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 150여 명은 25일(1974년 10월) 새벽 편집국에서 민주언론 수호를 위한 결의문과 행동 지침을 다음과 같이 채택했다. 한국일보 기자 일동은 언론부재의 현실 앞에서 진실을 전달하는 사명을 다하지 못했음을 국민 앞에 부끄럽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의 방관이나 주저는 우리의 역사 앞에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이 되고 있음을 통탄한다. 지난 22일부터 철야로 진통해온 우리는 여기 굳게 서서 민주 언론을 사수할 것을 결연히 선언한다.
우리는 또한 언론에 대한 통제와 억압이 국가의 안보와 발전에 하등의 도움이 될수 없음을 선언한다. 자유는 스스로 쟁취할 수밖에 없다는 당위 앞에... (이하 생략. 한국일보 1974. 10.25일자 1면)
밤낮을 잊고 윤전기를 껴안고 60시간이 넘게 지루한 투쟁을 벌인 경과가 활자화 되는 순간 기쁨에 벅찼다. 고작 3단이냐는 허탈감이 엄습해 왔다. 하지만 3단이 2년째를 맞은 유신정권에게 주는 의미는 중대했다. (1974년 겨울 40쪽)
필자가 언론 현장에 있을 때의 일이었다. 유신 독재정부에 저항하는 기사를 썼다가 한국일보 발행인(장강재)과 편집국장(김경환) 종합편집부장(이상우) 등 간부 3인이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데 대한 기자들의 저항이었다. 당시는 엄중한 긴급조치 9호가 발동되어 자유로운 집회는 물론 모든 언론기관은 기사 검열을 받아야 하며 조금이라도 정권의 눈에 거슬리면 가차 없이 연행, 구금되고 고문을 단행하기도 하던 암흑기였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10.24 언론 자유 선언’의 첫발을 내디딜 때는 모두가 가혹한 보복을 각오해야만 했다.
유신독재 시절의 ‘긴급조치 9호’는 언론자유에 대한 염라대왕이었다. 집회, 시위, 또는 신문 방송, 통신, 문서, 도화, 음반 등 표현물로 헌법을 부정하거나 왜곡, 비방하거나 그 개정을 주장하는 행위는 영장 없이 체포 처벌하며 언론기관은 폐간 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대한민국 언론인들은 수십 년 동안 목숨을 내걸고 독재 권력과 싸우는 ‘기자 정신’을 발휘해왔다.
그런데 명색이 언론자유의 깃발을 달고 출발한 언론사 출신의 한 국회의원의 요즘 언동은 모든 언론인에게 너무나 커다란 실망과 자괴감을 안겨주었다.
이 야당 국회의원은 서릿발 같은 ‘기자 정신’을 망각하고 권력에 눈이 어두운 것인지, 사리분별을 못할 만큼 공명심에 넘쳐 타락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한때 언론인이었던 사람들을 너무나 부끄럽게 했다.
더구나 이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이 ‘청담동 괴담’을 내세워 169석의 거대 야당이 당론으로 거론하는 데 까지 번진 것은 누가 보아도 입이 딱 벌어지게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다.
당의 최고 결정 기구인 최고회의에서 TF팀 구성 제의까지 나오고 국정 농단이라고 규탄하기도 했다. 당 대표는 고개만 끄덕이고 그냥 있었다고 한다.
당대표가 연일 범죄 연루를 의심케 하는 기사가 폭로되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야당이기는 하지만 피할 방법 치고는 너무나 치졸하다는 평을 들을 수밖에 없다.
국정 감사는 ‘야당의 시간’인데 이 ‘청담동 폭탄’을 스스로 터뜨려 의사당을 안개로 덮어버렸다.
여당에서는 재빨리 아직 구성도 안 된 윤리위에 제소까지 했다. ‘질의’로 포장된 오물 폭탄을 맞은 한동훈 법무장관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 윤 대통령도 국민을 부끄럽게 했다고 규탄했다.
폭탄을 던진 전직 언론인 국회의원은 부동산 의혹으로 얻은 별명 ‘흑석동 거사’가 이젠 ‘첨담동 거사’가 되었다는 빈정거림을 받고 있다.
‘청담동 거사’는 수습기자들도 숙지하고 있는 사건의 '5W 1H'의 원칙도 몰랐단 말인가. ‘청담동 거사’는 사건의 내용이 상식을 넘어도 너무 넘어선 것인데 보충 취재도 전혀 하지 않고 데스크에 던져 망신을 당한 노(老) 기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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