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지난 7월말 통계로 신규 실업자 수가 113만 명으로 역대 최악의 통계가 나왔다. 실업자의 증가폭도 역대 최대치다. 대기업에서 감원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영세 개인사업자들의 폐업이 컸던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실업자는 많아졌지만 실업률은 오히려 하락해 이해하기 힘든 사태가 벌어졌다. 경기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구조조정에 나선 기업들도 적잖은데 실업률이 하락한 것은 왜일까.
이것은 통계의 마술이다. 적극적인 구직 활동을 하는 경제활동 인구만 통계에 포함하기 때문이다. 실업자가 되었지만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실업 통계에서 빠진다.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이들을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하기 하기 때문이다.
비경제활동인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취직을 해도 코로나가 겁나고, 직장을 가졌어도 재택 근무라는 일생 처음 보는 직장 아닌 직장 생활을 해야 하고, 코로나 불경기가 취업자의 조건을 악화시켰기 때문에 아예 그냥 쉬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직장에 매여살기 싫다는 등 사람마다 나름대로 이유가 다 있을 것이다.
오늘을 사는 직장인들은 바늘방석 위에서 수난의 시대를 살고 있다. 바늘구멍을 뚫고 천신만고 끝에 취직하여 들어가면 ‘조기’니 ‘명태’니 하는 흉측한(?) 생선들이 여기저기서 노리고 있다. 자칫 잘못 하다가는 행군의 대열에서 낙오되기 십상이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았지만 이번엔 코로나19라는 조기, 명태보다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한다. 윗사람 눈치를 보더라도 차라리 직장에 나가서 보는게 낫다는 생각도 든다. 이럴 바에야 그만 두어버리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월트 비셔는 그의 명저 ‘유머집’에서 직장에서 빨리 쫓겨나는 일곱 가지 비결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박춘호 칼럼에서 인용)
1, 보지 말라... 보일 테니까.
2, 듣지 말라... 들릴 테니까.
3, 생각하지 말라... 알게 될 테니까.
4, 결단 내리지 말라... 틀릴지 모르니까.
5, 걷지 말라... 발에 걸릴지 모르니까.
6, 뛰지 말라... 넘어질지 모르니까.
7, 살지 말라... 죽을지 모르니까.
웃기 전에 소름이 끼치게 하는 유머들이다. 직장인들이 늘 마음속에 지녀야 할 말들만 너무도 절묘하게 잘 모아 두었다.
이 일곱 가지를 피해 가는데 가장 필요한 자세는 무엇인가. 무슨 일이든지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프로 정신’이다. 자기가 맡은 일은 물론, 옆 동료의 일이라도 적극적으로 자기 일처럼 해나가야 한다.
40여 년 전 필자가 신문사 편집국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서울 북쪽 변두리인 하월곡동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다. 안국 동에 있는 신문사까지 차비를 아끼기 위해 걸어서 출퇴근을 했다. 첫 눈이 소담스럽게 내린 어느 초겨울이었다. 창경궁 옆을 지나가다 보니까 어떤 사람이 가로수 위에 올라가 가지마다 곱게 쌓인 눈꽃을 털어 내느라 무진 애를 쓰며 나무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도대체 저런 미친 짓을 하는 사람이 누군가 궁금해서 걸음을 멈추었다. 곁에 가서 보니까 그는 악착같기로 유명한 우리 신문사 사진부 기자였다.
“거기서 뭐하는 거요?”
“예. 눈꽃이 하도 아름다워 오늘 첫 눈 뉴스를 쓸 때 신문에 이 사진을 쓰려고... 사진을 찍고 가다가 생각 하니까, 다른 사의 기자가 또 찍을지 모르기 때문에... 헤헤헤...”
그도 자기의 행동이 쑥스러운지 웃었다. 그의 행동에 대한 도덕성을 비판하기 전에 직장에 대한 그의 충성심, 즉 프로 정신이 먼저 떠올랐다.
타의에 의해 비록 백수가 되었어도 직장 일을 할 때의 프로 정신으로 새로운 내 일을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가 겁나서, 남한테 매이기 싫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안 된다. 기왕 하는 일이라면 즐겁게 일과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첫째다.
프로 정신의 두 번째 신조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것이다.
에디슨은 배터리를 발명하기 위해 5만 번의 실패를 거듭한다. 그는 이렇게 엄청난 실패를 거듭 하면서도 포기 하지 않았다. 이것이 프로 정신이다. 이 5만 번의 실패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알았다. 나는 배터리가 작동하지 않는 5만 가지의 방법을 알아냈다.”
그는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다.
‘백수’가 된 첫날부터 코로나를 원망하며 좌절 속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방콕’만 할 것이 아니라 우선 작은 목표부터 세우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마스크를 챙겨 동네를 한 바퀴 돈다는 것도 작은 목표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일생동안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이제야 하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어쩌다가 남의 목표에 매여서 하기 싫은 월급쟁이 노릇을 했지만 지금부터는 내 시간을 내가 마음대로 하는 일생의 호기를 맞았다고 생각하면 ‘백수’란 처지도 괴로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나의 지인 한 사람은 은행에 20년을 다녔는데 갑자기 ‘백수’가 되어 며칠을 집안에 박혀서 세상을 원망만하면서 지냈다. 그러나 그는 곧 학창 시절부터 꿈꾸어 오던 클래식 음악의 꿈을 되살렸다. 그는 대학로 근방에 조그만 공간을 얻어 차를 곁들인 클래식 감상실을 만들었다. 자기 취미에 맞는 곡들만 골라 하루 종일 틀어놓고 취미가 같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서 보내는 나날이 참으로 즐겁다고 했다.
자신을 잃지 않고 자신과 생활을 되찾은 것이다. 지금부터가 진짜 자기 인생이라고 그는 흐뭇해했다.
현재의 백수들이여, 그리고 미래의 ‘백수’들이여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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