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매스미디어 역사를 더듬어보면 주간지(週刊紙)가 휩쓸던 시기가 한때 있었다. 주로 60년대와 70년대에 탄생한 주간지 중에서 <주간한국>과 <선데이서울>이 가판시장의 인기품목이었다. <주간한국>이 대중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 주었다면, <선데이서울>은 연예인의 화려한 화보와 함께 ‘대중의 흥미“를 채워 주는 매체였다.
필자가 한국일보의 주간지 <주간한국>과 <주간여성>의 편집국장으로 있던 1980년대, <주간 한국>의 인기 코너로 ‘낙서’라는 페이지가 있었다. 독자들의 투고로 이루어지던 ‘낙서’ 페이지는 독자의 기발한 풍자 투고로 유명했다. ‘낙서’페이지를 통해 등장한 문인과 만평가도 있었다.
‘우이독경’(牛耳讀經 쇠귀에 경전 읽기)이란 제목으로 주간한국 601호(1976년)에 실린 윤보현 낙서 작가의 투고 사진이다. 유원지의 바가지요금이 극성을 부릴 때 아무리 단속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풍자한 작품이다. (‘바가지 장수’ 윤보현)
낙서의 어원은 일본말 ‘라꾸가끼’(落書)에 있다고 한다. 우리말 큰 사전에서는 ‘①장난으로 아무데나 함부로 쓴 글씨나 그림 ②풍자나 조롱의 뜻으로 눈에 띄기 쉬운 곳에 시사나 인물에 대해 쓴 글이나 그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선사시대의 암각화(岩刻畵)나 동굴 벽화를 보면 낙서는 인류가 시작될 때부터 있었는지 모른다. 인류를 호모 그래피커스((Homo Graphicus)라고 하는 것을 보면 낙서는 인간 본능중의 하나인듯 하다.
<주간한국>의 낙서를 보면 웃음을 자아내는 글이나 그림도 있지만 시사를 풍자하는 글과 그림도 많았다. 요즘의 댓글이나 채팅에 해당될 것이다.
당시에 인기를 끌었던 ‘낙서’ 투서자 중에 <심난파>라는 독자가 있었다. 본명이 심민섭(沈敏燮)씨로 택시 운전을 하면서 만화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놀라운 유머와 날카로운 풍자력을 높이 사서 그를 <주간한국>의 정식 작가로 대우하고 무려 10쪽의 파격적인 지면을 할애하여 <가라사대>라는 제목을 주고 마음대로 그려보라고 했다. 그는 <심마니>로 필명을 바꾸고 첫 회 작품으로 “못생겨서 죄송 합니다”라는 이주일 인물탐구를 실었다. 그는 매호마다 걸작을 내놓았다. 특히 군사정권의 심사를 꼬집는 정치 풍자 만화를 자주 그려 당국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요즘 경복궁 담벼락의 ‘낙서’가 문제다. 그림을 그린 10대와 20대는 “돈을 준다기에” 또는 “예술행위”라고 주장했다.
20대 남성 A씨는 블로그 게시물을 통해 “미스치프가 말하는 짓궂은 장난을 치고 싶었다”며 “죄송합니다. 아니 안 죄송해요. 전 예술을 한 것 뿐이에요”라고 주장했다. ‘미스치프’는 2019년 결성된 미국 아티스트 그룹으로, 이른바 ‘성역 없는 예술’을 표방하고 있다. A씨는 “스펠링을 틀린 건 조금 창피하다. 하트를 검은색으로 했으면 더 좋았을 것. 미스치프의 이름을 적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 된다”고 했다.
돈 10만원을 준다기에 했다는 10대는 너무 철이 없어 할 말을 잃을 지경이지만, ‘예술을 했다’ 변명은 더욱 황당하다.
예술의 이름으로 문화재를 훼손한 행위는 엄중하게 다스려 엉뚱한 망상을 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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