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가을 주말 억새 축제가 열리고 있는 하늘공원에 갔다. 2023년의 마지막 가을을 보내기가 아쉬워서인지 인산인해로 사람들이 모였다. 억새 숲의 ‘정원 박람회’를 흥미롭게 구경하고 첫눈이 덮인 듯 하얗게 깔린 억새 숲을 헤치고 나오자 하차하는 ‘맹꽁이 차(순회차량)’ 티켓을 파는 키오스크 앞에 사람이 1Km도 넘게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한 시간 쯤 걸려 겨우 내 차례가 왔는데 앞 사람이 기계 앞에서 영 떠나지를 않는다.
키오스크로 표를 사는 것이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았다. 답답해진 내가 다가가서 “도와 드릴까요”하고 물었다. 칠순은 훨씬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기계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1만 원 권 지폐를 넣고 2천 원짜리 차표를 사려는데 기계가 돈을 내뱉기만 하고 응하지를 않는 것이다. 어쩌다가 지폐를 삼킨 기계는 더 어려운 숙제를 토해낸다. 거스름돈 처리, 경로우대 등 복잡한 질문을 감당하지 못하자 시간초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곤 했다. 내가 표 사는 것을 도와주었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한테 미안하고 창피하기도 해요.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하고 부끄럽기도 하네요.” 할아버지는 씁쓸한 웃음과 함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급히 차를 타러갔다.
노령자의 눈에는 세상이 변했다. 생활하기 힘들게 아주 달라졌다.
‘실버 세대’들은 음식점에서 밥 한 그릇 사먹으려 해도 키오스크와 씨름을 해야 했다.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동창회 모임을 갖는 80대의 한 실버 세대는 키오스크로 식단을 주문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 혼자밖에 없어서 늘 자기 카드만 써야 하기 때문에 쓴 입맛을 다신다고한다. 은행에서 아들이 보내온 용돈을 찾으려 해도 기계와 싸워야 한다. 아예 외출을 그만두고 집에서 택배 음식이나 인터넷 쇼핑을 하려고해도 앞이 캄캄하다.
주문을 못해 밥도 마음대로 못 사 먹고, 쇼핑도 마음대로 못할 뿐 아니라 항상 쓰는 핸드폰도 피싱 당할까봐 겁나는 것이 실버세대의 고민이다.
2022년도 정부의 인터넷 사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60대의 인터넷 사용 이용률은 1년 전 17.5%에 비해 42.5%로 배 이상이 늘었다. 70세 이상은 6.3%에서 20.6%로 늘었다. 그러나 인터넷을 겁내는 노령 층은 여전히 많다.
은행에서 용돈을 찾을 경우도 손쉬운 은행 거래를 위해 멀리 떨어진 곳까지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은행까지 가더라도 통장관리, 계좌이체 등을 하려면 모두 디지털화 되어 있기 때문에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그나마 은행이 점포수를 줄이고 있기 때문에 고령 거래자는 더욱 힘들다.
은행뿐 아니라 식당, 카페, 영화표 예매도 힘든다. 더구나 ‘현금 없는 버스’가 등장하여 실버 세대를 괴롭힌다. 병원에 들어서면 ‘도착신고’부터 가져온 CD자료 입력까지 키오스크와 씨름해야 한다.
인터넷을 이용한 범죄가 늘어나자 고령자 피해도 따라서 늘어난다고 한다.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은 고령자는 한번 당하면 회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전문가들은 “사업자 정보가 평소에 익숙하지 않은 점이 있어 더욱 조심해야 한다. 신용카드를 요구할 때는 더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틀 동안 60~70대 어르신 2명의 일상을 함께 해보았다. 음식점, 카페, 종합병원, 주민 센터, 버스 터미널, 영화관 등에서 맞닥뜨린 키오스크만 7개였다. 이들은 매일 외출할 때마다 말 한마디 나눌 수 없는 기계와 씨름을 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정부는 이러한 노인층을 위해 ‘디지털 사회화’ 비용으로 수백억 원을 쓰지만 효과는 미미한 것 같다. 서울의 각 구청에서는 복지관 등을 통해 디지털 화 교육을 무상으로 시키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고 한다. 실생활에서 배운 것 과 조금만 차이가 있어도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육 방법을 바꿔 실물 키오스크를 가져다 놓고 실습을 시키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지 모른다. 복지시설의 교육보다는 자녀들에게서 실물 개인 교습을 받는 길이 훨씬 빠르다고 한다.
정부는 시니어 세대를 위해 현실적인 방법을 더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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