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TV역사는 1965년 말, 금성사가 'TV 부품 도입에 소요되는 외화는 라디오를 수출해 벌어들인 달러를 활용한다'는 조건으로 부품 수입 허가를 얻어내고, 마침내 최초의 국산 흑백 TV ‘VD-191’을 생산한데서 비롯됐다. 이어 삼성과 대한전선 등에서 국산 TV를 계속 내놓아 치열한 경쟁시대로 접어들었다.

그 무렵의 TV수상기는 모두 브라운관이라는 마법의 장치를 썼다. 이를 통해 영상을 안방에 보내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70년대 중엽 내가 한국일보 종합편집부장으로 일하던 어느 날 밤이었다. 조간신문의 마감을 하려던 순간 사회부 경찰 취재팀에서 속보를 알려왔다.

“영등포의 어느 가정집 안방에서 TV브라운관이 폭발하여 시청하고 있던 할머니와 손녀가 부상을 입고 응급실로 실려 갔답니다.”

나는 즉시 돌아가려던 윤전기를 세우고 속보를 넣어 마지막 신문을 제작했다.

‘안방서 TV 브라운관 폭발-할머니와 손녀 부상, A사의 신제품’

이런 기사를 대대적인 크기로 내보냈다. 

이튿날부터 전자업계에는 대소동이 일어났다. TV를 가진 모든 가정이 우리 집 브라운관은 괜찮으냐는 문의가 쇄도했다.

그러나 며칠 뒤 엄밀한 조사 끝에 나온 결론은 그날 폭발한 TV는 브라운관이 폭발한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브라운관은 폭발할 수 없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 되었다. 이 일로 해서 A전자는 엄청난 피해를 입고 TV생산을 중단해야 하는 비운을 겪었다. 기사를 보도한 매체들은 사과문과 정정보도문을 냈지만 소비자를 완전히 이해시키지는 못했다.

매스미디어의 오보, 즉 가짜뉴스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히는가 하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부끄러운 사례였다.

지난 3일 이낙연 더불어 민주당 대표가 “언론 개혁을 차질 없이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혁 입법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뜻을 비치기도 했다.

거대여당이 적폐 청산, 검찰개혁, 법원 길들이기 탄핵 등을 진행하더니 이제 언론을 손 볼 차례라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정부와 여당이 언론개혁을 하겠다는 내용을 정리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허위사실 유포로 타인에게 피해를 줄 경우 피해액의 3배 이내로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
2, 정정보도 시 원래 보도와 같은 위치, 같은 크기로 해야 하며, 이행하지 않을 때는 3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3, 정정 보도는 신문일 경우 1면, 방송일 경우 첫 뉴스시간에 배치해야 하며, 위반할 때는 3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대략 위와 같은 징벌적 벌칙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1, 헌법상 과잉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 
2, 언론 자유를 침해하고 언론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
3, 정정 보도의 위치나 시간 지정은 편집권의 자유나 방송 재량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민주당은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강력히 규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가짜뉴스가 오늘날 전 세계의 골칫거리로 등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단속하기 위해 민주주의의 핵심인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라는 법률은 취재의 자유를 엄청나게 위축시킬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런 법률을 만든다는 것은 국격(國格)에 영향을 줄 만큼 중요한 일이다.

가짜뉴스에 대항하는 제도나 법률은 여러 종류가 있고, 응용하기 따라서는 얼마든지 신축성 있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민법상의 손해배상 청구나, 형법상의 명예훼손에 관한 법률도 있다. 더구나 손해의 3배에 달하는 배상을 하라는 것은 민법을 뛰어 넘는 과도한 징벌이 아닌가 생각된다.

앞에서 예시한 TV브라운관 폭발 같은 가짜뉴스가 한 기업을 망하게 한 것 같은 일이 일어나서도 안 되지만 이를 막기 위한 대책도 꼭 필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 방법이 징벌적 강제력 같은 것으로 민주국가의 국격을 떨어뜨려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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