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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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가을의 일이다. 내가 한국일보에 재입사해서 3년간의 임원 임기를 마치고 자회사인 ‘(주)한국종합미디어’에 대표이사로 근무할 때였다.

이 회사의 회장은 장기영 회장의 며느리이며 고 장강재 회장의 부인 영화 배우 문희 여사였다.

이 회사에서는 세계적 패션 잡지인 ‘ELLE’ 한국판과 ‘프리미어’라는 영화 잡지를 발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국민일보의 K 사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신문사의 조희준 회장님이 좀 뵙자고 하는데 시간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슨 일인지요? 조 회장은 제가 인사드린 일이 없는데요.”

“좋은 일로 상의를 좀 드리고자합니다.”

그렇게 해서 여의도의 국민일보 12층 일식당에서 세 사람이 아침을 하게 되었다. 조회장은 내가 국민일보로 와서 새로운 스포츠 일간 신문을 하나 창간해 달라고 했다.

“모든 권한을 다 드리겠습니다.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하셔서 한국 제일의 스포츠 신문을 창간해 주십시오.”

그 외에도 엄청나게 좋은 조건을 제시해서 일을 맡기로 합의를 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뜻밖에도 한국일보의 C회장이 전화가 왔다.

“이 사장님, 내일 오전에 저하고 차 한 잔 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일이신지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오후 2시에 주주총회가 있는데 그전에 의논할 일이 있습니다.”

이튿날 아침 커피 한잔을 놓고 C회장과 마주앉았다.

“ELLE는 이제 궤도에 올라서 잘 굴러 가니까 한국일보를 좀 맡아 주시죠.”

한국일보 편집부장 시절 고 장강재 회장(왼쪽)과 문희 여사. 오른쪽이 필자
한국일보 편집부장 시절 고 장강재 회장(왼쪽)과 문희 여사. 오른쪽이 필자

너무도 뜻밖의 제안이었다. 마음이 착잡해졌다. 내가 한국일보를 그만둔 것은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회사의 재정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극약 처방을 제의 했는데, 이 처방이 사주 아들의 분노를 사서 타의로 그만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오라고 하니, 이번에 가면 3번째 입사가 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전날 국민일보 조희준 회장과 한 약속을 어떻게 어길 수 있겠는가.

“회장님 말씀은 고맙지만 24시간 늦었네요. 실은 제가 어제 국민일보 조희준 회장을 만나...”
사정 이야기를 하고 나서

“조희준 회장이 저의 둘째 아이와 동갑인 젊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과 한 약속을 하루도 가기 전에 어길 수가 있습니까?”

“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실 수 없나요?”

C 회장도 난감한 표정이었다.

“다음 기회에 회장님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두 번씩이나 불러주신 것은 한 없이 고맙습니다만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손만 한번 꼭 잡아주고 회장실을 나와서 ELLE 사무실로 갔다. 이번엔 문희 회장을 만나 떠나야 한다는 인사를 해야 할 판이었다.

문희 회장은 혼자 된 이후 사회 활동을 전혀 하지 않다가 내가 권유해서 회장으로 취임했기 때문에 내가 떠나겠다고 하면 얼마나 섭섭해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차마 입을 열지 못할 지경이었다.

“절대 안돼요. 가지 마시고 일간스포츠로 가세요. 여기는 겸직하면 되잖아요.”

문희 회장은 펄쩍 뛰었다. 나는 회장의 말 중에 일간스포츠를 거론하는 것이 이상해서 다시 물어보았다.

“아니 일간스포츠라니요?”

“제가 이 사장을 일간스포츠 사장으로 추천을 했거든요.”

그런데 왜 C회장은 나에게 한국일보를 맡아 달라고 했을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 의문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알게 되었다.

1998년 10월 나는 국민일보 신매체 창간 사장으로 발령을 받고, 일을 맡은 뒤 5개월 만에 ‘SPORTS TODAY'를 창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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