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1418)도 지평선 끝에 닿았다. 모두가 잠든 경복궁의 하늘에는 함박눈이 소헌 왕후의 한이라도 덮어 줄 듯 펑펑 쏟아지고 있다.
“상감마마, 듭시오.”
방바닥에 엎드려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던 중전이 황급히 일어서며 우선 눈물 자국부터 지웠다. 중전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 들킬세라 고개를 옆으로 돌려 숙였다. 세종임금은 깊은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 앉았다.
“지금 밖에는 흰 눈이 퍼붓듯이 내려 온 세상을 모두 묻어버릴 것만 같소.”
“눈이 아무리 온들 우리 친정아버님의 죄야 덮을 수 있겠습니까.”
“중전! 참으로 할 말이 없소. 내 명색이 나라의 만인지상(萬人之上) 금상이지만 속수무책이니 무슨 낯으로 내 중전을 보리오.”
임금이 다시 긴 한숨을 쉬었다. 중전의 수척하고 슬픔에 젖은 모습을 보는 눈에 한줄기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내 오늘밤 연화방 수강궁 상왕(태종) 전하 앞에서 술 마시고 춤추며 놀다가 이제야 오는 길이오. 상왕 전하는 ‘주상이 나를 위로하니 지극히 즐겁구나’라 하셨소. 중전의 친아버지요 나의 장인이 날만 새면 황천길로 가게 만들어 놓고 무엇이 즐겁습니까?”
세종이 마침내 더 참지 못해 손으로 방바닥을 치며 울음을 삼켰다. 참으려고 애쓰던 중전도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왕과 왕비가 넓디넓은 궁전 침실에서 목 놓아 통곡하는 목소리로 궁전 밖의 상궁들의 가슴도 쥐어짜는 듯이 슬펐다.’ (졸저 소설 <세종대왕 이도>에서)
세종 임금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소헌 왕후의 친정아버지요, 임금의 장인인 심온(沈溫) 영의정이 반역죄로 목숨을 버려야 했다. 장모는 어느 양반 집의 노비가 되어야 한다. 심온은 대사헌, 호조판서, 도총제를 지내고 영의정으로서 1인지하 만인지상의 막강한 권좌에 있었다. 사위인 세종 대왕이 왕위에 오른 첫해에 장인을 반역죄로 처형해야하는 비극을 맞았다. 비록 천하의 권력을 쥔 임금이지만 처가의 비극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일에 대해 세종 임금은 한마디도 밖으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가 수백억 원의 은행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혐의로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되었다. 최 씨는 형이 선고되자 “정말 억울하다. 하나님 앞에서 약을 먹고 이 자리에서 죽겠다”며 쓰러졌다고 한다.
최씨는 2013년 경기도 성남시 도촌동 땅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총 349억원에 이르는 잔고증명서 4장을 위조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형을 받았지만 구속되지는 않았다. 이날 2심 선고에서 법정 구속이 된 것이다.
‘범죄 의혹’ 끊이지 않는 대통령 처가, ‘봐주기’로 하늘 가릴 수 없다.” (한겨레TV)
대통령의 자리에 있는 윤석열 부부의 심정은 600여 년 전의 세종 임금과 소헌 왕후의 심정과 다를 수가 없을 것이다. 처가와 친정어머니의 불행을 보는 사람의 심정은 서민이나 제왕이나, 비록 대통령이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최은순 씨의 법정 구속에 대해 대통령 내외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법이 바로선 나라에서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속마음은 여느 딸이나 사위의 심정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있는 사람은 입이 없어야 한다. 앞으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남아 있고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사건도 남아 있다. 대통령은 더욱 초연한 심정으로 국민의 신뢰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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