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회 법사위원회 내년도 예산 심의 과정에서 법원의 예산안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의 박범계 의원은 대법관이며 선배인 조재연 법원 행정처장에게 “의원님 꼭 살려 주십시오. 라고 말해 보라”고했다. 조 대법관이 아무 말도 안하자 “아유, 살려 주세요 한마디 하면 편할 거를 참 내 답답하게”라고 덧붙였다.
같은 날 국회 예결산 특별위원회에서는 여가부 장관이 박원순, 오거돈 시장의 성추문으로 치러지는 내년 서울, 부산 시장 보궐 선거 비용에 대해 “국민 전체가 성인지(性認知)에 대해 집단 학습을 할 기회가 된다.”고 발언했다.
운영위원회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이 “광복절 집회 주최 측은 도둑놈”이라고 고함을 치자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집회 주동자들은 도둑놈이 아니라 살인자”라며 주장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쪽 해역에서 북한에 의해 총살당하고 시신이 불태워진 우리 공무원의 처참한 죽음을 ‘사망’이라고 표현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소설 쓰시네”라고 했다. 또 검찰총장이 배당된 특활 예산을 집행하는 공무를 “쌈지 돈 쓴다”고 했다.
‘대통령 비서실장(大統領秘書室長)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대통령비서실의 사무를 처리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 감독한다.’ (대통령비서실 직제 제3조)
위의 법은 대통령 비서실장의 하는 일은 모두 대통령의 ‘명을 받아서’ 한다는 규정이다. 국회에서 하는 발언도 이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설마 대통령이 국민을, 비록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었다고 하더라도 ‘살인자’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막된 한마디는 대통령을 욕되게 하는 말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했단 말인가. 광화문 집회는 코로나 재 확산의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북한의 서해 만행에 대해서는 ‘사망’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광화문에서 독주 권력에 항의하는 울분에 찬 국민을 향해서는 ‘살인자’라는 말을 서슴없이 쓴단 말인가. 역사를 아무리 들쳐 봐도 자기 국민을 대놓고 ‘살인자’라고 한 지도자는 없을 것이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은 서울, 부산 보궐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깨고 후보를 내겠다고 한 것도 도덕 불감증 정당이라는 비난을 받는데, 주무 장관은 여기에 한술 더 떠 국민이 기겁 할 만 한 발언을 내 놓았다.
두 시장의 피해자들은 ‘우리가 국민 학습의 교재냐!’ ‘너무 충격 받아먹은 음식을 다 게워내기까지 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성폭력사건 공동대책 위원회는 이정옥 여가부 장관 발언과 관련해 "이 장관의 논리대로라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오거돈과 고 박원순 시장은 전 국민들에게 성 인지 감수성을 가르쳐 준 스승이란 말인가"라고 되물었다. 3차, 4차 가해까지 서슴없이 해댄 것이다.
정치인의 가장 큰 수단은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었는지 의심스럽다. 튀는 말을 해서 매스컴에 오르는 노이즈 마케팅을 하려는 것인가.
박범계 의원은 국민이 낸 국가 예산이 추미애 장관의 말처럼 자기 쌈지에서 나가는 것으로 착각한 것인가.
삼권분립의 다른 한 축에 있는 기관의 예산 최고 책임자에게 살려달라고 빌란 말인가. 정말 대법원의 예산이 국회의원의 쌈지에서 나오는 돈이고, 한번 살려 달라고 중죄인이나, 거지처럼 빌면 준다는 말인가. 조재연 대법관은 인생의 후배한테 그런 소리를 들었을 때 얼마나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했을지 짐작이 간다.
황당한 용어로 상식을 뛰어넘는 오만한 지도자들이 장관답게, 국회의원답게 되려면 아직 요원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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