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당국 수염을 건드린 대구일보 연재소설  채국산인이란 필명으로 연재 되었다.
계엄 당국 수염을 건드린 대구일보 연재소설 채국산인이란 필명으로 연재 되었다.

감방이 만든 추리작가 수용되어 있는 동안 나는 다른 미결수보다는 대접 받으며 살았다.

감방 안의 지배자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과 누범의 감방장이었다. 그는 교도관의 눈이 미치지 않는 동안은 거의 왕권을 휘두르는 것과 같은 권한을 행사했다.

나는 기자 출신이라는 특수한 신분 덕분에 감방장의 배려를 받기도 했지만, 그보다 감방 수용자 전원을 위한 봉사를 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우두커니 앉아 있는 미결수들에게는 하루가 여삼추였다. 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내가 옛날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모두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임꺽정, 로빈훗, 그리고 루팡과 셜록 홈즈 얘기였다.

이렇게 매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나가자 감방 안에서 유력자 지위가 부여되었다. 서열 2위인 ‘고문’ 자리를 얻어 뼁끼통 청소도 면제되고, 담배를 피우는 순서도 2번째로 배정되었다.

그러나 이야기보따리가 끝나자 다시 찬밥신세가 되었다. 다시 2위 자리를 찾기 위해 의적과 탐정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살기 위한 창작이었다.

이 때 내가 만들어낸 추리 소설의 스토리가 1백여 편이었다. 뒤에 추리 작가로 활동하는 데 큰 밑천이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은 안정되어 갔다.

“그래, 원한다면 내가 죽어 주마. 죽어 주면 될 것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다. 모든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는 순간이었다.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계엄령은 해제되지 않았다. 모든 신문은 군 검열을 받아야만 했다.

7월 29일에 수감되고 한 달 가까이 지난 8월 하순의 어느 날, 막 잠이 들려던 저녁 8시경이었다.

“2715호. 패통!”

감방 밖 복도에서 형무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패통이란 어느 감방인지 알리기 위해 감방 문 앞에 설치된 일종의 신호기였다. 안에서 줄을 잡아당기면 붉은색의 신호패가 기차역의 신호등처럼 펴진다. 형무관은 그 신호를 보고 해당되는 감방 앞으로 와서 볼일을 본다.

조금 있다가 형무관이 문 앞에 와서 ‘시찰구’를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시찰구란 밖에서 불시에 감방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 작은 창구를 말한다. 안에서는 열 수가 없는 장치였다.

“2715호. 소지품 갖고 나와.”

형무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감방장이 벌떡 일어나 내 등을 철썩 치면서 말했다.

“야! 무기수 석방이다.”

“예?”

“임마! 형무관이 이 시간에 소지품 갖고 나오라는 것은 넥타이 공장에 가는 것 아니면 석방이야. 무기수는 형 확정이 안 되었으니 목 매달 리는 없고 풀려나는 거야.”

나는 그렇게 해서 한 달여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풀려나왔다.

뒤에 안 일이지만 나를 비롯한 기자 3명이 구속된 기사가 중앙 언론에 보도되자 여론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석방된 다음날 새벽에 수사요원이라는 사람 둘이 집으로 찾아왔다.

“우리 실장님이 아침 식사를 모시겠답니다.”

나는 가족들의 불안한 시선을 뒤로 둔 채 그들을 따라갔다. 그들은 OO예식장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이 기자, 수고 많았소.”

그 곳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와 있었다. 얼굴에 화색이 도는 그 남자가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뒤에 안 일이지만 중앙정보부 경북 지부 책임자인 J 대령이었다. 나는 훈계 아닌 훈계를 들으며 아침밥을 얻어먹은 뒤 그곳을 나왔다.

그 뒤 당시 대구일보 사주이던 여상원(呂相源) 사장의 사택으로 출소 인사를 하러 갔다. 여 사장은 대구 출신 경제인으로 대한 상공회의소 부회장직도 맡고 있는 경제계의 거물이었다.

1950년대 말 대구시장 선거의 부정 개표가 문제가 되어

중앙의 모든 매스컴으로 부터 연일 매도를 당하고 있을 때였다.

여 사장이 어느 날 편집국 간부회의에서 선거 관련 기사를 일체 쓰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편집국 간부들과 기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의자를 집어던지는 등 격렬한 반항을 했다.

편집국장 대행을 하던 이목우(李沐雨) 부국장은

그날 신문 1면 톱으로 개(犬公)이야기를 올리고는 사표를 내고 상경해버렸다.

이 사건은 아직도 전설처럼 전해져 오고 있다.

이목우 씨는 뒤에 한국일보, 서울신문 등에서 명 사회부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여 사장은 내가 어떻게 석방되었는지 그 배후 설명을 해주었다. 여 사장은 나를 석방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줄을 놓았다. 그러나 계엄사의 일이라 누구도 쉽게 나서주지를 않았다. 마지막으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찾아갔다. 박정희 의장은 대구의 육군 제2군 사령부에 있을 때 여상원 사장과 접촉을 해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박 의장은 여 사장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비롯해 박무림 기자와 조선일보의 최순복 기자를 석방하도록 지시했다.

여 사장은 일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고 했다.

여상원 사장은 자유당 시절에 부정선거 기사를 쓰지 못하게 편집국에 압력을 넣은 발행인으로 언론계에서는 평판이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일로 다시 능력 있는 사장이란 평을 들었다.

1950년대 말 대구시장 선거의 부정 개표가 문제가 되어 중앙의 모든 매스컴으로 부터 연일 매도를 당하고 있을 때였다. 여 사장이 어느 날 편집국 간부회의에서 선거 관련 기사를 일체 쓰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편집국 간부들과 기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의자를 집어던지는 등 격렬한 반항을 했다.

편집국장 대행을 하던 이목우(李沐雨) 부국장은 그날 신문 1면 톱으로 개(犬公)이야기를 올리고는 사표를 내고 상경해버렸다. 이 사건은 아직도 전설처럼 전해져 오고 있다. 이목우 씨는 뒤에 한국일보, 서울신문 등에서 명 사회부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나도 한국일보에서 같이 근무하며 그의 날렵한 저널리스트 기질을 부러워했었다.

 

이상우(SANG WOO LEE) 신문인, 소설가

언론인 이상우
언론인 이상우

現) 한국추리작가협회 이사장ㆍ한국증권신문 회장

前) 굿데이스포츠 대표이사 회장, 경향미디어 회장. 파이낸셜뉴스 사장, 스포츠투데이 사장, 국민일보 사장, 중앙대학교 신문방학대학원 객원교수, 일간스포츠 사장, 서울신문 전무, 한국일보 부사장, 스포츠서울 편집국장, 한국일보 편집부장, 영남일보 기자 

수상: 대한민국문화포장(2019), 한국추리문학대상(1987)

저서: 세종대왕, 이도, 신의 불꽃, 이상우와 함께 미스터리 완전독파, 도적질에도 철학이 있다. 추리소설 잘 쓰는 공식, 김종서는 누가 죽였나, 악녀 두번 살다. 밤 무지개, 정조대왕 이산, 죽이는 이야기, 마지막 숙녀, 굿데이굿맨 이상우, 정조대왕 미스터리 왜 그의 혁명은 실패했는가. 불새 밤에 죽다. 화홍문 가는 길, 개와 시인. 변명, 아내를 죽이는 99가지 방법, 변명, 아내는 실종중, 북악에서 부는 바람 등, 공포특급열차, 시간의 미화작업, 안개도시, 여의도 알리바이, 악녀유희, 역사에 없는 나라, 설록홈즈 정보테크닉, 세 여자 네번째 살인, 악녀의 성, 악녀와 함께 여행을, 모두가 죽이고 싶던 여자. 컴푸터살인. 악녀시대, 안개섬의 비밀, 파혼여행, 불새 밤에 죽다, 원효, 갈릴레이, 디즈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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