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그룹에 내가 간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두산 베어스 야구단, 동아출판사와 동아TV, 연강 학술재단, 광고 회사인 오리콤, 춘천에 있는 춘천 골프장 운영 등이 있었다.
OB 베어스 야구단은 창단 첫 해에 우승한 명 구단이었다. 불출세의 무쇠팔 투수 박철순이 팬클럽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창단 원년의 우승뿐 아니라 22연승이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었다.
두산 그룹과 나 사이에서 중개 역할을 한 사람은 당시 기획 실장이던 박용만 씨였다. 네 형제 중 막내인 박용만 실장은 기획력이 뛰어나고 아이디어가 출중했다.
“사장님, 동아 출판사를 위한 획기적인 기획이 없을까요?”
어느 날 함께 차 한 잔을 마시고 나서 물었다.
“출판사는 인기 있는 잡지를 만드는 것이 제일이지요. 우리 한국일보에 자회사로 ELLE 라는 패션 잡지가 있는데 아주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다면 어떤 것이 좋겠습니까?”
“ELLE는 파리에 본사를 두었지만 지구촌 곳곳에서 엄청난 부수를 발행하는 황금 잡지입니다. 이에 필적 할 만 한 패션 잡지로 VOGUE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의 권유로 두산은 ‘보그’의 한국판 발행을 성사시켜 지금까지 발행하고 있다.
최근에 두산 그룹에 관해 두 가지 화제가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첫째는 두산 베어스가 삼성을 연속 두 번이나 물리치고 코리아 시리즈에 진출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코리안 시리즈 사상 획기적인 일이었다.
두산 베어스 팬들은
두산 그룹이 팔아버린 ‘0B 맥주’를 다시 사들여
옛날의 ‘OB 베어스’가 되기를 열망하고 있다.
두산은 가을 야구의 신화이다.
7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두산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박용만 전 회장이
구조조정을 끝내고 제2의 도약을 위해 기업을 떠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ESG경영에 나선다.
두산은 위기 속에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두산 베어스 팬들은 두산 그룹이 팔아버린 ‘0B 맥주’를 다시 사들여 옛날의 ‘OB 베어스’가 되기를 열망하고 있다.
또 하나의 화제는 박용만 씨가 두 아들과 함께 두산 그룹을 떠난다는 것이었다.
박용만 씨는 기획실장 시절 두산 그룹의 구조 조정을 성공적으로 끝낸 뒤 4년간 총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룹의 회장을 지낸 뒤 대한상공 회의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아버지 박두병 씨도 대한상공회의소 초창기에 회장을 지냈었다. 그런데 두산 그룹은 지난 주 “박용만 회장이 두산 경영연구원 회장 직을 사임 한다”는 발표를 했다. 두 아들과 함께 새로운 사업을 할 것이란 추측이 돈다.
1995년 형들의 의견을 나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던 박용만 실장은 나한테 확답을 요구했다. 그룹의 구조조정에 대한 결론을 내릴 시점이 온 것 같았다.
그런데 당시 나는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담당 부사장으로 취임한지 두 달밖에 안된 상태였다.
입사 두 달 만에 그만두겠다고 하는 것이 나를 부른 회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1985년 한국일보에서 ‘편집위원 겸 전산편집운영국장’이라는 직책을 그만두고 서울신문으로 옮겨가서 스포츠 서울을 창간했다.
스포츠서울이 승승장구하여 일간스포츠를 단숨에 누르고 판매 부수, 광고수주 1위를 차지하자 “친정을 잡아먹은 배신자”라고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데 꼭 10년 만에 내가 부사장으로 승진해서 돌아온 것을 모두 환영하고 있었는데 금방 떠난다면 “배신자는 역시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을 것 아닌가.
나는 고심 끝에 Y회장에게 한국일보 J 회장을 만나 내 문제를 좀 상의해 달라고 부탁했다.
며칠이 지난 뒤 Y 회장은 “입이 떨어지지 않아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답변을 해왔다. 내가 결심을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임원회의가 끝난 뒤 회장과 단둘이 앉아 입을 열었다.
“회장님, 두산 그룹에서 나하고 같이 일하자고 합니다. 저를 좀 놓아주실 수 없는지요.”
입이 떨어지지 않는 말을 했다.
J회장을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이 부회장 농담도 잘하시네 하하하” 하고 일어나 나가버렸다.
나는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나오면서 두산 Y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그 얘기 당분간 보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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