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계부채가 국민총생산(GDP)대비 처음으로 1백%를 돌파,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밝혀졌다. 국민총생산으로는 빚을 다 갚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글로벌 금융회사 연합체인 국제금융협회(IIF)가 세계 34개국을 분석, 발표한 ‘글로벌 부채 모니터 보고서(부제-쓰나미이 공격)’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는 지난 3분기 말 기준으로 100.6%다. 가계부채가 이처럼 급증한 것은 2030 세대를 중심으로 한 주택구매 자금, 3040 세대 등의 전세자금 조달을 대출로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코로나 확산으로 경제활동이 침체함에 따라 올해 GDP가 작년보다 줄어든 것도 있다.

가계부채의 급증만이 아니다. 주택가격의 급등과 공시가격을 시가의 90%까지로 높이려는 정책 때문에 1가구 주택자도 종합부동산세 납세대상으로 대거 편입된 것도 문제다. 은퇴자를 중심으로 한 노년층의 압박감이 심상치 않다. 올해 종부세 납세자는 74만 명, 세액은 4조 원에 이른다. 보유세인 종부세는 비록 집값이 크게 올라 자산가 반열에 올랐다 하더라도 아직은 미실현 이익이기 때문에 납세를 뒷받침할 합리적인 수입이 아니다. 따라서 연차적으로 종부세 대상이 확대되면-5년 뒤엔 서울의 모든 아파트가 종부세 대상이라는 분석도 있다-세금을 내기 위해 살고 있는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사업 실패로 집이 넘어가는 사태는 일상적이지만 세금을 내기 위해, 그것도 소유자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집값이 올라 터지려는 ‘세금폭탄’을 막기 위해 집을 팔아야 한다면, 정책이 연출한-그러나 아무도 웃지 않는 ‘블랙 코미디’로 기록될 것이 틀림없다.

지금 집을 사기 위해, 전세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계층은 누가 뭐라 하더라도 중산층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서민이나 극빈층은 특별한 정책적 배려 없이는 금융기관으로부터 필요한 돈을 융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중산층이라고 자부심을 가지기에는 현 상황이 너무도 절박하다.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을 뛰어넘은 ‘적자 계층’으로 몰리고 있고 세라도 받아 노후자금에 충당하려고 그동안 재테크로 마련한 부동산은 다주택으로, 한 채 밖에 없는 집 역시 가격 급등으로 종합부동산세를 내야 한다면 가까스로 형성된 이 나라 ‘중산층’은 공중 분해될 운명에 놓인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중산층이 해체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트렌드이다. 대량 고용을 전제로 한 제조업 경제에서 옮겨가고 있는 디지털 경제는 거대 IT 기업을 중심으로 데이터와 아이디어가 핵심인 소수 고용이 특징이다. 말하자면 ‘고용 없는 경제 시대’가 현실로 다가선 것이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가 지난 2018년 ‘1만 년 전 농경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세계 인구의 절반이 빈곤으로부터 벗어났다’ 고 선언한 배경은 ‘자유로운 시장경제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부를 창출하고 집중시킨’ 때문이다. 그러나 브루킹스 연구소의 이 선언이 나온 시점부터 선진국에서는 중산층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의 허리가 되는 중산층은 경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다. 제조업 경제에서 상대적으로 고용이 격감한 디지털 경제에로의 이행에 따라 중산층이 무너지는 것은 곧 그 사회가 흔들린다는 뜻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지난 3분기까지 전 세계 노동소득은 전년 동기대비 10%나 준 3조 5천억 달러이다. 물론 코로나 영향이 가장 컸으나 디지털 경제로의 이행 역시 작지 않은 잠복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선진국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는 대표적 사례를 미국 젊은 세대의 경제력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17년 스탠포드대학 발표에 따르면 1940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90%가 부모세대보다 더 풍요했으나 1980년대 출생 세대는 그 비율이 50%에 머물고 있다.  

저소득층은, 특히 중산층에서 추락한 계층은 불만이 마그마처럼 누적되는 것이 특징이며 이는 정치 경제적인 계기가 있으면 폭발할 수도 있는 위험요인이다. 지금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정책당국이 말하는 것처럼 유동성(저금리) 때문이 아니며 종부세 폭탄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정책 실패에 근본적인 원인 있다. 따라서 정부 여당, 특히 경제정책 라인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직시해야 한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이 사회의 중산층이 깡그리 무너진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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