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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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이해가 상충하는 여러 집단과 개인이 공존하는 집합체이다. 영토와 국민을 최저요건으로 한다는 점이 다른 사회집단과 다른 점이다. 공존이라는 공통의 목적 달성은 질서와 안정이라는 두 버팀목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때 비로소 가능하며 여기에는 법과 규범이 절대조건이다. 쉽게 말하면 이해가 상충하는 집단끼리 결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염두에 두고 경쟁한다는 뜻이다. 정치적 집단(정당을 포함한 정부 기구)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지켜야 할 선을, 그러나 일단 넘고 나면 눈에 보이지도 않고 따라서 ‘역동적’ 기능도 없다. 선을 넘어서, 선을 무시하고 자기 이익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그래서 ‘폭주’라고 일컫는다. 이러한 폭주의 끝이 아름답게 비친 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번도 없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 폭주를 일정 수준에서 멈추는 지혜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회 의석 3백석 가운데 1백 70~1백 80석을 자랑하는 더불어민주당이 대선에서 패배한 지금, 윤석열 정부 출범에 어떤 행태로 대응하고 있는가? 콩크리트 지지의 팬덤은 예외로 치더라도 지금 민주당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폭주’의 신호를 올리고 있거나 첫발을 내디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대선 당시 당 대표로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가 서울시장 후보로 전격 부활한 송영길 후보가 윤석열 당선인 측을 향해 ‘0.73%짜리’라고 깎아내린 것이 대표적 사례다. 물러날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열흘 남짓 남겨둔 시점에서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대해 윤석열 당선인을 비판한 것도 점잖은 퇴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선을 넘은 최대의, 그리고 역사적 몽니는 새 정부 총리와 각료에 대한 인사청문 태도다.

주요 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은 지난 2000년에 제정된 인사청문법에 의거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무위원을 비롯한 대상 인사에 대해 ‘자질을 포함하여 적격성 여부’를 검증함으로써 권력 견제 역할을 기대하는 제도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 가운데 이 제도를 도입한 곳은 미국을 비롯하여 한국, 필리핀 등 3국뿐이다. 이 제도 도입 이후 국회 청문회는 자질과 역량 검증보다는 도덕성 검증에 치우친 나머지 ‘한방’을 노리는 정치공세로 일관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문 결과와 관계없이 장관으로 임명한 것이 30여 차례를 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청문 과정에서 ‘누구를 제외해 주면 누구는 통과를 보장 하겠다’는 식의 정치적 협상을 추진한 적은 없었다. 대선 패배 정당이 ‘0.73%짜리’라고 당선인을 폄하하면서 폭주를 시작했다고 보는 배경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국무총리 없이 새 정부가 출범하는 한이 있더라도 청문 딜은 없다고 정면 돌파에 나선 것은 따라서 지극히 당연한 정도(正道)다

그러면 대선에 패배한 민주당이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문재인 대통령 측이 왜 이처럼 현실을 승복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일까? 이는 한국 진보정치세력 태생의 한계라고 봐야 한다. 진보정치 세력의 구심점은 86세대이며 이들은 민주화 투쟁에 젊음을 바친 그룹이다. 노동운동을 위한 위장 취업을 비롯하여 자신들의 모든 투쟁방식은 숭고한 것이며 독재정권에 지지를 보낸 보수세력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 기본인식이다.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프레임 씌우기로 상황을 바꾸는 것도 서슴지 않으며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신조어를 창안하는 기지를 발휘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범죄가 드러나자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는 기상천외한 표현으로 얼버무리려 한 것이 진보정치권이다. 이런 인식을 가진 진보정치인 집단인 민주당이나 물러나는 문재인 그룹이 0.73%를 인정하기보다는 분통을 터뜨리는 쪽을 택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문제는 이러한 ’조용한 폭주‘에 국가 구성의 핵심 요소인 국민이 어느 순간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그 결과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있다.이해가 상충하는 개인과 집단이 ’선을 넘은 그룹‘에 의해 자기 이익이 엄청나게 침해당했다고 판단하면 그 울분은 활화산처럼 터지게 마련이다. 진보정권이 기회 있을 적마다 인용하는 ‘촛불’이 가장 최근에 일어난 국민적 분노의 폭발임을 이들은 잊은 것일까? 국무총리와 장관 인사청문은 별개 사안인데도 이를 ‘묶어서 정무적 흥정’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어디서 비롯된 발상인가?설마 대선에서 패배한 정당이 사실상 새 정부 각료 인사를 하겠다는 것은 아닐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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