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들을 위한 의사이자 대한민국 K의료의 상징인 장기려 박사가 런닝 셔츠만 입고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 @공정뉴스 자료사진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의사이자 대한민국 K의료의 상징인 장기려 박사가 런닝 셔츠만 입고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 @공정뉴스 자료사진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밀려드는 피난민들로 북새통이던 부산에서 한 외과의사가 교회 창고를 빌려 군용 야전천막을 치고 무료진료를 시작한다. 영양실조와 열악한 위생상태로 고통 받고 있던 피난민들을 위해 혼자서 이 일을 한 사람은 바로 외과 의사 장기려(張起呂) 박사다. 이 천막이 부산 복음병원의 시작이다.

장 박사는 평생 병원 옥탑에 기거하면서 조금이라도 환자와 가까이 있으려 노력했다. 부모와 아내를 북에 두고 피난을 왔기 때문에 평생 환자 곁에서 일생을 보냈다.

장 박사는 피난을 오기 전 평양까지 진격해온 국군 야전병원에서 부상병을 치료하다가 군대와 함께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폭격 속 수많은 피난민들 사이에서 둘째 아들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과 떨어지게 되었다. 군대를 따라 황급히 후퇴하는 차속에서 스치는 지나가는 가족의 모습을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장기려 박사는 피난지 부산에서 세운 천막 병원에서 무려 6년 동안 매일 100여 명이 넘는 환자를 치료했다. 부산시민들이 전쟁 내내 무료로 진료해준 장기려 박사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신뢰를 담아 모금을 하였고 1956년 10월 마침내 천막을 걷고 새 건물을 세워 현대식 대형병원인 지금의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을 짓게 되었다.

그는 의사가 되면서부터 "치료비가 없어 의사 얼굴 한 번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리라"고 결심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경성의학 전문대학 졸업 후 일본 나고야 제국대학을 졸업한 의료인 장기려는 한국전쟁 당시 천막병원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인술을 배푼 의사이다. @공정뉴스 자료사진 
일제 강점기 경성의학 전문대학 졸업 후 일본 나고야 제국대학을 졸업한 의료인 장기려는 한국전쟁 당시 천막병원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인술을 배푼 의사이다. @공정뉴스 자료사진 

장기려 박사는 25년간 복음병원 원장으로 일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진료에 병원에서 기거하며 일생을 보냈다. 그는 서민들을 위한 민간의료보험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인 청십자의료보험이다. 국가가 시행하는 건강보험이 등장하기 전인 1968년이었다. 담배 값보다도 적은 보험료로 치료비의 80%까지 보조받는 획기적인 제도로 20만 명이 혜택을 받았다.

치료비를 못내는 서민 환자를 위해서 월급을 털어 대납하는 일도 많았다. 월급도 모자랄 때는 수술비를 못내 퇴원하지 못하는 환자를 병원 몰래 탈출하도록 도와주기도 했다고 했다. 
 
장기려 박사를 두고 사람들은 이광수의 인기 장편소설 <사랑(1938년)>의 남자 주인공인 ‘안빈’의 모델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소설속의 ‘안빈’은 예수와 석가여래의 사상을 몸소 실천하려는 이상주의자였고, 그 아내 천옥남도 남편을 하늘같이 믿는 사람이었다.  

“나를 두고 <사랑>의 주인공 안빈의 모델이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사실과 어긋나는 이야기가 아닌가. 춘원이 입원하고 있을 때 나는 개를 대상으로 알레르기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사랑> 속에는 안빈이 개, 토끼를 대상으로 해서 공포의 감정 실험을 해서 나와 연상시키는...”(장기려 저 <그 사람>) ‘안빈’설의 근거였다.

장기려 박사를 두고 <안빈>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한국의 슈바이쳐’라는 말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장기려 박사는 뇌경색으로 쓰러져 반신이 마비되었을 때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의촌을 직접 찾아가 진료를 해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타인을 위해 봉사하였다. 장 박사는 생전 ‘한국의 슈바이처’ 외에도 ‘행려병자의 아버지’, ‘성스러운 산(聖山)’ 등으로 불리며 아시아의 노벨상 ‘막사이사이상’을 비롯해 제1회 호암상과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수상했다.

평생 자기 집 한 채 가지지 않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던 그는 1995년 12월 추운 겨울날 새벽 세상을 떠났다.

지금 대한민국은 의료 대란을 겪고 있다. 정부와 의사들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환자는 내몰라라 하는 판국이 되었다. 

의사가 생명이 꺼져가는 환자를 두고 병실을 떠났다.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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