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도메인으로 인터넷 열풍을 일으켰다는 보도. 굿데이는 창간하자 마자 유례없는 초고속 성장으로 언론 3위, 사이트 16위로 급부상했다.  당시 가요는 10대들의 우상으로 HOT가 인기를 얻고 있었다. 
hot 도메인으로 인터넷 열풍을 일으켰다는 보도. 굿데이는 창간하자 마자 유례없는 초고속 성장으로 언론 3위, 사이트 16위로 급부상했다.  당시 가요는 10대들의 우상으로 HOT가 인기를 얻고 있었다. 

2001년 당시는 새로운 신문을 창설하기에는 좋은 배경이 아니었다. 신문 창간을 앞둔 몇 달 전에 미국에서 트레이드 센터 쌍둥이 건물이 피랍 여객기에 의해 폭파되는 대 참사가 일어났다. 이 사건은 전 세계에 충격을 주어 곧 전쟁이 날 것이라는 보도까지 공공연히 나돌던 시대였다.

한국에도 큰 충격이 다가와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으면 상업 관고가 움츠려 들 것이다. 그러면 광고 유치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질 것이고 신생 신문은 따라서 어렵게 될 것이란 전망이었다.

그러나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과거 스포츠 서울과 스포츠 투데이를 성공시킨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그런 악조건 쯤은 충분히 극복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상우가 또 신문을 만든대. 이번에는 나도 꼭 참여해야 돼.”

전국의 가판 업자들이 몰려왔다.

“이상우가 만들면 성공한다. 이상우는 마이더스의 손이 아닌가.”

과거 내가 창간할 때 가판으로 재미를 본 전국의 가판 도소매상 들이 회사로 몰려왔다.

지역별로 가판 독점을 하자면 보증금을 걸어야 했다. 적게는 몇 백만 원에서부터 크게는 몇 억 원까지 되었다. 돈을 싸들고 연줄을 찾아 나를 직접 찾아오는 가판 업자들도 많았다.

지역 판매 뿐 아니라 철도, 공항, 편의점, 터미널 등에서도 가판 계약을 하자고 왔다. 서초동 고속 터미널에는 굿데이만 판매하는 점포가 14곳이나 생겼다.

가판으로 모인 보증금이 40억 원을 훨씬 넘었다.

2001년은  뉴미디어 시대가 열렸다.

굿데이는 15억여 원을 투자해 뉴미디어 본부를 자회사로 설립했다.

보통 뉴미디어를 설립할 때는 신문의 제호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지만

goodday는 그렇게 하지 않고

부르기 좋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메인을 찾기로 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뮤직 그룹 HOT의 명칭을 사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도메인을 가진 사람이 먼저 등록을 해 놓고 양보를 하지 않았다.

고심 끝에 3억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HOT를 사들였다.

이 도메인은 크게 힘을 발휘해서 빠른 시일 내에 인터넷을 휩쓸게 되었다.

주식을 사겠다고 인맥을 통해 찾아 들어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창간호가 나오기 전에 회사에는 큰돈이 쌓였다.

나는 한국 언론사 중에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최고의 인재를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스포츠 신문은 모두 5개였다. 일간스포츠, 스포츠서울, 스포츠조선, 스포츠투데이 그리고 굿데이였다.

아웃소싱을 비롯해 월급을 주는 사원이 250명에 이르렀다. 물론 5개 스포츠 신문 중에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인재들을 스카웃 해왔다.

독자를 끌기 위해서는 내용이 좋아야했다. 내용 중에도 극화가 차지하는 비율이 굉장히 높았다.

나는 톱클래스에 있는 만화가를 모두 불러 동시에 연재를 하기 위해 힘을 기울였다.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정상의 위치에 있는 이현세, ‘수호지’와 ‘임꺽정’으로 일간스포츠의 지가를 올린 고우영, 그리고 톱3에 빠질 수 없는 허영만 3명의 작품을 창간호부터 동시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고료도 파격적으로 지불했다. 모두 한 달에 1천만 원 이상을 주었다. 어느 작가는 연재 조건으로 외제 자동차 한 대와 선불 1억 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goodday 창간 리셉션서 창간사를 발표하고 있는 필자
goodday 창간 리셉션서 창간사를 발표하고 있는 필자

전국 150여 곳의 가판 업자들과 직판 계약을 체결했다. 직영하는 판매 시스템이 전국에 600여 곳에 달했다. 배달과 수금이 큰 문제였지만, 경향 신문의 전국 지사지국 조직을 활용해서 쉽게 해결했다. 물론 배송 비용과 수금 및 보급에 따른 리베이트는 톡톡히 지불했다.

경향신문이 들어가는 곳에는 자동적으로 goodday가 매일 아침 배달되었다.

서울의 지하철 가판대 300여 곳에 goodday 광고를 부착했다.

그 무렵 싹트기 시작한 뉴미디어 붐을 놓치지 않았다. 15억여 원을 들여 뉴미디어 본부를 자회사로 설립했다. 보통 뉴미디어를 설립할 때는 신문의 제호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지만 goodday는 그렇게 하지 않고 부르기 좋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메인을 찾기로 했다.

마침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뮤직 그룹 HOT의 명칭을 사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도메인을 가진 사람이 먼저 등록을 해 놓고 양보를 하지 않았다. 고심 끝에 3억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HOT를 사들였다.

이 도메인은 크게 힘을 발휘해서 빠른 시일 내에 인터넷을 휩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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