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을 지면 속으로 스포츠서울은 광고 게재고(揭載高)에서도 날마다 신기록을 세웠다. 외부에 하청을 준 영화 광고만 한 달 게재고가 7억~8억 원에 이르렀다. 당시의 물가로 보면 경제지나 종합지 영화 광고의 10배에 가까운 수주액이었다.
광고와 연계된 독자 퀴즈를 개발하였을 때도 엄청난 숫자가 응모했다. 응모한 엽서가 1백만 장을 넘어서서 추첨하러온 인기 연예인들이 엽서더미 속에 파묻힐 정도였다.
신문의 위력이 커지니까 수익 사업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 중에서도 야구 경기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전화 중계’ 사업은 크게 히트를 쳤다. 이 사업은 뒤에 PC 통신 사업으로 발전하여 연간 1백억 원에 이르는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일간스포츠는 한자로 된 제호 ‘日刊’을 ‘일간’으로 바꾸고,
검정색 글씨를 진한 청색으로 바꾸었다.
지면 혁신 작업도 함께 했다.
50년 동안 지면을 장식하던 ‘컷’ 제목을 모두 없앴다. 모든 제목은 활자만으로 달게 했다.
그리고 편집의 불문율로 되어 있는 제목의 글자 맞추기를 파기했다.
뉴스의 전달은 이미 PC통신을 통해 젊은 독자들의 시각이 변하고 있는데
신문만 변화를 거부하고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PC통신이 인터넷으로 가는 길목에서 신문 독자를 휩쓸어가고 있던 시대였다.
. PC 통신의 인기 작가 권경희(權敬姬) 씨 등을 지면에 등장시켰다.
권경희 씨의 <요설록>은 온라인 세대의 인기 연재물이 되었다.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한 권 씨는
뒤에 상담심리학을 전공하여 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 인연으로 7년 뒤 권경희씨는 필자와 결혼했다.
PC 통신을 이기는 길은 지면에서 그 세력을 인정하고,
PC통신이 좇아가지 못하는 영역으로 승부를 내는 것이었다.
올림픽 조직위원회 사업인 버스 광고 사업을 가져와 큰 수입을 올렸다. 86 아세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는 수입 사업으로 전국의 버스에 광고를 내는 사업을 고안했다. 그러나 수지가 맞지 않을 것이란 예측으로 광고 대행사들이 외면했다. 나는 이우세 사장에게 우리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건의하여 대행 독점 계약을 맺었다. 이 사업은 예상을 뒤엎고 많은 흑자를 내 서울 신문이 적자 운영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나는 1993년 3월에 서울신문을 떠나 1년 정도 소설가로만 활동하다가 1995년 1월부터 한국일보사의 초청을 받고 일간스포츠 책임자가 되었다. 한국일보의 전산편집국장자리에서 떠난 지 꼭 10년 만에 부사장이 되어 되돌아왔다.
그동안에 스포츠조선이 약진하여 2위 자리에 있었고 일간스포츠는 역사가 가장 오래이면서도 3개 스포츠 신문 가운데 3등을 하고 있었다.
나는 우선 독자들의 의견을 물어 한자로 된 제호 ‘日刊’을 ‘일간’으로 바꾸고, 검정색 글씨를 진한 청색으로 바꾸었다.
지면 혁신 작업도 함께 했다. 50년 동안 지면을 장식하던 ‘컷’ 제목을 모두 없앴다. 모든 제목은 활자만으로 달게 했다. 그리고 편집의 불문율로 되어 있는 제목의 글자 맞추기를 파기했다. 이 작업은 편집의 근간을 이루는 법칙을 깬 것이었다. 이 파격적 메이크업의 혁명은 뒤에 모든 일간 신문이 따라왔다.
뉴스의 전달은 이미 PC통신을 통해 젊은 독자들의 시각이 변하고 있는데 신문만 변화를 거부하고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PC통신이 인터넷으로 가는 길목에서 신문 독자를 휩쓸어가고 있던 시대였다.
젊은 세대 사이에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같은 PC 통신 매체와 싸울 준비를 갖추었다. PC 통신의 인기 작가 권경희(權敬姬) 씨 등을 지면에 등장시켰다. 권경희 씨의 <요설록>은 온라인 세대의 인기 연재물이 되었다. 권경희 씨는 올림픽조직위원회 근무, PC 통신 사이트 운영 등의 경험으로 스포츠와 온라인 세대의 생리를 잘 알고 있어 일간스포츠의 제작 방향에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제공했다.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한 권경희 씨는 뒤에 상담심리학을 전공하여 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 인연으로 7년 뒤 권경희씨는 필자와 결혼했다.
PC 통신을 이기는 길은 지면에서 그 세력을 인정하고, PC통신이 좇아가지 못하는 영역으로 승부를 내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무기는 인기 작가의 연재만화였다. ‘야설록’ 같은 인기 만화가를 확보하고 독자를 붙드는 정책도 주효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두고 시민단체들이 저질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그 중에도 소위 ‘음대위(淫亂物對策委員會)’라는 시민 단체가 가장 스포츠 신문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스포츠조선이 창간되면서부터 시작된 음대위와의 전쟁은 종합지들이 권력과 대결하던 것 이상으로 치열한 싸움이었다. 10여 년 간 싸움이 계속되었다.
일간스포츠가 가판대의 선두를 되찾자 스포츠 신문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와 함께 음대위의 추격도 더욱 과열되어 갔다.
음대위는 마침내 사직 당국으로 이 문제를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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