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고집이 때때로 정책 집행의 동력이 된다. 그러나 지도자의 평균적인 미덕은 고집이 아니라 귀가 얼마나 열려 있으며 사고와 발상이 얼마나 유연한가로 평가한다.
귀가 열려 있으면 전문가와 국민의 소리를 놓치지 않으며 사고와 발상의 유연성은 상황이 바뀔 때 효율적으로 대응할 능력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이런 미덕은 역사적 과제나 범인류적 과제 앞에서 더욱 빛을 발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길게는 10년, 짧게는 5년 동안 계속해 온 탈원전 정책을 버리고 원자력 발전을 청정에너지의 중심에 두겠다고 변신한 것은 대단한 결단이다.
마크롱은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 제로를 목표로 한 ‘범 인류적’ 또는 ’범지구적 과제’를 달성하는 가장 효율적 방안을 자신이 배척했던 원전에서 발견, 서슴없이 정책을 뒤집은 과단성은 세계적 지도자로서 부끄러움 없는 선택이라 하겠다.
탈원전, 또는 원전 기피에서 원전 수용으로 돌아선 국가는 비단 마크롱의 프랑스만이 아니다. 이미 유럽 10개국 16명의 경제 에너지 장관은 원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공동 기고문을 프랑스 피가로를 비롯한 유럽 여러 신문에 게재했다.
또 후쿠시마 원전의 해일 피해로 세계적인 원전 기피 현상에 불을 질렀던 일본조차 기시다 후미오 내각 출범과 함께 원전 회귀를 공언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탈 탄소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천연가스 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것과 유럽의 경우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는 러시아가 정치적인 위력 과시에 나선 것에도 영향을 받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정치 경제 상황의 변화가 자국 이익에 반할 때 그 대안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국가 지도자의 미덕과 역량은 열린 귀와 유연한 발상 여부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한 이유다.
IEA는 2050년에 온난화 가스(이산화 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하려면
2030년 시점에서 석탄은 2020년 대비 50%, 석유는 20% 줄일 필요가 있다.
현 상태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
탈원전, 원전기피 정책은 일부 국가에 전력난을 가중시킨다.
프랑스는 원전 수용 정챡으로 돌아섰다.
유럽 10개국 에너지 장관들은 공동기고문을 통해 원전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만 탈원전 정책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에너지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안과 의구심은 언제 해소 될 것인지 물어야 할 시점이다.
그 답변은 다음 정권의 몫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문제의 후쿠시마 원전 보유국인 일본까지 원전 회귀를 하는 가운데 한때 원전 수출국 반열에 올랐던 한국만은 탈원전 정책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탈원전은 그동안 갖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일화를 남기면서도 굳건하게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탈 탄소 목표는 유럽의 두 배로 높이면서도 달성 방법론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와 일본이 원전 회귀 모색으로 탈 탄소 실천 방향을 바꾸는데도 한국만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는 지금까지 원전 기피나 탈원전을 부르짖던 여러 나라가 태도를 바꾼 까닭은 무엇인지, 또 한국만이 굳세게 탈원전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국제에너지 기구(IEA)는 2050년에 온난화 가스(이산화 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하려면 2030년 시점에서 석탄은 2020년 대비 50%, 석유는 20% 줄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 상태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면서 선진국의 새로운 각오를 촉구했다. 최대 에너지 공급원으로 평가하고 있는 재생 에너지 비중이 2050년엔 67%로 잡고 있다.
태양광은 지금보다 20배, 풍력은 5배가 늘어난 수치다. 현재 운전 중인 원자력 역시 두 배로 늘어나 전체 비중이 11%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파리협정’이 요구하고 있는 지구온난화 상한 기준(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 상승 이내로 억제) 역시 달성 불가능한 것으로 IEA는 보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2100년엔 오히려이 지금보다 2.6도 상승할 것이라고 단정했다.
IEA가 달성 불가능한 목표로 평가한 2050년 배출제로 계획에서도 원전 비중은 11%나 된다. 그러나 유럽보다 두 배나 목표를 높여 잡은 문재인 정부의 2050년 원전 비중은 6~7%다. 그 대신에 재생 에너지 가운데 태양광 발전을 위해 서울의 1.1배나 되는 면적에 패널을 깔겠다는 것이다.
풍력에 의존하면서도 유럽의 재생 에너지 선진국으로 불리던 스페인이 대서양 쪽에서 부는 바람의 힘이 약해지면서 발전 능력이 전년 대비 20%나 줄어 에너지난을 겪을 정도로 재생 에너지는 안정성이 떨어진다. 또 태양광의 경우 발전 패널 시장의 70%는 중국이 지배한다. 위구르 지역의 강제노역으로 생산된다는 패널은 자칫 인권문제에 휘말려 안정적인 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세계적인 흐름과는 다른, 여전히 탈원전에 매달려 있는 탄소 중립(이산화탄소 배출제로)과 에너지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안과 의구심은 언제 해소 될 것인지 물어야 할 시점이다. 그 답변은 다음 정권의 몫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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