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학생 혁명이 절정에 가까운 1960년 4월 24일 밤이었다. 그날 1면 톱기사는 데모대의 희생에 관한 내용이었다. 서울 광화문에서 경찰의 발포로 희생된 학생의 시체를 끌어안고 오열하고 있는 어머니의 사진을 곁들였다.
“죽은 자식 찾으면 머하노”
톱기사의 헤드라인이었다.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다가 데모대를 향한 총탄 세례에 쓰러진 경상도 어머니의 통곡이었다. 4․19 혁명 전야의 국내 정세는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급박한 상태였다. 3․15 부정 선거 저항으로 시작된 국민적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서울에서는 경무대(청와대)를 향한 광화문 광장 데모대에게 발포를 해서 희생자가 속출했다.
4월 24일 밤 11시 50분. 다음날 아침에 배달될 조간의 윤전기가 막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11시가 넘었는데도 윤전기가 돌지 않기에 윤전실로 내려갔다. 편집국 야간 당직자는 나 혼자뿐이었다.
윤전기가 막 돌기 시작할 때였다.
“윤전기 잠깐 세우시오!”
어느새 들어왔는지 군복 입은 사람 셋이 내 앞에 나타났다.
“누구시오?”
“우리는 계엄사령부 명을 집행하는 특무대 소속 군인입니다.”
그 중 대위 한 사람이 내 앞에 나서면서 말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오?”
“윤전기를 세우시오. 오늘 밤 신문은 못 나갑니다.”
“예? 신문을 찍지 말라고요? 무엇 때문이오?”
대위는 1면 톱기사인 ‘죽은 자식 찾으면 머하노’라는 헤드라인을 지적했다.
“이런 선동적인 기사가 실린 신문은 찍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못하겠소.”
내가 이렇게 나가자 대위도 가만있지 않았다. 권총을 빼들었다.
“내일, 계엄령이 해제되어 너희들 세상이 될지 모르지만 오늘은 계엄 하에 있으니까 우리 세상이야. 인쇄 중지!”
하는 수 없이 인쇄를 중지시켰다. 그리고 1면 톱기사를 모두 긁어낸 다음 인쇄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튿날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이 나오고 마침내 계엄령이 해제되었다. (필자의 졸저 <권력은 짧고 언론은 영원하다>에서)
“오늘 참배가 국민 모두의 ‘통합’과 ‘화해’를 도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인 92세 노령의 이인수 박사가 국립 4·19 민주묘지를 찾았다. 거동이 불편한 이 박사는 주변의 부축을 받아 헌화와 분향을 했다. 이 박사는 4·19 혁명 희생자를 향해 세 차례 깊이 절했다. 이어 사과문을 읽어 내려갔다.
“이승만 대통령의 아들로서 63년 만에 4·19 민주 영령들에게 참배하고 명복을 빌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4·19 혁명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와 함께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제 참배와 사과에 대해 항상 국민을 사랑하셨던 선친도 ‘참 잘하였노라’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 박사는 12년 전부터 4.19 영령들에게 사과를 하고 싶다고 했으나 4·19 관련 단체 3곳(민주혁명회·혁명공로자회·혁명희생자유족회)에서 진정성이 없다고 받아주지 않았다가 이번에 받아들인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는 전처소생인 아들 이봉수가 있었으나 하와이 망명지에서 10세 나이로 홍역에 걸려 사망했다. 그 뒤 부통령 이기붕씨의 아들 이강석씨를 양자로 들였으나, 이강석 씨는 4.19 후 아버지 이기붕 씨와 어머니 박마리아 씨, 동생 이강욱 씨를 권총으로 쏘고 자신도 자살했다. 이 전 대통령이 하와이 망명 중 이인수 박사(양녕대군 후손)를 종친회 주선으로 양자로 입양 시켰다.
요즘의 국민감정 한 켠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 인정하자는 분위기가 일기도 한다. 3선 개헌과 부정선거 등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과오도 크지만 건국, 6.25 전쟁에서 나라를 지킨 일, 한미방위조약으로 오늘날 나라의 안보 근간을 만든 점 등의 공로도 인정하자는 것이다. 요즘 역사적 인물의 재평가가 한창인데, 역사를 멀리 내다보며 결정을 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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