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어려움이 우리 어려움’이라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여당은 ‘어려울 때 도우는 것이 진정한 친구’라고 화답했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거의 때를 같이 하여 코로나 바이러스19에 승기를 잡았다는 자찬까지 겻 들였다. 그러나 3월 1일 오후 현재 확진환자 3천 7백 38명, 사망자 20명. 중간 성적표치고는 참으로 참담하다. 그 뿐이 아니다.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 또는 제한하고 있는 나라(지역포함)가 89개국에 이른다.

감염 속도가 가장 높은 대구 경북에서는 의료진의 방호복과 환자를 수용할 병상이 부족, 입원대기자가 확진환자의 절반에 이른다. ‘방역과 경제를 동시에 잡겠다’는 정부의 당찬 포부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고 말았다. 한국인의 입국제한 국이 89개국이나 된다는 것은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의 두 손이 꽁꽁 묶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 지금 방역강화도 별 의미가 없어졌다. 남은 길은 오직 국민 개개인의 각자 도생이지만 이 역시 간단치가 않다. 기본 장비인 마스크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물량을 대폭 푼다고 발표는 했으나 우체국 농협 약국 어디서도 구할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마침내 대통령이 ‘마스크 문제 해결에 모든 대책을 최우선적으로 강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순간 코로나19방역 대책이 마스크 수급대책으로 격하 변질되었다.

코로나19를 둘러싸고 최근에 일어난 몇 가지 사안은 방역뿐만 아니라 국정 전반에 걸쳐 정부 여당이 얼마나 한가하고 얼마나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지를 알려준다. 이해찬 대표가 대통령 긴급명령권 발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로 그 더불어 민주당 대변인은 ‘대구 봉쇄’발언으로 민심에 불을 질렀다. 대구를 찾은 대통령이 ‘봉쇄’에 반발한 민심을 직접 수습하는 곤욕을 치렀다.

그에 앞서 방역의 수장인 보건복지부 장관은 코로나19의 감염원은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이라는 기상천외의 발상을 과시했다. 또 장비가 부족하다는 현장의 호소에 ‘방호복 대신 가운’을 대안으로 제시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이번 사태로 장관을 비롯하여 국정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 자리를 맡기에는 아무래도 1%가 부족한 감을 준다.

신천지를 압수수색하라고 검찰에 지시를 내린 법무부 장관 역시 1%부족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수사기밀을 사전에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면 정치인으로서 자기 이미지 강화를 노린 것이겠으나  법무장관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기 때문이다. ’중국 힘내라, 우한 힘내라‘는 생뚱맞은 영상을 공개한 서울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상황에서 경제 성장률이 얼마나 될까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1월 소비가 8년 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하고 투자 역시 감소추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2월 수출이 하루에 평균 11.7%씩 줄고 있다고 수자를 나열해 봤자 역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스크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는 현장 사정에 너무도 어둡다. 강력한 지시 한마디면 없던 마스크가 밤 새 넘쳐날 것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면 물량확보 상황도 모른 채 큰소리를 쳐 결과적으로 국민을 ‘희망 고문’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태로 분명해 진 것은 이 정부가 우리 재정과 경제 실력을 화수분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에 5백만 달러 치 의료장비를 지원하더라고 국내 품귀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급하면 추경 등을 총해 재정을 퍼부으면 해결된다는 안일한 발상이 ‘화수분 사고’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우리 경제나 재정은 결코 화수분이 아니다. ‘정상적 상황’에서는 별문제가 들어나지 않더라도 상황이 조금만 삐끗 해도 바닥을 들어내는 냄비 체질이다. 이번 정부는 이 냄비 체질에 과부하를 걺으로서 여러 가지 후유증을 자초한 감이 없지 않다.

아무튼 방역은 일단 실패했다는 점에 대해 정부여당 인사는 어떨지 몰라도 대부분 국민은 수긍을 할 것이다. 이 실패의 내상이 국내에서만 작용한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호도(糊塗)할 수 있을지 몰라도 89개국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인 따돌림은 바로 한국 기업 따돌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경제 활성화는 사람과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방역 실패로 전 국민이 집안에 갇힌 상황, 다시 말하면 일상을 빼앗긴 상황에서는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그래서 경제는 지금 울고 있다. 누가 이울음을 달래 줄 것인가? 명분과 실리가 대립한다면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국정의 기본이다. 지금 우리는 이 기본에 충실한가? ‘(한국인 차단은)외교가 아니라 방역’이라는 ‘이웃 친구’의 냉엄한 한마디에서 울고 있는 경제를 달랠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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