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체제 상징 유엔사 DMZ 관할...대통령·장관까지 출입 통제

 

힐러리 전 국무장관이 2009년 2월 방한해 UNC 겸 ROK-US CFC을 방문헤 군인들과 찍은 기념사진 @자료사진
힐러리 전 국무장관이 2009년 2월 방한해 UNC 겸 ROK-US CFC을 방문헤 군인들과 찍은 기념사진 @자료사진

유엔사령부(United Nations Command·UNC·국제연합군 사령부)는  1950년 7월 7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유엔 안보리 ‘결의’(Resolution)로 창설된 다국적 연합군이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83호·84호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적 법적 권한을 부여한다. 유엔기 아래 군사행동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유엔군사령관은 주한미군 사령관이 겸직한다. 

현재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유엔사령부는 1948년 창설된 유엔의 유엔 평화유지군(United Nations Peacekeeping)과 다른 군대이다.  평화유지군이 파란색 방탄모를 착용하고 중장비를 흰색으로 칠하고 큼지막한 UN 마크를 붙이는 등 위장 효과를 거의 없다시피 만드는 것도, 이들이 교전 임무가 아닌 치안 유지 임무를 맡기 때문이다. 1988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유엔사령부는 1957년 7월 1일 창설된 주한미군(USFK)이 지원과 훈련 등을 담당하고 있다.

이 같은 유엔사령부의 성격을 두고 논란이 있다. △유엔의 산하조직인 공식군사기구인가 △유엔이 승인한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인가 △유엔과 전혀 무관한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인가 등이다.

◆유엔사 설립배경

1950년 6월 25일 새벽, 한국전쟁 발발한다. 한국전쟁 발발하기 15일 전에 창설된 조선인민군 제1군단(5,300명)은 임진강을 건너 서울을 향한다. 3일 만에 서울을 접령한다. 제2군단(5,400명)도 춘천과 인제를 거쳐 홍천을 접령 후 3일 만에 수원을 접령한다. 1군단은 전세가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6월 30일까지 한강을 건너지 않는다. 국회를 소집해 통일 정부 수립을 추진한다.  

미·소 냉전(美·蘇 冷戰)상황에서 소련과 그 동맹국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남침에, 미국은 남한을 지원하기 위해 유엔(UN)의 후원아래 동맹을 결정한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남침을 규탄하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제82호(1950.6.25.)제83호(1950.6.27)를 통과시킨다.

위 두 결의에 기초해 미국을 비롯한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등16개국은 유엔 회원국 자격으로 참전을 결정한다. 34만 1000명이 파병된다. 유엔 산 하기구가 의료와 보건을 제공한다.

한국전쟁에서 다국적군을 지휘할 유엔사가 만들어진다. 유엔은 평화를 파괴하는 북한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통합사령부(unified command under United States)’ 창설이 권고한다는 취지의 제84호(1950.7.7.)를 결정한다.

남한의 군대와 원조를 제공하는 회원국들은 미합중국 하의 통합 사령부에 군대와 원조를 제공할 것을 권고했다.

대한민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7월 15일 유엔군 총사령관(CINCUNC)인 맥아더에게 대한민국 육해공군의 작전 지휘권을 위임한다.

 ②1975년 30차 유엔총회에서 ‘유엔사’ 명칭 도명(盜名)확인 해체결의

한국전쟁 당시 트리그부 리(Trygve Halvdan Lie·1896.7.16.~ 1968.12.30) 유엔(UN)사무총장은 안보리 결의에서 ‘유엔의 군대’를 창설를 바란다. 리가 추진했던 군대가 오늘 날의 유엔평화유지군(United Nations Peacekeeping)이다. 미국은 반대한다. 7월 6일 노르웨이의 아르네 순데(Arne Sunde·1883.12.6.~1972.7.30.) 전 유엔안보리 의장은 다시 한 번 미국측 결의안 3항에 ‘유엔을 위한 기구로서’라는 단어를 넣을 수 있는지 문의한다.  미국은 단호히 반대한다.  7월25일 오스틴 유엔미국대사는 (미국)통합사령부명의의 첫 보고서를 안보리에 제출한다. 

같은 날 도착한 미국 정부의 서한에는 맥아더가 지난 7월7일 도쿄에서 ‘유엔사령부(United Nations Command. UNC)’ 일반명령 1호로 ‘유엔사령부’를 창설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때 처음으로 유엔사령부란 명칭이 사용된다.

되었다. 그 뒤 8월의 통합사령부 2차보고서부터는 유엔사령부와 통합사령부라는 명칭을 혼용해 사용하기 시작한다. 

미국이 7월7일 안보리결의안에서 그 토록 고집하던 '미국통합사령부'라는 명칭을 7월25일 유엔사령부로 변경하게 된 것은 미국의 법 절차와 연관이 있다. 미국통합사령부 명칭은 미국 대통령이 먼저 ‘전쟁선포’를 해야 사용할 수 있다. 미국 헌법1조에 의해 전쟁 선포권은 의회에 있다. 당시 미 의회에서 전쟁을 결정하지 않았다. 맥아더는 '미국통합'을 빼고 대신 유엔의 명칭을 도명(盜名)해 '유엔사령부'라고 명칭을 만들었다.

@유엔사 홈페이지
@유엔사 홈페이지

1975년 30차 유엔총회에서 서방 측의 남북대화 촉구·항국적 평화 보장을 위한 협정 개시 등을 촉구하는 결의안과 공산권 측의 유엔사령부 해체·미군 철수 등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동시 채택된다.  당시 미국이 사용한 ‘유엔사’ 명칭이 오칭(誤稱 misnomer)이고 도명된 사실이 확인된다.

미국은 현재까지 ‘유엔사’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유엔사’는 한국 전쟁을 치르고 정전 협정에 당사자로서 서명까지 했다.  명칭도 부존재하고 유엔의 보조기관도 아닌 유령기구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③한국전쟁 참전 군대 '유령부대'

유엔사령부가 부존재 논란에 휩싸이면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군대의 소속에 관한 논란이 제기된다. 참전 용사의 소속을  ‘미국 통합사령부’로도 볼 수 없기 때문.  미국 헌법 제1조에 의해 전쟁선포권은 의회에 있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국의  의회는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다. 미국의 행정부도, 입법부도, 사법부도 한국에서의 전쟁을 결정한 적이 없다. 이는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이 미국 내에서 전시 군인으로서 법적 지위를 갖지 못한다.

트루먼 대통령도 1950년 6월 29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사태는 전쟁이 아닌 경찰 행위’라고 했다. 해적과의 전투나 소 떼도둑을 잡기 위한 군대 동원 정도로 가볍게 보고, 의회의 동의도 없이 한국전쟁에 군대(경찰)를 파병한 것. 그러면서 트루먼은 1950년 12월 6일 「전쟁」 선언을 하지 못하고, 편법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에 군대를 보냈다.

정전협정서 서명 가짜 논란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북한·중국·유엔사(국제연합군)가 정전협정서에 서명한다.  마크 웨인 클라크(Mark W. Clark) 미국 육군 대장은 국제연합군(United Nations Command) 총사령관으로 서명한다. 유엔사가 부존재설에 시달리며  정전협정 자체가 부존재하고 불성립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953년 7월 27일 한국이 빠진 채 북한ㆍ중국ㆍ미국 대표의 서명으로 체결된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모습 @공정뉴스
953년 7월 27일 한국이 빠진 채 북한ㆍ중국ㆍ미국 대표의 서명으로 체결된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모습 @공정뉴스

정전협정 협정 체결이 이뤄지기 2년 전인 1951년부터 논의됐다. 당시 유엔사 측과 북한 측은 비밀 접촉을 한다.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첫 정전 회담을 연다. 1952년 7월 개성에서 본회담이 시작된다. 전쟁 포로 문제 등으로 회담이 중지된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최종 서명함으로써 협정이 체결된다.

한국과 북한은 전쟁의 완전한 종식인 종전(終戰)이 아닌 일시적으로 전투가 중단된 정전(停戰) 상태이다. 70년을 이어오고 있다. 유엔사령부의 평상시 주 임무는 정전협정 유지 관리다.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DMZ)통과·출입 허가권을 행사하고 있다. 누구든 어떤 목적이든 비무장지대를 통과하려면 유엔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유엔사는 한국전쟁의 정전 협정에 상징으로 한반도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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