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대구일보 사회면에 연일 톱기사로 사지폐 사건의 속보를 실었다. (사진 대구일보 기사 캡처)
당시의 대구일보 사회면에 연일 톱기사로 사지폐 사건의 속보를 실었다. (사진 대구일보 기사 캡처)

독방, 접견금지 

나는 대구형무소(지금의 교도소) 미결감에 수용되어 있으면서 매일 군 트럭을 타고 수성에 있는 제5관구 사령부 군 검찰관한테 심문을 받으러 갔다. 심문 받으러 갈 때는 수갑을 찬 위에 포승줄로 다시 묶어 상체를 꼼짝 못하게 하고 군 트럭에 서서, 무장한 헌병 두 사람의 계호 속에 형무소 문을 나갔다.

K라는 육군 중위가 담당 검찰관이었다. K 검찰관은 뒤에 대검 검사 등 검찰의 중요 간부를 지냈다.

K 검찰관은 매일 나와 하루 종일 입씨름을 했다. 대구일보에 보도된 기사의 제목인 ‘사지폐 통하는 이방지대’라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삼았다.

“피고인, 이방지대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오?”

“보통과는 다르다는 뜻입니다. 정상적이 아니란 표현이지요.”

“그게 아니라 이방이란 다른 나라라는 뜻이 아니오? 한반도에 다른 나라가 있나요? 다른 나라, 즉 대한민국의 국권이 미치지 않는 곳이 있다면 김일성이 통치하는 땅밖에 없지 않소. 감포가 김일성 치하라는 뜻인데, 이건 반국가적 표현 아니오?”

억지에 논리의 비약이었다.

“이방지대라고 하는 것은 문학적 표현이고 비유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어사전에는 이방이 분명히 다른 나라를 뜻한다고 되어 있어요.”

검찰관의 논리는 반국가적인 허위 내용을 유포하였으니 ‘특별범죄처벌에 관한 임시조치법’ 3조의 위반으로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해당되는 범죄라는 것이었다.

조서에 ‘이방지대’라는 단어가 수없이 나왔다. 그런데 검찰관은 한자로 ‘이방(異邦)’이 아니라 ‘이나(異那)’라고 자꾸 썼다. 보다 못한 내가 한자가 틀렸다고 지적하자 화를 벌컥 냈다. 자존심이 몹시 상한 모양이었다.

이 일로 나는 심한 보복을 당했다. 가족을 비롯한 외부인 면회를 전면 중지 당했다. 한 달을 갇혀 있는 동안 면회는 딱 두 번밖에 하지 못했다.

사건은 점점 커져서 ‘사지폐(私紙幣) 사건’으로 불렸다.

내가 구속된 지 3일 만에 감포 주재기자인 박무림 씨가 형무소에 들어왔다. 며칠 뒤에는 조선일보 대구 주재 최순복 기자도 제5관구 사령부 보통군법회의에 회부되어 대구형무소로 들어왔다.

처음 감방에 들어갔을 때는 억울하고 난감했다. 더구나 죄목이 ‘국가변란죄’로,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했다. 워낙 어마어마한 굴레를 썼기 때문에 솟아날 구멍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계엄 군법회의에 회부된 소위 시국사범이 더러 있었으나 같은 감방에 수용하지 않아 나는 잡범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감방 동료들은 나를 ‘무기수’라고 불렀다. 감방 밖에서는 이름 대신 미결수의 고유번호를 사용했지만 감방 안에서는 모두 별명을 지어 불렀다

 

대구에 있는 변호사 14명이 나를 위해 무료 변호인단을 조직했다. 대표격인 박찬(朴燦) 변호사가 한 번 면회를 왔다. 박 변호사는 뒤에 정계에 진출해 공화당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다른 한 번은 서울에서 신문편집인협회를 대표해 홍종인(洪鍾仁) 회장이 온 것이었다.

가족이나 회사 동료들은 아무도 면회를 오지 못했다. 수갑 차고 포승줄에 묶인 채 트럭을 타고 호위 헌병들에 둘러싸여 출정할 때, 형무소 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노모와 아내를 잠깐 내려다볼 수 있을 뿐이었다.

노모는 지팡이를 짚은 채 트럭 위의 아들과 눈이라도 한 번 마주치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내는 임신 9개월의 몸으로 형무소 철문 앞 뙤약볕에 서서 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얼굴이 햇볕에 까맣게 타 있었다. 내가 언제 지나갈지 모르니까 몇 초도 안 되는 순간의 눈 맞춤을 위해 하루 종일 기다린 것이었다. 하긴 법대로 한다면 죽을죄를 지은 죄인이니 그렇게 엄중히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 대구일보 편집부장이던 필자(앉은사람)와 문화부장이던 이원두씨. 이원두씨는 뒤에 한국일보, 경향신문을 거쳐 파이낸셜뉴스 주필을 지낸 소설가이다.
당시 대구일보 편집부장이던 필자(앉은사람)와 문화부장이던 이원두씨. 이원두씨는 뒤에 한국일보, 경향신문을 거쳐 파이낸셜뉴스 주필을 지낸 소설가이다.

이 사건은 점점 커져서 ‘사지폐(私紙幣) 사건’으로 불렸다.

내가 구속된 지 3일 만에 감포 주재기자인 박무림 씨가 형무소에 들어왔다. 며칠 뒤에는 조선일보 대구 주재 최순복 기자도 제5관구 사령부 보통군법회의에 회부되어 대구형무소로 들어왔다.

나는 변호사 외에는 모든 접견이 금지 되었을 뿐 아니라 형무소 안에서도 독방 감금의 형벌과 타 감방 이송을 여러 번 했다. 검찰관과 심하게 다툰 후유증 같았다.

내복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밖으로 내보내고 새 내의를 차입시켜 전달해 주었다.

뒤에 석방될 때 개인 물건을 가져가라고 했다. 내가 수감 중에 내보낸 내복들을 밖에 전달하지 않고 그대로 창고에 쌓아 두었다가 내주었다. 곰팡이가 피고 반쯤 썩어 냄새가 났다.

처음 감방에 들어갔을 때는 억울하고 난감했다. 더구나 죄목이 ‘국가변란죄’로,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했다. 워낙 어마어마한 굴레를 썼기 때문에 솟아날 구멍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계엄 군법회의에 회부된 소위 시국사범이 더러 있었으나 같은 감방에 수용하지 않아 나는 잡범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감방 동료들은 나를 ‘무기수’라고 불렀다. 감방 밖에서는 이름 대신 미결수의 고유번호를 사용했지만 감방 안에서는 모두 별명을 지어 불렀다. ‘안경잽이’, ‘불국사’ 등으로 불리는 사람도 있었다. ‘불국사’는 불국사에 수학여행 온 여학생을 강간했다가 구속된 미결수였다.

나는 처음 ‘무기수’라는 별명으로 불릴 적에는 앞이 캄캄한 절망을 느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내가 무슨 잘못이 있느냐, 잘못된 정책을 바로 잡기 위해 쓴 기사에 왜 이런 보복을 당해야 하느냐는 생각으로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참기 어려웠다. 심문하는 계엄사 검찰관에게 반항적인 언사를 퍼부은 것은 그나마 자제를 한 것이었다.

“가난한 영세 상인인 구멍가게나 문방구, 시장 콩나물 장사들이 잔돈이 없어 물건을 못 팔게 만들었는데, 이게 누구의 잘못이란 말입니까?”

“그 문제와 허위 사실을 과장해서 유포한 것은 별개의 문제요.”

검찰관과 나는 결론 없는 논쟁을 매일 계속했다.

내가 갇혀 있던 감방은 3평 남짓한 곳으로, 좁고 한증막 같은 방에 무려 22명의 미결수가 수용되어 있었다. 그나마 윗목에는 뼁끼통으로 불리는 커다란 변기통이 차지하고 있어 잘 때는 다리를 서로 겹쳐야 했다. 땀이 범벅이 되어 마룻바닥이 흥건했다.

형무관이 우리를 하루에 한번 15분 동안 운동장에 데리고 가서 체조를 시켰다.

“저기 담 넘어 망루 보이지?”

감방장이 친절하게 높은 담 너머에 있는 망루를 가리켰다.

“예.”

“그 곳이 넥타이공장이야.”

“넥타이공장이 왜 형무소 안에 있어요?”

“이런 맹추. 목매다는 곳이란 말이야.”

“아, 예.”

나는 소름이 끼쳤다.

“무기수는 가지 말아야 할 텐데...”

나에게 씌워진 죄목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미결수들은 감방 안에 갇혀 있는 상황임에도 바깥 뉴스에 밝았다.

“어제 밤에 김지미와 최무룡이 간통하다가 구속되었대.”

“뭐? 정말이야?”

1960년대를 휩쓴 남녀 톱스타에 관한 사건으로 굉장한 뉴스였다.

어제 밤에 서울에서 일어난 일을 대구 감방에 있는 미결수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알 수 있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계속>

이상우(SANG WOO LEE) 신문인, 소설가

언론인 이상우
언론인 이상우

現) 한국추리작가협회 이사장ㆍ한국증권신문 회장

前) 굿데이스포츠 대표이사 회장, 경향미디어 회장. 파이낸셜뉴스 사장, 스포츠투데이 사장, 국민일보 사장, 중앙대학교 신문방학대학원 객원교수, 일간스포츠 사장, 서울신문 전무, 한국일보 부사장, 스포츠서울 편집국장, 한국일보 편집부장, 영남일보 기자 

수상: 대한민국문화포장(2019), 한국추리문학대상(1987)

저서: 세종대왕, 이도, 신의 불꽃, 이상우와 함께 미스터리 완전독파, 도적질에도 철학이 있다. 추리소설 잘 쓰는 공식, 김종서는 누가 죽였나, 악녀 두번 살다. 밤 무지개, 정조대왕 이산, 죽이는 이야기, 마지막 숙녀, 굿데이굿맨 이상우, 정조대왕 미스터리 왜 그의 혁명은 실패했는가. 불새 밤에 죽다. 화홍문 가는 길, 개와 시인. 변명, 아내를 죽이는 99가지 방법, 변명, 아내는 실종중, 북악에서 부는 바람 등, 공포특급열차, 시간의 미화작업, 안개도시, 여의도 알리바이, 악녀유희, 역사에 없는 나라, 설록홈즈 정보테크닉, 세 여자 네번째 살인, 악녀의 성, 악녀와 함께 여행을, 모두가 죽이고 싶던 여자. 컴푸터살인. 악녀시대, 안개섬의 비밀, 파혼여행, 불새 밤에 죽다, 원효, 갈릴레이, 디즈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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