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전두환 11대 대통령이 취임한 후 나는 한국일보 편집국을 떠났다. 한국일보서 발행하던 주간한국과 주간여성의 편집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와 동시에 신문 제작을 혁신하기 위한 신문 전산화를 위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나는 권력과의 신경전에서 벗어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신문 제작 연구와 ‘재미있는 뉴스’ 즉 연예, 스포츠 소식과 화제 기사만을 다루는 대중문화와 관계된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기뻤다.
1982년 봄부터 1993년 봄까지 연예 잡지와 스포츠 신문의 편집국장을 하면서 권력과는 멀리 떨어진 색다른 뉴스의 세계에서 살았다. 권력과 마찰하면서 신문을 만들어야 하는 일에 진절머리가 난 판국에 영화, 연예, 스포츠 등 소프트한 기사를 주제로 한 업무를 하니 참으로 재미가 있고 보람도 느껴졌다.
그러나 스포츠서울 편집국장 일이 끝나고 서울신문 전무가 되자 다시 정치적 뉴스에 얽매이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1990년의 일이었다. 서울신문 수습기자 출신인 S 씨가 편집국장으로 임명되었다.
S 씨는 나의 고등학교 1년 선배였다.
이 일을 두고 대구 출신 경영진이 동창을 편집국장으로 임명한 것은
정실 인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전무이사인 나도 대구 출신이니 당시 득세하고 있는 TK 세력의 일부라고 치부하기도 했다.
1990년 신문 창간 붐과 함께 나온 일간지 M일보의 창간호에 느닷없이
‘서울신문의 임원, 편집국장, 정치부장이 모두 TK 세력으로 운운...’ 하는 터무니없는 기사가 대서특필됐다.
정치부장 K 기자는 대구 출신도 아니었다.
나는 M일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난생 처음 내 일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었다.
TK 세력이라는 오해는 그때부터 계속되었다.
당시 정계에서 실세로 군림하던 박철언(朴哲彦) 장관과 김윤환(金潤煥) 의원이
대구․경북 출신이라 내가 무슨 연줄이 있는 것으로 본 것 같았다.
김윤환 씨는 내가 영남일보 견습기자 시절 만났고, 대구일보서 함께 일한 일이 있었다.
그 후 그는 조선일보로 갔다가 정계로 나갔다.
박철언 씨는 나와 개인적인 관계는 없었다.
공식 석상에서 몇 번 만나 인사하고 지내는 사이 정도였다.
이 오해는 뒤에 내가 서울신문에서 밀려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서울신문은 정부가 대주주였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정부와 여당의 대변지 역할을 했다.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다 보니 기자들로부터 저항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편집국의 의견과 당국의 요구를 적절히 조정하는 것이 임원들의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였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정부․여당으로부터도 미움을 받고, 편집국으로부터도 불신을 받는 경우가 생겼다.
1990년의 일이었다. 서울신문 수습기자 출신인 S 씨가 편집국장으로 임명되었다. S 씨는 나의 고등학교 1년 선배였다. 이 일을 두고 대구 출신 경영진이 동창을 편집국장으로 임명한 것은 정실 인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전무이사인 나도 대구 출신이니 당시 득세하고 있는 TK 세력의 일부라고 치부하기도 했다.
그런 시각은 마침내 엉뚱한 기사로 나타났다. 1990년 신문 창간 붐과 함께 나온 일간지 M일보의 창간호에 느닷없이 ‘서울신문의 임원, 편집국장, 정치부장이 모두 TK 세력으로 운운...’ 하는 터무니없는 기사가 대서특필됐다. 정치부장 K 기자는 대구 출신도 아니었다.
나는 M일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난생 처음 내 일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었다.
TK 세력이라는 오해는 그때부터 계속되었다. 당시 정계에서 실세로 군림하던 박철언(朴哲彦) 장관과 김윤환(金潤煥) 의원이 대구․경북 출신이라 내가 무슨 연줄이 있는 것으로 본 것 같았다. 김윤환 씨는 내가 영남일보 견습기자 시절 만났고, 대구일보서 함께 일한 일이 있었다. 그는 학생 시절 문학청년이었다. 그는 시를 쓰고 나는 소설을 공부했다. 그 후 그는 조선일보로 갔다가 정계로 나갔다.
박철언 씨는 나와 개인적인 관계는 없었다. 공식 석상에서 몇 번 만나 인사하고 지내는 사이 정도였다.
그들의 세력이 왕성하던 시절, 나는 스포츠신문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교류가 있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오해는 뒤에 내가 서울신문에서 밀려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후, 오인환 공보처 장관이 서울신문의 임원은 일괄 사표를 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서울신문 사장은 교육부 장관을 지낸 윤형섭(尹亨燮) 씨였다. 윤 사장이 공보처를 다녀오더니 사표를 내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전했다.
윤 사장은 일간신문사 경력은 없었지만 언론이 무엇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부임하자마자 보수적인 언론인은 생각하지 못할 획기적 제안을 많이 내놓았다. 뒷날 경영의 핵심이 된 구조 조정을 과감히 추진하기도 했다.
나는 아직 임기가 많이 남았는데 왜 사표를 내야 하느냐고 알 만한 곳 몇 군데에 물어 보았다. 그 중 여당의 실세 중 한 사람이었던 김윤환 의원이 답변하기를, TK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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