명된 이창용 총재 후보자는 국회 청문회를 거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권 교체기에 있을 수 있는 공백이지만 미국이 이미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중앙은행 총재 부재는, 비록 법적 절차 문제라 하더라도 시장의 불안 요소로 작용할 우려가 없지 않다. 따라서 국회는 짧은 시간 안에 청문을 마칠 의무가 있다. 특히 물러나는 이주열 총재가 미국의 금리 인상과 금융완화기조 축소에 나설 것을 예상, 선제적으로 금리인상에 나서면서 연말까지의 스케듈을 사실상 밝힌 점과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후임 총재에게 당부라도 하듯이 ‘금리 인상은 타이밍’이라고 강조한 것을 감안 한다면 청문회를 오래 끌면 끌수록 후유증이 남게 마련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창용 총재 후보 지명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인수위가 갈등을 빚고 있다는 점, 이 때문에 한은의 인수위 업무보고 일정이 불투명해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한국은행은 정쟁이나 정치흥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한국은행은 한은법에 규정되어 있는 것처럼 ‘효율적인 통화 신용정책의 수립, 집행으로 물가 안정과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다. 여기에는 정치적 고려가 끼어들 수도 없고 끼어들어서도 안 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은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끊임없는, 그리고 처절한 노력을 쏟아온 이유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정부가 추경 재원으로 국채를 발행, 한은이 이를 인수하는 방안을 제시하자 ‘발권력으로 여당 선거용 돈 풀기를 지원한다’는 비판을 자초한 것 역시 한은의 독립성과 연관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돈 풀기로는 효율인 통화 신용정책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독립성을 훼손당한, 정치적 고려를 우선하는 바람에 국가 경제 에 부정적 결과를 유발한 대표적 사례로 미국연방준비제도(FRB)의 1973년 금리정책이 꼽히고 있다. 기축 통화인 달러의 신용을 담보하는 연준의 독립성 훼손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당시 번즈 연준 의장은 소극적 금리 인상으로 물가를 잡지 못했을 쁜 만 아니라 금융정책의 독립성 확보에도 상처를 남겼다. 번즈 의장이 금리 인상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당시 닉슨 대통령의 경기 우선 정책에 영합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미국 경제는 1975년까지 3년 동안 심각한 경기후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는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와는 반대로 이란 혁명 직후 1979년 취임한 폴 볼커 의장은 정책금리를 20%까지 인상함으로써 인플레이션 퇴치에 성공했다. 초기에는 경기후퇴와 고용 저하로 ‘볼커 쇼크’라는 악명을 들었으나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장기간에 걸친 경기확대의 발판을 마련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융정책에서 보듯이 중앙은행 독립성은 경제 운용 기반을 좌우하는 중대 요인이 된다. 특히 지금 미국이 앞장선 금리 인상과 금융긴축이 불러올 후유증과 부작용은 적어도 앞으로 수년 동안 국가 경제의 운명을 판가름하기에 족할 것이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한은 총재 후임을 둘러싸고 여야가 감정을 앞세운 정쟁을 계속하다가는 얻는 것은 전혀 없고 잃는 것은 눈덩이처럼 쌓일 뿐이다. 물론 퇴임을 눈앞에 둔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이 법리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정치 도의상 문제가 남는다. 적어도 실무자 접촉 때 ‘상의’를 했다 하더라도 당선인과 만나 숙의했어야 할 사안이다.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앞으로 4년 임기의 한은 총재 후보를 지명한 것은 이유 여하를 떠나 당선인에게는 정서적인 서운함과 정치적인 배신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의 국정과 역사는 퇴임 대통령이 아니라 당선인이 책임을 지는 시간이다. 따라서 당선인과 인수위는 지명받은 총재 후보자와 머리를 맞대고 금융정책 디자인에 나서야 한다. 후임 총재 인선 문제로 대통령과 당선인 사이에 가로 놓인 갈등의 골이 깊으면 깊을수록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살림살이는 옹색해질 뿐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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