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전쟁 이미지
초한전쟁 이미지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

王者以民人爲天, 而民人以食爲天.

역이기(酈食其,B.C. 268년~B.C.204년)

군주는 백성을 하늘로 여기고,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는 경구이다. 백성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것을 뜻한다. 

중국 한나라를 건국한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B.C.247년~B.C.195년)의 책사 역이기(酈食其,B.C. 268년~B.C.204년)가 한 말이다.

진(秦·B.C.900년경~B.C.206년) 멸망 후 한왕(漢王) 유방,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가 천하를 두고 초한전쟁(楚漢戰爭)벌인다. BC308년 위왕(威王)이 사망하면서 초회왕(楚懷王·BC?-BC296)은 로 왕위를 계승한다. 항우를 전쟁터에 내보내 죽이기 위해 진의 수도 함양을 먼저 함략시킨 자에게 왕의 자리를 하사한다는 제안을 한다. 항우와 유방은 서로 경쟁을 벌인다. 

유방은 패현(沛縣)에서 군대를 일으킨다. 진류현(陳留縣) 교외에 주둔한다. 고양(高陽)에 살던 가난한 역이기(酈食其)도  자신이 몸을 의탁(依託)할 만한 인물을 찾는다. 유방을 만난다. 그의 뜻을 확인한 뒤에 섬기게 된다.

역이기는 유방이 함양을 점령하는 데 공(功)을 세운다. 진왕에게 항복을 받는다. 유방은 포고문 약법삼장(約法三章)을 발표한다.

첫째, 살인자(殺人者)는 사형(死刑)한다. 둘째, 남을 상(傷)하거나 도둑질한 자는 벌한다. 셋째, 진의 법은 모두 폐한다.

유방은 진이 정한 모든 법률은 폐지한다.  약법삼장은 복잡하지 않고 간편한 약식 법. 이 포고문이 발표된 뒤 사람들은 유방을 찬양하고  따른다.

유방은 함양을 먼저 접령했지만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운 항우에게 비굴할 만큼 납작 업드린다.  항우가 입성한 뒤 함양의 사정은 바뀐다. 모든 궁정을 불태운다. 창고와 보물을 약탈한다. 수십만 명의 진나라 포로를 구덩이에 파묻어 죽인다. 항우는 주도권을 쥔다. 서초패왕(西楚覇王)이라 칭해진다. 진시왕·조조 처럼 천하통일에 대한 의지가 없던 항우는 지역에 18제후왕을 분봉하는 논공행상을 실시한다. 하나의 중국론을 뒤엎고 예전 봉건제로 돌아간다. 천하를 얻고도 각 나라가 별개 국가로 천하를 쪼갠 것이다.  유방을 견제하기 위해 서쪽 변방지대인 촉 땅을 주며 한왕(韓王)이라 한다. 

전영(田榮)·진여(陳余)·팽월(彭越) 등이 잇달아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에 대항한다. 유방도 삼진(三秦)을 평정한 후 서초(西楚)를 공격한다.  제(齊) 땅에 머물던 항우는 즉시 군대를 돌려 팽성을 지원하여 유방의 군대를 대파한다. 유방은 형양(滎陽)으로 퇴각한다. 이로써 4년여에 걸친 초한의 전쟁이 시작된다.

초한은 형양현과 성고현을 경계로 대치한다. 유방은 성고현 동쪽 땅을 내주고 공현과 낙양에 주둔하며 초와 대전을 계획한다. 역이기가 반대한다. 성고를 포기하지 말고 양곡(糧穀) 교역(交易) 중심지인 오창(敖倉·현 河南省 成皐縣 敖山 식량창고)을 빼앗아야 한다는 계책을 제시한다.

中國 춘추전국시대 이후 진나라 멸망 이후 천하를 두고 황우(BC232-BC202)와 유방(BC247-BC195)이 대결을 벌인다. 초한전쟁이다. 진의 멸망은 극단적 법치주의와 만리장성, 아방궁 건설 등 무리한 토목 공사 때문.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유방이 함락한다. 세력이 약한 유방은 항의에게 납작 엎드린다. 항우가 권력을 쥔다. 이후 초한전쟁에서 유방이  승리해 권력을 쥔다. 유방이 승리할 수 있던 것은 민심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약법삼장을 통해 법과 원칙을 세우고 간소화했다. 가신 역이기의 말을 듣고 백성에 식(食)을 해결했다. 사진은 초한전쟁에서 경쟁했던 항우(좌)와 유방의 모습 @자료
中國 춘추전국시대 이후 진나라 멸망 이후 천하를 두고 황우(BC232-BC202)와 유방(BC247-BC195)이 대결을 벌인다. 초한전쟁이다. 진의 멸망은 극단적 법치주의와 만리장성, 아방궁 건설 등 무리한 토목 공사 때문.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유방이 함락한다. 세력이 약한 유방은 항의에게 납작 엎드린다. 항우가 권력을 쥔다. 이후 초한전쟁에서 유방이 승리해 권력을 쥔다. 유방이 승리할 수 있던 것은 민심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약법삼장을 통해 법과 원칙을 세우고 간소화했다. 가신 역이기의 말을 듣고 백성에 식(食)을 해결했다. 사진은 초한전쟁에서 경쟁했던 항우(좌)와 유방의 모습 @자료

역이기는 민이식이천을 말한다. 역이기는 "하늘이 하늘 된 까닭을 아는 사람은 제왕의 대업을 이룰 수 있다. 하늘이 하늘 된 까닭을 모르는 사람은 제왕의 대업을 이룰 수 없다. 제왕은 백성을 하늘로 여기지만,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 "고 한다. 

역이기는 방비가 허술한 오창을 지금 접령해야만 한이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고언한다. 그의 전략을 받아들여 유방은 오창을 접령한다. 이에 민심도 안정된다. 유방은 결국 초한 전쟁에서 승리하고 천하를 통일한다. 

천하를 얻고도 천하를 쪼갠 항우와 민심을 얻고 천하를 얻은 유방의 리더십을 통해 국가지도자의 덕목임을 알 수 있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은 민생(民生)을 최우선을 두고 민심(民心)을 얻으려는 정책을 펼친다. 민생을 얼마나 잘 챙겼는가가 정권 유지에 바로미터이다.

대한민국에는 민심은 없다. 정치(政治)만 있다. 민주주의는 없다. 여야(與野)정치인의 행보는 최악이다. 범죄 집단을 닮아있다.

혼돈(混沌)사회에 민심을 바로잡고 법치를 바로 잡으라는 국민 열망은 검찰총장(檢察總長) 출신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김현아(국민의힘)·황보승희(무소속)·이재명(더불어민주당)·송영길·이상만·윤관석(무소속)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정치권의 민생은 말뿐 관심없다. 제사보다 젯밥에만 관심있다. 검찰 독재·정치 독재를 외치면서도 범죄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검은 커넥션과 이권 카르텔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 부처도 마찬가지. 고위 공직자들의 일탈 행위는 뉴스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7월 10일 KBS는 고위 공직자 등 정관계 사교모임 의혹을 보도했다. 국회의원, 정부부처 공무원 등 전·현직 공직자 61명이 한 사업가가 주선한 모임에 참석해 접대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전관예우((前官禮遇) 비리도 사회를 병들게 하는 요인. 고위 공직에 있었던 인물이 퇴임 후 기존 업무와 연관된 기업 등에 들어간 뒤 전관의 지위를 이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관피아, 유전무죄, 방산비리, 법조비리의 원인 중 하나라는 비판이다.  명예도 체면도 없다. 

공기업에 모럴헤저드는 심각한 수준. 기업은 적자가 나는데도 임직원들은 고임금을 받고,  상여금까지 받아 챙기고 있다. LH 등 직원들은 자신의 직위에서 얻은 정보를 이용해 투자하는 등 잇속을 챙기는 비리를 저질렀다. 재판을 받았지만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이는 전관예우의 궤를 갇이한 범죄에서 비롯된 판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순자(荀子·BC298~BC238) 군도편(君道篇)에 '유치인 무치법(有治人 無治法·다스리는 사람이 있을 뿐, 다스리는 법은 없다)'을 연상케 한다.  세상을 잘 다스리는 것은 리더의 공정·정의·지혜·노력에 의한 것이다. 법에 의해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법을 밥 먹듯 말하는 사회 리더·사회지도층이 법을 더 안지킨다. 감옥에 갇은 죄수 대부분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자신은 운이 없었다고 말한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더 죄가 많다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를 주장한다.  

윤석열 정부가 2022년 5월 출범해 1년이 지났다. 한미동맹강화, 한일관계 개선 등을 외교적 행보를 성과로 내세웠다. 정권교체로 여당이 된 국민의힘도 한심한 상황. 내부 갈등으로 1년을 허송세월했다. 국민의 생활은 별로 나아진 건 없다.  금리인상·인플레이션에 몸살을 앓고 있을 뿐이다. 

초한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경국 패왕별희의 한장면 @자료사진
초한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경국 패왕별희의 한장면 @자료사진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윤석열 정부가 성공한 정부가 되기 위해선 변해야 한다. 정치는 간단하다. 약법삼장과 민이식이천으로 하면 된다. 법을 만드는 사람은 국민을 근본으로 삼고 귀하여 여기는 귀민정치(貴民政治)를 하고, 법과 원칙이 공평하게 통하는 사회를 만들면 된다. 또 국민의 의식주를 해결하면 된다.  국민이 나라를 국정하지 않고, 배부르고 등 따시면 그게 바른 정치인 것이다. 

초한전쟁에서 항우가 승리했던 것처럼 목표 달성에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진나라 수도 함양을 접령하는 과정에서 항우는 전투 만을 고집하면서 성 하나나 하나를 접령하면서 진격했다. 반면 유방은 가급적 전투를 벌이지 않고 항복을 받는 방식을 선호했다. 민심을 자기 편으로 돌리는 능력도 한수 위였다. 유방은 진나라의 가록한 법령을 폐지해 백성의 숨통을 트여줬다. 항우는 황궁을 불태우고 황제를 처형해 백성을 압박했다. 두 사람의 차이가 유방을 역사적 승자로 만들었다. 

중국 고대사의 분기점이었던 초한전쟁은 후세에 <초한지><패왕별희>등의 작품으로 재탄생됐다. 오늘날의 장기판 위에서 초한전의 승부가 펼쳐지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공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