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5일 평양에서 희한한 축구경기가 열렸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H조 예선 남북한 3차전은 취재진도 관중도 없는 깜깜이 경기로 진행되었다. 경기의 경과는 이튿날 우리 선수가 귀국한 뒤에야 들을 수 있었다. 실시간 중계방송을 애타게 기다렸던 축구 팬들은 ‘좀 있다가 알권리’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궁금한 팬들이 ‘좀 있다가 알아야’하는 이유는 북한 독재 권력이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최근 청와대의 울산 선거 개입 사건의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 하지 않은 이유로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실질적으로 지켜질 수 있도록 그동안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은 첫걸음’이라고 말하고 이어 ‘수사 중인 사건은 비공개, 기소 이후 공개 재판이 시작된 사건은 공개를 원칙으로 하되, 기소 이후 공판이 시작되기 전 형사사건에 대해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과 국민의 알 권리를 조화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했다.
국민의 알 권리가 우선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단순히 알 권리 보다 조금 있다가 알아도 될 권리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모든 사람은 새로운 소식을 갈망한다. 그것도 단 1초라도 빨리 알기를 바란다. 그래서 헌법을 비롯한 여러 법률, 규칙, 훈령, 관례가 알 권리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항상 방해를 받는다.
유명한 법학자 위킨즈 교수(옥스포드 대학)는 알 권리에 대한 다섯 가지 정의 중 ‘위헌적으로 법을 악용하는 정부나 법을 무시하고 행동하는 시민에 의하여 방해됨이 없이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제 ‘좀 있다가 알 권리’라는 희한한 논리에까지 이르렀다.
법무장관의 말은 다분히 알 권리보다 인권을 앞세웠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난 14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78) 씨가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수사 결과 발표로 노씨가 명예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은 인정되나,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적정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 재판은 피의자 범죄 사실 공표에 해당된다. 수사가 일단 매듭지어져 재판에 넘긴 공소장의 공개보다 훨씬 이전의 단계였다. 공소가 되면 피의자의 신분은 피고인으로 바뀌고 범죄에 대한 공문서(공소장)가 완성되어 다음 단계인 법원으로 넘어가간 것도 아닌데 이와 같은 판결을 했다.
국민의 의혹을 해소하는 측면에서는 대통령 가족 비리 못지않게 대통령 비서실의 울산 선거 개입 여부가 훨씬 앞설 것이다. 인권의 측면에서도 청와대 비서관들 보다는 대통령의 동생이 훨씬 관심이 높을 것이다.
매스컴의 세계에서 국민의 알 권리가 제한되는 경우는 여러 갈레가 있다. 그 중에도 ‘좀 있다가 알 권리’라는 것을 억지로 가져다 붙여보면 엠바고(embargo) 또는 오프 더 레코드라는 것과 비슷하다. 엠바고는 취재원이 취재는 하되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 보도하라는 것과 기자들 끼리 언제부터 공개하자는 약속을 하는 경우를 말한다. 오프더 레코드는 취재는 하되 보도는 하지 말라는 뜻이다.
‘울산 선거 개입 사건은 국민의 지대한 관심사로 매일 매스컴의 톱기사로 오르내린다. 그야말로 초미의 관심사를 인권이라는 방패를 내세워 ‘좀 있다가 알아도 된다.’고 하는 것은 합당하다고 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 형사재판 피고인들의 인권이 이럴 정도로 열악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세게 최대 인권 단체인 엠네스티에서는 2019년 인권 보고서에서 한국의 인권에 대해 성소수자 문제, 군형법의 개정 등 몇 가지를 지적한 정도다.
세계적으로 문제가 될 만큼 인권이 열악한 국가가 아니다. 이 문제를 빌미로 국민의 중요 관심사를 좀 있다가 알아도 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서 비롯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사상 또는 의견을 자유로이 발표 할 수 있고, 이를 전파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헌법재판소는 ‘자유로운 의사의 형성은 정보에의 접근이 충분히 보장됨으로써 비로소 가능한 것이며...‘(1991. 5.13. 90헌마133)라고 판시했다. 세계 최하위 언론자유 정권인 북한(2019 프리덤 하우스 0점)은 경기 결과를 궁금해 하는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좀 있다가 알든지 말든지’를 실현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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