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초에 화질이 가장 좋은 HD 영상의 극영화 82편을 전송할 수 있는 D램이 나타났다. 삼성 전자는 지난 주 4차 산업혁명의 주요 무기가 될 수 있는 초고속 반도체를 세계 최초로 완성했다고 발표했다. 슈퍼컴퓨터와 AI 활용의 기반이 되는 플레시브볼트는 기존의 D램에 비해 속도는 33% 빠르고, 용량은 2배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의 주 무기가 되기에는 아직 멀다. 4차 산업 혁명의 주역이 되려면 적어도 제타바이트(zetabyt) 단위를 쓰는 D램이 나와야 할 것이다. 1제타바이트는 그 용량이 얼마나 큰지 2.7 단위만 되어도 하루 트위트 생산 데이터 1억5천만건과 유튜브 생산량 40억 권을 다 수용 처리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용량은 미국 전 국립 도서관 장서의 1억 배에 해당하는 데이터라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우리나라 기업으로서는 세계 첨단의 신제품을 내놓은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신제품이 나오면 국가나 사회 제도가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제도와 법률, 정책은 이와 너무나 동떨어져있다. 기업체는 세계 첨단을 달리는데, 이것을 밀어주어야할 국가 정책은 오히려 뒤에서 잡아당기는 모양이 우리나라의 형편이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가 상상 할 수 없는 세상으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여기서 어물어물하다가는 후진국의 나락으로 덜어질 수가 있다. 새로운 직업이 수 없이 생겨나면 거기에 적응할 수 있는 제도와 무기가 있어야한다. 재래식 무기로는 새로운 삶을 꾸려 나갈 수 없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4차 산업 혁명이 요구하는 새로운 무장에 너무나 무디다. 가장 쉬운 예로 금융거래의 액티브 액션 같은 구닥다리 무기라든지, 에어 비엔비를 막는 제도라든지, 우버나 그랩 제도의 상륙 금지라든지, 타다를 둘러싼 불법 시비 같은 것이 그것이다. 금융거래의 장애물을 과감히 제거한 중국은 거지도 카드로 동냥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한테 용돈을 보낼 때도 보안 카드니, 비밀 번호니 해서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일찍 금융거래의 혁신을 이룩한 중국의 온라인 결재는 90%가 직불 카드나 체크카드를 이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15%에 불과하다.
세계 선진국뿐 아니라 중국 만해도 의사의 원격진단, 원격 처방으로 거리의 기오스크에서 약 구입이 가능하다. 교통 시장도 우버나, 그랩 같은 첨단적인 운반 수단이 동남아를 비롯해 거의 전 세계에서 통요 되지만 우리나라는 발도 들여놓지 못했다. 특히 택시 지옥을 부른 모스크바의 교통난도 새로운 제도인 ‘얀덱스 택시’의 모바일 앱 사용을 허락함으로써 단번에 해결 되었다고 한다. ‘얀센 택시’는 IT 회사가 개발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타다’와 비슷하다.
세상은 변한다. 사람들의 생활 방법도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 가는데 어떤 면에서는 우리나라가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유명 업종을 보면 법률이나 제도가 신속히 바뀌어야 따라 갈만한 것이 많다.
파이낸셜 타임스 같은 유력 매체들은 ▷사물인터넷 전문가(IoT), ▷인공지능 전문가, ▷증강현실 전문가, ▷자율 주행 차 전문가, ▷헬스 케어 전문가, ▷3D 프린트 전문가, ▷빅 데이터 전문가, ▷기업 프로 파일러, ▷노년 플레이어 등을 미래 유망 직업으로 전망했다. 이들 언론들이 전망한 유력 직종에는 우리나라에서 직업으로 인정되어 확실한 정책적 뒷받침을 하고 있는 업종은 많지 않다. 있다고 해도 규제에 막힌 것이 너무 많다.
미래 업종의 근무자는 거의가 AI와 관련이 있다. 앞으로는 4차 산업혁명혁명의 주요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여 플래트 홈 경제가 더욱 확산되기 때문에 창업가적 사고를 가진 직업인이 성공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더욱 광범한 국가적 규제 혁신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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