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으로 왔다가 옷 한 벌 건졌잖소.”(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 김국환 노래)
그런데 옷이 문제다. 옷이 시끄럽다. 왜 이러는 걸까?
인간에게 옷은 소중하다. ‘옷이 날개’라는 속담도 있다.
의식주(衣食住)란 말에서는 먹는 것, 사는 집 보다 옷이 맨 먼저 나온다. 사람 사는 데 옷이 제일이란 의미인가 싶다.
‘의관정제’(衣冠整齊)란 말도 있다. 사람이 중요한 일을 할 때는 예의를 갖추라는 뜻이다. 여기서도 옷(衣)이 머리(冠)보다 먼저다. 여기에 나오는 ‘관’ 신분, 감투를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옷’(衣)을 이렇게 앞에 내세울까?
옷이 예의, 신분 표시, 도덕성, 인품과 연결되기 때문인 것 같다.
‘금의환향’(錦衣還鄕), 고향을 떠난 사람이 출세하여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뜻인데 글자 그대로를 풀면 ‘비단 옷 입고 고향 왔다’는 뜻이다. 사람이 출세를 해도 그 표현은 인품이나 감투가 아니라 옷이란 뜻이다. 그만큼 옷이 가장 중요하단 의미다.
옷은 특히 여성에게 중요하다. ‘비단이 장사 왕 서방’이 인기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빈손으로 태어나서 배내옷이란 옷 한 벌은 건졌지만 갈 때도 옷은 중요하다. 세상을 하직하고 하늘로 돌아갈 때는 영생의 옷으로 수의(壽衣)를 입는다. 수의 마련은 좋은 날을 받아 해가 뜨면 시작해 해가 지기 전에 완성해야 한다. 이와 맞추어 자식들도 상복을 마련한다. 예를 갖춘 모양에 거친 삼베를 사용하여 부모를 잃은 고통을 체험해야 한다. 장례식에서 옷의 역할이다.
요즘 시끄러운 뉴스 하나가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이다. 영부인의 옷이 뉴스를 타기 시작한 것은 한 시민 단체가 옷값을 청와대 특활비에서 사용했다면 그 내용을 밝히라는 소송에서 시작되었다. 1심에서 법원은 특활비의 내용을 밝히라는 판결을 내렸다. 청와대가 그냥 받아들여 밝혔으면 될 일을 그러지 않고 항소를 하는 바람에 뉴스의 중심점으로 등장했다. ‘안보상의 이유로 밝힐 수 없다’고 한 말이 화근이 되었다.
‘영부인 옷이 무슨 안보 사항이냐?’ 당연히 반발이 나올 법하다.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청와대의 대통령 특수 활동비는 공개가 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기밀이라고 해도 외부 공개를 잠시 금지한다는 것일 뿐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공개를 하지 않는 것은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킨다. 형사처벌 문제까지 야기하는 사안”이라고 했고, 정미경 최고위원도 “김 여사의 옷값이 국가기밀인가. 그렇다면 임기 종료 후에 장신구, 옷, 핸드백, 신발 등을 모두 반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옷값이 진짜 국가 기밀이냐”라고 했다.
전여옥 씨는 "김정숙, 옷·신발 현찰박치기…이 정도면 '게이트'다"라고 했다.
청와대는 논란에 대해 “옷값 논란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의류 구입 목적으로 특수 활동비 등 국가 예산을 사용한 적이 없다. 모두 사비로 부담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순방 등 국제 행사용은 기증하거나 반납했다”며 김 여사가 착용했던 샤넬 옷은 현재 전시중이라고 설명했다. 또 청와대는 “대통령비서실의 특수 활동비가 국방, 외교, 안보 등의 사유로 공개하기 어렵다는 점을 빌미로 일부에서 무분별하게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은 유감”이라면서도, 김 여사가 옷값으로 얼마를 지출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또 “옷값 논란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의류 구입 목적으로 특수 활동비 등 국가 예산을 사용한 적이 없다. 모두 사비로 부담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으로 더 크게 번졌다. 악세서리, 구두에까지 번지고 현금으로 결제 했느냐 카드로 결제 했느냐로 번졌다. 또한 의상을 담당하는 직원이 명품 만드는 디자이너의 딸이며, 국적이 프랑스라는 것도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이 사건은 항상 국민의 눈길이 닿는 나라의 지도자들은 옷 한 벌 구두 한 켤레, 장신구 한 점도 심사숙고해서 착용해야 하며, 행여 사치를 누릴 생각이나, 옷으로 인격을 위장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빈손으로 왔다가 옷 한 벌 건지지 않았느냐'는 유행가 가사가 이래서 마음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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