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추리소설 창작에는 독자가 모르는 공식이 있다. 그 중에서도 고전파(classic)로 부르는 클래식 추리소설은 공식이 엄격하다.
첫째 범인은 서두에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이어야 하고, 둘째 탐정은 수사 중에 발견되는 모든 정보를 독자 앞에 밝혀야 한다. 또한 범인은 마지막 단계에서 극적인 반전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 중간에는 독자가 속아 넘어가게 만드는 복선이라는 함정도 있어야 재미를 더한다. (필자의 졸저 ‘추리소설 잘 쓰는 공식’에서)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은 추리소설 중에서도 고전파의 교본에 충실한 문재인 정부의 작품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극적 반전으로 독자(국민)를 깜짝 놀라게 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해수부 공무원이 근무 중에 의문의 실종을 한 뒤 북측 해역에서 발견되고 6시간 4분 뒤에 북한군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고 시신마저 소각되는 참혹한 일을 당했는데 그것이 알고 보면 월북을 하려다가 당한 것이라는 스토리를 국민 앞에 내놓았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사건의 진상은 스토리의 주인공이 자진해서 월북한 증거가 없다는 반전을 보여 ‘추리소설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간 것이다.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 감사원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서면조사’서를 보냈다가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는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헌법 기관인 감사원이 전직 대통령에게 국가 업무수행을 위한 서류를 보냈다가 엄청난 모욕을 당한 것이다. 감사원의 업무 집행이 “무례한 짓”이라면 감사원은 창설 이래 무례한 짓만 계속해온 헌법기관이란 말인가? 아무리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라 해도 대한민국의 국민임에 틀림없고 국민은 국가의 일에 순응해야 하지 않는가. 전직 대통령과 평범한 국민은 인권의 차이가 있는가? 국민의 의무가 달라져야 할 이유가 있는가.
감사원이 서면으로 진술을 받고자 한 것은 대한민국 공무원이 북한의 총부리 앞에 죽음과 직면해 있는 6시간 동안 대통령으로서 어떤 조치를 했는가 하는 것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그 직위에 있는 동안 국민의 안녕을 지킬 의무가 있는 것이다. 취임식 때도 선서하지 않았는가. 그 직무의 일부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물어본 것인데 그것이 “대단히 무례한 짓”인가.
감사원이 밝히고자 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해수부 공무원 김대준 씨가 북측 해역에서 북한군에 의해 발견되어 생존하고 있다는 서면보고를 받고 3시간 04분 뒤에 우리 국민이 사살 당하는 동안 무엇을 했는가 하는 내용이다.
당시 청와대와 국가안보실 인사들은 ‘남북 간 통신선 단절’등을 이유로 “북한 만행을 막기 힘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당은 유엔사가 관리하는 판문점 채널을 통해 적극적으로 북한에 연락했으면 막을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당시 몇 시간 뒤에 문 전 대통령이 유엔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을 주제로 한 유엔 연설(녹음 재생)이 있기 때문에 남북 관계를 너무 의식해서 그냥 넘어간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았다.
문 전 대통령은 우리 군이 “북한군이 이씨를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웠다‘는 첩보를 입수한 지 10시간 이상이 지난 뒤에야 서훈 안보실장과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는 것이 공식적인 기록이다.
국방부가 이날 오후 3시30분쯤 이씨가 북한 해역에서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3시간 30분 뒤인 6시 30분 쯤 문 전 대통령에게 보고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 3시간 4분 뒤 이씨가 사살 소각될 때까지의 일을 감사원이 알고자 한 것이다. 이유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대단히 무례한 짓”이 맞는가. 대통령 한번 하면 국가의 요구는 무시해도 되는 특권이 주어지는가.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하루 빨리 감사원과 국민 앞에 사과하고 국가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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