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통령 3년 전반부는 좀 태종스럽고 후반부는 좀 세종스럽게 국민이 볼 수 있게 보좌하겠다.”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한 말이다. 전과를 사면 받아 출마해서 국회의원 당선자가 된 21대 국회의원이 한 말에 대한 논평이었다.

태종스럽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태종을 평가하는 역사는 냉혹하다. 조선왕조의 기틀을 만든 공로는 인정하지만 그의 일생을 좋게만 평가하지 않는다. 태종은 충신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철퇴로 살해하고 아버지가 왕좌에 오르는 것을 도왔다. 이복동생인 세자 방석을 비롯한 숱한 충신들의 목을 베고, 큰 기둥 정도전을 제거하고 왕권을 차지했다. 그뿐인가. 세종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외척 배신이라는 명분으로 공작 정치를 벌여 세종의 장인을 참수하고 장모는 노비로 전락시켰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조금도 서슴지 않는 행보를 거듭한 왕이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참으로 처신하기 어렵다. 한 집안의 가장이나, 직장의 대표, 그리고 한나라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열배 스무 배 처신하기가 어렵다. 한발만 잘못 떼어도 수많은 사람에게 몇 백 발자국을 잘못 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거기에 있을 자질을 타고 난 사람이라야 한다는 말도 있다. 왕이나 대통령이 될 사람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야 한다는 말이 그런 뜻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꼭 자기가 뛰어나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란 말도 있다. 어쩌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그 자리에 앉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핏줄 하나 잘 타고 나서 왕이 되기도 하고 쿠데타 세력에 떠받혀 국가 원수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일단 그 자리에 앉기만 하면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 처신하기가 훨씬 쉽다는 얘기 까지 있다.

‘크기가 한 자(尺)밖에 안 되는 작은 나무도 높은 산위에 있으면 천야만야(千野萬野)한 골짜기를 내려다볼 수 있다. 폭군 중의 폭군인 걸(桀)도 황제 자리에 있어서 천하를 움직일 수 있었다. 걸이 현명해서가 아니라 그의 권세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요(堯)가 중국 역사상 가장 어진 인물이었지만 임금의 자리에 있어서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작은 마을 하나도 다스리지 못했을 것이다’(韓非子).

높은 자리란 이렇게 중요한 것이란 뜻일 것이다. 아무리 현명한 일지라도 그가 뜻을 펼 ‘자리’를 얻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한 척의 소나무가 아니라 백 척이 넘는 거목이라 할지라도 지리산이나 한라산 위에 있는 한 치 나무와 높이를 견주면 질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훌륭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 경륜을 펴 세상을 이끌 수 있지만 우매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면 탈선을 일삼아 세상을 그만큼 어지럽게 만들 수 있다.

현대적 국가는 왕조보다 훨씬 더 집권자의 폭을 좁게 묶어 놓았다. 따라서 특별히 세상을 바꿀 만한 대단한 정치를 하지 못했더라도 정해진 규칙만 지키다가 ‘산(山)’에서 내려 와도 박수 받으며 퇴장 할 수 있다. 자기 욕심만 너무 부리지 않고 거짓말 하지 않는다면 오늘날의 요순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작은 집단일지라도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은 우선 자기가 훌륭해서 그 자리에 앉았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오너의 아들이기 때문에 기업체의 사장이 된 것이고, 혈통을 이어 받았기 때문에 왕좌에 앉게 되고, 정치적 역학이나 이해득실이 맞아 떨어져 권력을 잡게 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나라 최고의 권좌에 있었던 사람들이 거의 모두 불행한 결말에 봉착 했던 것을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우리 전체의 책임이라고 얼버무리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그 보다는 산 위에 올라갔던 사람들의 처신 잘못이 훨씬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한 자 나무를 가장 높이 보이게 한 것은 지리산과 한라산이듯, 한 사람을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나라를 다스리는 대권을 준 높은 산은 바로 국민인 것이다. 4.19 혁명이 그렇고 촛불 혁명이 그러했다.

이제 국민들은 산 위,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나무가 모든 국민에게 한여름의 그늘이 되고, 모진 북풍의 바람막이가 될 것을 바란다. 산 위에서 자기 뿌리만 깊게 뻗으려고 산이 싫어하는 욕심을 내서는 절대 안 된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 산에서 내려오기가 편안하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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