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유착 통해 성장한 자본권력이 정치-법조 장악 경제민주화 훼손
벤처기업인 조성구, 우리은행 전산 삼성SDS 공동수주가 파멸의 시작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 ·전속거래 등 하청업체 노예만들기 심각
성 상납, 로비, 접대 등 거부하면 하루 아침에 물량 배제로 경영위기

기업의 위기는 노동의 위기다. 국내 중소기업은 위기다. 고사상태이다. 대기업 중심의 편향된 시장이 원인. 공정이나 상생은 애초부터 없다. 대기업에 유리하게 조성된 기울어진 운동장이 문제다. 계약서의 '갑을(甲乙)'관계부터 문제다.  선진국에서는 '갑을'대신 'Company(회사)누구와 'Indivdual(개인)'누구, 또는 Company와 Company누구라고 기입한다. 이는 고용계약서도 마찬가지. 갑질의 대명사가 된 갑(甲)이 없다. 대기업들은 계약서에 명시된  '갑'답게 불공정한 갑질을 보여준다. 상생은 뒷전이다.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쥐고 단가 후려치기, 전속거래, 특허침해 등 악질적 갑질을 벌이고 있다. 하청업체를 생존 위기로 내몰아가는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알아본다.

 

세계적인 벤처기업 '얼라이언스시스템'은 대기업과 10년 전쟁을 펼쳤다. 패소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이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검찰은 대기업에 대해 충분한 수사없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얼라이언스시스의 위기는 국내 재계 1위 삼성과 잘못된 만남에서 비롯됐다. 

2014년 우리은행(당시 한빛은행)은 국내 최초로 진행되는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관련 전산 프로젝트를 발주한다.

조성구 전 얼라이언스시스템 대표는 삼성과의 10년 소송을 다룬 자서전을 썼다. 영화로 제작됐으나, 제작사의 사정으로 제작이 중단됐다.
조성구 전 얼라이언스시스템 대표는 삼성과의 10년 소송을 다룬 자서전을 썼다. 영화로 제작됐으나, 제작사의 사정으로 제작이 중단됐다.

삼성SDS, 현대정보기술 등 대형 SI(System Integration)업체들이 입찰에 참가했다. 얼라이언스시스템은 삼성SDS와 제휴한다. 은행 측은 입찰 공고에서 동시 사용자 수를 제한하지 않고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핵심 소프트웨어의 공급을 요건으로 제시했다.

당시 삼성SDS 측이 제휴업체인 얼라이언스시스템 측에 입찰조건을 속였다는 것. 동시 사용자 수가 300명으로 제한돼 있다고 속인 뒤,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구매한다. 은행 측에는 무제한 사용 조건으로 판다. 동시 접속자를 속여  50~100억 원 가량 싼 값으로 입찰에 참여한다.  입찰 가격은 72억원. 이는 경쟁사보다 50억원 가량 싼 가격이다. 삼성SDS은 입찰에 성공한 뒤 얼라이언스시스템에 압력을 넣어 '동시 사용자 수 300' 조건을 '무제한 동시 사용'으로 바꾸도록 요구한다.

얼라이언스는 당초 은행이 내건 입찰 조건이 동시 사용자수 300명이 아닌 무제한 동시 사용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삼성SDS가 계획적으로 입찰조건을 속였다고 판단해 소송을 건다. 하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다. 얼라이언스가 진행하던 모든 프로젝트는 배제된다. 순식간에 회사는 공중분해된다. 이 회사의 조성구 대표는 길거리에 나앉는다.

2010년 9월 <추적60>에서 조성구 대표와 삼성SDS간에 소송이 방송됐다. 청와대를 비롯해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졌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통령 후보시절 얼라이언스시스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았다. 자본 권력의 힘은  정치 권력보다 힘이 세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얼라이언스 조성구 대표의 이야기는 비단 조 대표 뿐만 아니다. 매 정부마다 경제민주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경제민주화는 요원하다. 

<공정뉴스>는 대ㆍ중소기업간에 공정한 룰 속에서 경쟁하는 기업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재벌기업의 갑질 관행을 분석한다. 
 

대기업 갑질의 민낯

산업용 보일러 제조업체인 한일중공업은 하청업체에 줘야 할 대금 42천여만 원을 제때 주지 않는다. 이자도 제대로 주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3월 하도급법 위반으로 이 업체에 대해 영업정지를 요청했다. 부산에 있던 한일중공업은 공정위가 영업정지 절차를 밟자 지난해 슬그머니 폐업해버렸지만, 공정위는 같은 대표가 운영하는 창원의 같은 이름의 법인을 찾아내 함께 입찰참가자격제한을 요청했다.

이 사례처럼 그나마 드러난 원청업체의 갑질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원청업체의 하청업체에 대한 불공정거래는 하도급업체를 숨 못 쉬게 하는 가장 큰 폐단이다.

201810월 한 유명 물걸레 청소기 업체는 청소기 핵심 부품 기술을 하청업체에서 빼돌려 경쟁업체에 건넨 뒤 제품 단가를 낮춘 혐의로 공정위에 적발됐다. 하청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부품 가격을 20%나 깎였고, 손해가 커진 업체가 결국 납품을 중단하면서 회사도 적자로 돌아섰다.

피해 하도급업체 대표는 "물건이 재고가 있는 상태에서 (납품 가격) 인하를 안 하면 부품을 안 가져간다고 하는 바람에 가격 인하를 해줄 수밖에 없었다"라며 원청업체의 요구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아픈 현실을 토로했다.

# 대기업 갑질의 민낯

갑질 한번 당해보면 어른들이 왜 대기업 가라고 하는지 알 수 있다.”

-엘지 하청업체 직원이 잡플래닛에 쓴 리뷰 내용

직장정보 사이트 잡플래닛20177월부터 11월까지 다섯 달 동안 직장인들이 사이트에 남긴 글 304888건을 갑질이란 키워드로 분석한 결과, 10대 그룹(공정위 자산기준)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된 곳은 엘지그룹(44·계열사 포함)인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삼성그룹(41), 3위는 롯데그룹(39), 4위는 현대차그룹(35)이었다. 삼성과 현대차 쪽에 견줘 직원 수가 많지 않은 엘지 쪽 갑질 고발이 가장 많다는 것은 일상적인 기업 문화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잡플래닛 기업 리뷰는 그 기업의 전·현직 임직원이 직접 사이트에 들어와 남긴 평가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기 보다는 자발적으로 남긴 리뷰라는 점에서 해당 기업의 전반적인 문화를 살펴보는 데 유용하다.

각 기업 내부에서 벌어지는 갑질은 리뷰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엘지에서 나온다고 하면 거의 전직원이 퇴근 없는 근무 모드, 엘지 직원이 까라면 까야 한다.” “삼성의 갑질 에스원의 을질. 시설 유니폼 입고 직원 식당에서 밥도 못 먹게 하고, 담배도 못 피게 한다. 2차 하청 나부랭이는 다 이해합니다.” “(현대차는) 협력업체가 불쌍할 정도로 갑질을 하는 편. 자기 부모 농약 치는 데 협력업체 직원이 농약 사들고 가는 것도 봤다.”

롯데에 다니다 갑질을 반성하며 퇴사한 직원의 글도 보인다. “신입사원 들어오면 하청업체 데리고 가서 갑질 솔선수범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사원급 직원들이 그런 모습 보면 대기업 왔다고 좋아할 것 같습니까? 부끄럽고 창피해서 퇴사합니다.”

추출된 갑질 리뷰는 사내 상하관계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계열사 간에 또는 원·하청 기업 관계 속에서 나오는 갑질이 모두 포함됐다. 한국 기업 전반에 걸쳐 갑질 문화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잡플래닛 분석 결과, 10대 그룹을 포함해 2017년 하반기 갑질이 언급된 리뷰는 모두 2164건이었다. ‘심부름이나 까라면 까등 다른 키워드로도 갑질을 유추할 수 있었지만, 명확한 분석을 위해 갑질이란 단어가 언급된 리뷰만 찾았다. 갑질 문화를 가진 대기업이 사회공헌 사업을 벌일 때도 원가 관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위탁업체를 관리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회공헌 비용은 그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고, 사회공헌 사업장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비용 감축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 대기업 갑질의 민낯

대기업들의 갑질은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하청회사 노예만들기이다. TV드라마<청일전자 미쓰리>처럼 대기업 직원의 요구를 거부했다간 하루 아침에 부도가 나기 예사다. 대기업들은 발주물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하청회사에 각종 상납 요구를 하거나 퇴직 간부에 취업을 강요한다. 또 협력회사 지원팀을 통해 리스크 관리 차원이라면서 주도면밀하게 경영 감시를 하고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엔 협력회사 지원팀이 있다. 하청업체가 딴 짓 못하게 감시한다. 하청업체가 자기네 1차 벤더 역할 외에 다른 원청업체의 물량을 받아서 작업을 하려고 하면 발주물량을 확 줄여버린다. 그냥 오로지 자기네 부품만 생산하라는 것. 하청회사가 R&D개발을 통해 성장하는 것보다 하청물량만 받아 제작하는 노예처럼 일하라는 것이다  

김선제 한국증권경제연구소 소장(성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대ㆍ중소기업 거래 관행에서 중소기업의 입장은 '을'이다. 대기업의 발주없이 먹고살 수 없다. 대기업으로 편향된 구조에서 중소기업이 살아남긴 힘들다. 일본처럼 1년 단위로 발주를 제공하는 계약을 맺어야 한다. 그래야만 하청업체들이 계획을 세울 수 있고, 상호협력이 가능하다. 현재 대기업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발주를 하다 보니 발주량의 편차가 너무 클 뿐 아니라 대기업의 갑질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의 99.9%를 차지한다. 여기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전체 기업 종사자의 88% 안팎(2017년 기준 82%)에 달한다. 그런데 이 99.9%가 벌어들이는 매출액은 전체 기업 매출액의 42.8%에 불과하다. 0.1%의 대기업이 전체 매출액의 57.2%를 벌어들이는 셈이다.

중소기업이 내는 매출액의 상당수 역시 대기업에서 만들어준 것. 때문에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하청을 자청하고 들어가야 한다.

# 대기업 갑질의 민낯

대기업들은 최저가 낙찰제를 통해 하청업체 간 출혈경쟁이 심각하다. 이는 하위 하도급업체, 자재납품업체, 일용노동자 사이의 연쇄적인 출혈경쟁을 야기하게 된다. 거시적으로는 대기업의 제품구매력 저하로 이어져 경제의 저성장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기업들은 하청업체들이 2회 이상 반복해 경쟁 입찰에 참여하는 프레임을 구축한다.  곧 과당(過當) 저가경쟁 유도를 의미한다. 사실상 입찰의 의미를 상실한 셈이다. 대기업의 전자입찰제도는 최저가이면서 예정 가격(Predetermined Amount)이 이익을 볼 수 없는 형태로 진행된다. 결과적으로 실질적 공정거래는 찾아볼 수 없다. '상생의 정신'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20대 그룹의 하도급업체 단가인하 문제는 다른 어느 곳보다 절실하게 개선돼야 한다. 정부에서 아무리 상생협력을 강조한다 해도 대기업은 난공불락이다. 단가인하는 여러 가지 무형의 형태로 나타난다.

제조업계는 대부분 하청업체들이 원자재를 구매해 가공하고, 원청업체에 납품하는 구조를 띄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갑작스럽게 오르게 되면 하청업체들에 손실이 클 수 밖에 없다.  부가가치가 발생해야 재투자가 가능하는데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이덕로 중소기업중앙회 시설관리협동조합 이사장은 "'상생·공생' 주장은 그저 허공의 메아리일 뿐이다. 대기업 밑에서 일감을 얻어 연명하는 하도급업체들은 그날그날을 견디기도 벅찬 실정이다. ·중소기업 상생협력은 허울에 그친다. 갑과 을의 제왕적이고, 주종적인 관계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은 부당한 원가절감이 이뤄지더라도 대기업 노조의 권위에 위축돼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협력사에게만 인원감축·내부자료 요구를 하며 상생(相生)이 아닌 상사(相死)의 길을 걷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뜯어고쳐야 할 나쁜 관행이 넘쳐난다.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이를 문제 삼았을 때 피해를 받을까 두려워 속앓이를 하는 하청업체들이 많다. 굳은 결심을 하고 공정위에 사실을 알려도 시정이 되지 않는다. 대기업과 공정위가 커튼 뒤에서 은밀한 거래를 하는 것은 이제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청업체들은 불공정거래를 당해도 고발을 포기하고 팍팍하게 지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 대기업들은 하청회사에 사전 통보 없이 거래를 중단하거나, 거래선을 변경하는 경우가 많다. 부당한 처우에 견디다 못한 하청업체가 단가인상을 요청하면 거래선을 중국이나 동남아로 돌려버린다. 이 때문에 품질개선은 커녕 폐업을 생각하는 하청업체가 많다는 것. 아니면 울며 겨자먹기로 대기업의 갑질을 견딜 수 밖에 없다

IT·전자 업종의 경우 대기업은 분기별 혹은 월별로 하청업체에 단가인하 압박을 하니 2~3차 벤더들의 고통이 심화된다. 반도체를 다루는 모 대기업의 직원들은 연례행사처럼 하청업체를 닦달한다. 작년 대비 많이 깎으면 깎을수록 자신의 인센티브와 연봉이 오르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1차 벤더를 상대로 설비가격을 10~30% 인하하면 2차 벤더는 상대적으로 그 이상 인하를 당하는 수직적 구조다. 영세업체는 남는 게 없고, 재투자는 꿈도 꿀 수 없다. 대형통신사와 1차 하청을 받는 시스템 통합(SI) 업체의 상당수는 클레임이 발생할 경우 책임을 2차 협력업체에 떠넘기고 있다. 선금·중도금·잔금 지급 시 원청에서 수령을 했음에도 내부결제 문제를 이유로 최대한 지연시킨다.

정부가 산정한 용역 단가는 무용지물이다. 하청업체들은 법정단가의 50%에 일을 하기도 한다. 개발비를 추가해 주지 않고, 기간을 연장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대기업 건설사는 한술 더 뜬다. 이들은 하청업체에 대한 잔금 지급 조건을 '납품 후 시운전 완료 시'로 규정해 세금계산서도 발행하지 못하게 묶는다.

세금계산서 발행 자체를 하청업체가 아닌 원사업자로 돌리는 역발행 수법을 일삼는다. 하도급대금을 늦게 지급하기 위해 세금계산서 수령을 늦추거나, 발행일자를 기록하지 않은 세금계산서를 요구하기도 한다. 1년이 넘도록 잔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특히 대기업의 무한 최저가 입찰로 인해 전문건설업체는 줄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 대기업이 최저가에서 다시 추가로 인하하는 경우가 많아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공사를 하는 하청업체가 많다.

# 대기업 갑질의 대명사, ‘납품 단가 후려치기

 

 

대기업의 대표적 갑질은 납품 단가 인하 압박이다. 하청업체의 단가 인하는 이윤 하락으로 이어지고 저임금으로 이를 벌충하는 구조다. 경남의 중소 제조업체 A사는 2015년 원청인 대기업으로부터 납품 단가를 중국이나 베트남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A사는 적정 이윤을 생각하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아예 거래가 끊기는 등 더 큰 불이익을 우려해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한다. A사는 이미 생산하던 제품을 도중에 멈추고 공장을 놀릴 수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A사는 외형은 커졌다. 하지만 이윤은 제자리이다.

2015년 연 매출이 전년 대비 40%나 성장했다.  이익은 전년과 같은 수준이었다. 원청은 가격을 깎는 대신 물량을 더 주는 방식을 썼다. 결국 이익을 더 내려면 1인당 생산성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를 줄이거나 직원을 더 고용하지 않게 된다. 대기업1차 수탁업체(중견기업)2차 수탁업체(중기업)3차 수탁업체(소기업)로 하도급 단계가 내려갈수록 이윤은 더 박해지고, 임금수준도 더 낮아진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중소제조업체의 하도급거래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 조사대상 507개 업체 가운데 36개 불공정 피해사례를 접수했다. 물론 여기엔 보복이 두려워 피해 상황을 접수하지 않은 중소기업이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불공정거래 유형을 물었더니(복수응답) 원청업체의 부당감액 요구가 66.7%로 가장 많았고, 부당한 대금 결정도 47.2%를 차지했다. 이른바 단가 후려치기로 인한 피해가 가장 많다는 얘기다.

대기업이 내리는 단가대로 납품해야 한다. 그런데 하청도 살아야 하니, 거기에 재하청을 내려버린다. 더 저렴하게 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청이 재하청에 또다시 갑질을 한다. 자기네들이 깎인 만큼 일방적으로 단가를 10% 깎아버린다. 연쇄적으로 단가 후려치기가 이뤄진다. 하청은 1·2·3차까지도 내려간다. 그러다 상황이 최악까지 가면 2·3차 하청업체가 손 털고 뻗어버리는 게 일상이다.

원사업자부터 3차 수탁업체까지 납품 단가 등 정보를 모두 공유해야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하청업체 저임금 등 구조적인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

# 대기업 갑질의 대명사, ‘전속거래

 

 

대기업의 시술 탈취는 심각한 상황. 하청업체의 기술을 탈취하거나 납품단가를 깎는데 악용되면서 법으로 전속거래 강요를 금지하고 있지만 여전하다.

공정위가 2018년에 처음으로 전속거래 실태 조사를 실시했는데, 하청업체를 둔 60개 그룹 계열사 636곳 가운데 42개 그룹 백42곳이 하청업체와 전속거래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하청업체 95천 곳과 원청업체 5천 곳을 상대로 설문 조사해 발표한 결과, 전속거래를 할 경우 원사업자가 하청업체의 기술을 유용하는 비율이 6.3%, 전속거래를 하지 않는 경우보다 9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부당 경영간섭은 3.5배 높아져 전체 전속거래 하청업체의 39%가 불법 경영간섭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도급대금 부당 결정과 감액 비율도 3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속거래를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하도급업체는 60%'원사업자가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답했고, 원사업자는 70%'품질유지를 위해'라고 답해 시각차를 드러냈다. 공정위는 전속거래를 강요할 경우 개정 하도급법에 따라 벌금형에 처해진다면서 부당행위에 대해서는 계속 단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같은 조사에서 자체 브랜드 상품, PB 제품에 대해 하도급 거래를 하는 유통업체 가운데 25%가 부당 반품 혐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 원청회사 ‘왕’, 하청업체 ‘노예

제조업 분야 대기업들은 대부분 협력업체 혹은 하청업체에게 일을 나눠 맡긴다. 제품 생산은 원청회사 생산 노동자 몫이고, 포장 등은 협력업체가 담당하는 구조이다. 원청회사와 협력업체 사이엔 차별이 엄연히 존재한다. 임금에서부터 작업환경, 편의시설 등 차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대기업과 대기업 노동조합이 외면하는 사이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나락으로 내동댕이쳐지고 있다.

대기업 원청 소속 생산직 노동자의 샤워실 바닥과 벽은 미끈한 타일로 깔끔하게 마감돼 있다. 1인용 샤워부스에는 유리 칸막이와 거울, 샤워기가 설치됐다. 정갈하게 나열된 탈의실 개인 옷장은 유명 가구업체 제품이다. 정수기, 헤어드라이어, 화장품, , 휴지통, 세탁기 등 기본 용품이 비치돼 있다.

반면, 협력업체 노동자의 샤워장 바닥 타일은 깨져 있다. 샤워기는 달랑 세 개에 멀쩡한 걸이가 거의 없다. 배관도 노출돼 썰렁하고, 지저분하다. 탈의실 가구는 공동 옷장으로, 오래된 철제 제품이다. 책상 위에는 헤어드라이어 하나가 달랑 놓여 있다.

샤워실과 탈의실 외에도 화장실, 사무실 등 '갑과 을'의 현실 차이는 현저하다. 원청 노동자와 하청업체 노동자의 편의시설을 비교하면 호텔과 여인숙쯤 된다고 할 수 있다.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의 총알받이가 아니다. 언제나 필요하면 쓸 수 있는 '하인'이 아니다. 협력업체 ''은 원청회사 ''을 지탱해 주는 근간이다. 즉 을은 갑의 이익을 보존해주는 최후의 버팀목이다.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원청회사와 협력업체 소속 여부를 떠나 공동 운명체다. 타인을 위하는 게 곧 자신을 위한 길임을 명심하자.

# ·중소기업 근본과제, ‘공정한 시장거래구축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펼친다. 공정위는 2018년 4월  하도급분야 대·중소기업간 상생방안 발표회〉를 연다. 8개 주요 대기업집단(삼성, 현대자동차, SK, LG, 포스코, KT, CJ, 네이버)은 최저임금 등 비용 상승에 따른 하청업체의 부담 완화 및 경영안정을 위한 각종 상생방안을 발표한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상생방안의 이행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질의서를 지난해 7월11일 발송한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그룹(7.31), 포스코그룹(8.6)이 회신했다. 반면 삼성, SK, LG, KT, CJ, 네이버는 회신하지 않는다. 결과는 알수 없다. 

김선제 한국증권경제연구소장은 "전속적 거래구조, 기술탈취 등 불공정 거래행위는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약화시킨다. 공정한 거래를 통해 건강한 경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대중소기업의 상생 노력이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매년 보다 폭넓은 규모의 상생방안을 계획하고 실행해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원·하청업체간의 상생 노력의 효과가 하청구조의 정점에 있는 대기업 원청 기업으로부터 하청구조의 말단에 있는 최하위의 하청업체에까지 골고루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라며 "대기업집단마다 구체적인 원·하청구조의 층위나 규모가 다르겠으나, 일부 상위 하청업체들만 상생협력의 온기를 독식하는 현상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하청업체를 상대로 한 대기업의 갑질이 여전히 비일비재한 현실에서 보여주기 식 상생방안만을 제시하는 것은 장기적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청업체가 기술탈취, 단가 후려치기 등 각종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염려 없이 기술개발 등에 힘쓸 수 있도록 공정한 시장거래 질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하청기업들 간의 진정한 상생 문화가 확립될 때에만 국가 산업의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 ·중소기업 근본과제, ‘수평적 협업 네트워크구축

대기업과 협력업체간의  수평적 협업 네트워크를 구축해 상생협력과 동반성장을 지향해야 한다.

산업연구원(KIET)이 지난해 발표한 주력산업 협력업체 경쟁력 저하의 원인과 시사점(전자와 자동차산업을 중심으로)’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전속거래가 과거와 같은 상승효과를 보기 어려운 구조이다. 따라서 불공정 전속거래관계에서 벗어나 수평적 협업네트워크를 구축해 상생협력과 동반성장을 지향해야 한다"고 했다. 

국내 협력업체들은 대기업에 의존해 양적 성장을 이뤘다.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로 협력업체들은 수익성이 떨어졌다. 혁신 역량을 강화하지 못하고 있는 등 불공정 전속거래와 독과점적 산업구조는 국민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위탁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협력업체에게 원가계산서, 여타 거래처 정보 등 기업 경영정보를 직·간접적으로 요구하는 등의 경영간섭이 여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어 "협력업체의 원가 상승 요인이 발생하더라도 위탁대기업은 적기에 합리적으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 약정단가 인하와 정책단가 인하로 인한 협력업체의 수익성 저하와 상생결제시스템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중소 협력업체의 자금난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고 했다. 

# -중소기업 상생의 길, ‘인적 & 기술적 교류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가 절실하다. 

2019년 7월 한일간 무역갈등이 발생했다.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를 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장치에 사용되는 소재의 수출을 제한했다. 한국경제는 타격을 받았다. 소부장의 중요성이 인식됐다. 정부는 소부장 특별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국산화율은 요원한 상황. 당시는 소부장 산업에 투자를 해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했지만 한일 무역갈등이 해소되면서 잊혀지고 있다. 

대중소기업간 R&D개발을 위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대기업(원청)1차 협력사는 물론 하청업체에게까지 고급인력과 기술을 교류하는 '상생누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2·3차 하청업체나 미거래업체 까지 교류하는 대기업은 20%대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연구원은 지난해 '·중소기업 상생협력을 위한 대기업 내부역량 개방공유 확산방안 마련'이라는 주제의 보고서를 통해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대기업의 전문 인력·기술 교류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대중소기업종업협력재단 상생누리'의 대기업 누적 등록 건수 324개 중에서 '협력사 지원'59.1%로 가장 많았다. 기존 협력사에 계열사 협력사까지 더한 경우는 50%였다.

하지만 상생누리 등록 건수는 미거래 업체나 2·3차 협력업체로 내려갈수록 현저하게 낮아졌다. 대기업이 기존협력사에 일부 미거래 기업까지 지원하는 경우는 20%에 그쳤다. 모든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경우는 25.1%였다.

중소기업의 대기업 거래 의존율은 제조업 41.9%가 납품 관계에 있고, 매출액은 81.54%를 위탁기업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대기업과 직접적인 거래관계를 맺은 1차 협력업체는 큰 낙수효과를 보지만, 2·3차 협력업체로 갈수록 파급효과는 크게 낮아진다.

2차 및 3차 하도급 기업과 미거래 기업은 대기업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하도급 업체나 미거래 기업에 가장 필요한 것은 대기업과의 정보교류와 기술인력 교류를 통한 기술 경쟁력 확보다.

대기업과 하청업체의 교류 단절로 빚어진 대표적인 불상사는 지난해 7월 일본의 수출규제가 본격화됐을 당시 화제가 됐던 '고순도 불화수소 개발 기업의 비극'이다.

당시 일본이 반도체의 핵심물자인 '고순도 불화수소' 수출을 전면 금지하자, 그제야 국내 중소기업 'C&B산업'2011년 특허청에 99.99% 고순도 불화수소 특허를 취득하고도 상용화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반면 대기업의 적극적인 인적·기술교류로 단숨에 경쟁력을 확보한 중소기업 'SBB테크' 사례도 있었다. 정밀제어용 감속기 전문기업 SBB테크는 삼성전자의 '생생형 스마트공장 지원사업' 1호 기업으로 선정돼 로봇 핵심 부품인 '하모닉 감속기' 개발에 성공했다.

김선제 한국증권경제연구소장은 "C&B산업의 비극과 SBB테크의 성공 사례를 교훈삼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호 교류를 확대하고, 대기업 전문 인력과 기술을 하청업체까지 교류해야 한다. 대기업의 다양한 경험과 학습역량을 관계기업 및 관련 산업에 공유함으로써 개방형 혁신을 통한 윈윈(Win-Win)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호 정보공유가 가능한 정보 플랫폼 및 개방형 커뮤니티 채널 마련 미거래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융합기술개발을 위한 '구매조건부기술개발사업' 참여 확대 유도 등이 필요하다대기업이 보유한 전문 인력을 중소기업에 파견하고, 기술 개발 시 공동 참여 등의 협력적 문화 확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대기업 전문기술인력의 중소기업 파견을 통한 기술지원 문화를 확산시키고, 정부의 연구개발(R&D) 과제 참여 시 대기업 퇴직 전문기술인력이 연구자 또는 멘토 등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 -중소기업 상생의 길, ‘협력이익공유제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협력이익공유제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하도급거래 등의 협력 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을 사전에 약정한 기준에 따라 나눈다.  대기업의 수익에 대한 중소기업의 기여분을 인정하고, 합당한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성장과 혁신을 촉진하자는 취지다.

재계에서는 이미 성과이익공유제를 시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협력이익공유제 법제화까지 나서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라는 불만이 많다. 사전에 이익배분 기준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데다, 최종 수익을 중소기업에 나눠 줄 경우 주주 이익을 침해한다는 비난을 살 수 있다는 것.

지지하는 측에서는 원가절감 등 비용 최소화에 초점을 맞춰 하도급거래에만 국한됐던 기존 성과공유제와는 달리, 협력공유제의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창출한 이익을 배분한다는 점에서 유통·IT 등 다양한 업종에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가절감뿐만 아니라 마케팅이나 기술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공유 사례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비제조업분야의 대기업에게는 구미가 당길 수 있다는 것.

성과공유제는 부품구매·조립생산 등 저위험 저부가가치 협력사업 등에만 적용하지만, 협력이익공유제는 대·중소기업 거의 모든 거래에 적용할 수 있다. 그동안 거래하는 중소기업과 성과를 공유하고 있었음에도 세제 등의 혜택을 못 받았던 일부 유통·IT 기업들은 협력이익공유제 도입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익공유제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을까? 해외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반대주장과 달리 미국·일본 등 다양한 국가에서 협력이익공유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영국의 항공엔진 제조업체 롤스로이스의 위험·수익 공유 파트너십을 들 수 있다.

1970년대 약 10%의 시장점유율로 경쟁업체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던 롤스로이스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에어버스용 엔진 개발을 시도했으나 10억 달러에 달하는 소요 비용에 발목이 잡혔다. 롤스로이스는 개발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엔진부품을 생산하는 협력사들로부터 투자를 받는 대신, 투자금에 비례해 향후 30년간 판매수익을 배분하고, 납품단가를 조정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단순히 대기업의 지원으로 협력사가 원가를 절감하고, 그에 따른 수익을 나눠 갖는 성과공유제와 달리 애초부터 엔진개발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해 위험을 공유하고, 사전 계약에 따라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롤스로이스는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일본, 미국 등 6개 협력사의 투자를 통해 신형 엔진개발에 성공했고, 민간항공기 시장에서 30% 이상의 시장을 점유한 세계 2위의 엔진제조사로 발돋움했다.

이익공유제는 제조업뿐만 아니라 최근 갑질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맹사업 분야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던킨도너츠는 1970년대 중반부터 프랜차이즈 구매유통조합을 설립하고, 원재료 가격 폭등 및 공급부족에 대처하기 위한 유통실행프로그램(DCP)를 운영해왔다. DCP에 참여하는 가맹점사업자는 유통조합이 선정한 제조업체로부터 협상된 가격에 따라 매년 소요량의 70%를 구매해야 하는 대신, 급격한 가격변동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던킨도너츠의 DCP는 성공적으로 안착해 1991~1997년까지 약 3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했으며, 가맹점사업자들의 연 소득도 약 7000달러가량 증가했다. 경기불황에 대응하기 위해 가맹점을 확대하면서 가맹점사업자의 수익을 감소시키는 국내 가맹본부들의 행태와 달리, 가맹점사업자의 순수익을 보존해 위기를 헤쳐나간 던킨도너츠는 이후 본부와 가맹점 간의 탄탄한 신뢰관계를 구축하게 됐다.

하지만 이익공유제가 가진 장점이 있다 해도 정부가 법제화한 것은 기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해외의 경우에도 법에 따라 이익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자발적인 상생노력에 의해 이익공유가 실현된 사례가 대부분이기 때문. 하지만 협력이익공유제는 강제성을 띤 조치가 아니다. 이익 공유제를 도입한 기업에 세액공제와 금융지원 같은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게 핵심이지 의무적으로 도입하라는 게 결코 아니다.

# -중소기업 상생의 길, ‘동반성장 의식강화

2010년 동반성장위원회 출범 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인식과 태도가 바뀐 점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실제로 의미 있는 동반성장이 이뤄졌는지는 물음표다. 경제력의 대기업 집중은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동반성장을 주장하면서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 결국 '갑질' 문제가 터지기도 했다. 동반성장 문화가 정착하려면 우선 대기업의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 실제로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대기업이 '보여주기' 식 상생 활동에 치중하고, 동반성장에 대한 진정성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중소기업과의 상생은 대기업 스스로 일정 기간 양보하고, 비용을 감내하면서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해야 하지만, 최근에는 불황 등과 맞물려 상생경영이 제대로 이뤄지는 대기업이 많지 않다. 또한, 불황이 길어지면서 대기업이 동반성장에 임할 의지나 능력이 후퇴하고, 상생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아갈 유인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 동반성장 문화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동반성장이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함께 가치를 창출하고 공유하는 개념으로 가야 하는데, 그동안 그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중소기업 사업 영역 보호에 집중하면서 '동반'만 있고, '성장'은 미흡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어떻게 성장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논의가 있어야만 동반성장이 가능하다.

동반성장은 그동안 한국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살아온 생태계 자체를 바꾸는 것이라서, 12년 한다고 금방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올 수 없는 만큼 서두르지 말고,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벌 기업들은 왜 대ㆍ중소기업 상생모텔을 택했나?

# 선진국 대·중소기업 상생 모범사례

우리나라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과 상생이 본격 화두로 떠오른 것은 2010년 동반성장위가 출범하고 나서부터다. 하지만 많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대기업 자율적으로 중소 협력업체와 상생하는 동반성장 문화가 자리 잡았다. 모범적인 동반성장 사례로 꼽히는 외국 대기업 사례를 소개하고, 우리나라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이 나아갈 방향을 짚어본다.

· 도요타

일본 자동차 생산업체 도요타는 모기업과 협력업체가 체계적으로 분업하는 협력관계로 경쟁력을 쌓아온 대표적인 회사다. 내부 제조비율은 25%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1차 부품업체와 지역 내 소재·부품·조립 등의 기업들로 구성된 이른바 '분업 네트워크'를 통해 조달한다. 도요타는 우리나라에서도 대표적인 동반성장 모델로 꼽히는 성과공유제를 1959년 처음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성과공유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해 원가 절감, 품질 개선, 생산성 향상 등을 추진하고 성과가 나면 이를 사전에 계약한 대로 나누는 제도다. 도요타는 강력한 원가 절감을 추진하면서도 부품업체와 성과를 공유했다. 2000년대 초반 30% 원가 절감을 추진하는 'CCC 21' 운동을 펼치면서 부품업체에 원가절감으로 얻은 수익을 돌려준 사례가 대표적이다.

부품업체에 전속 거래관계를 강요하지 않고, 개방적인 거래 관계를 인정해 해당 업체의 대형화와 전문화를 이끈 점도 도요타의 특징이다. 1949년 도요타 부품사업부에서 독립한 자동차 부품업체 덴소는 창립 초기부터 도요타 이외 기업에도 활발하게 납품했다. 덴소는 이처럼 개방적인 거래관계를 넓혀가면서 도요타 이외 기업에 공급하는 비율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려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업체로 성장했다.

·인텔

세계 최대 반도체회사 인텔은 1991년 자체적인 투자 조직인 인텔캐피탈을 만들어 중소기업과 전략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중소기업 성장을 지원하면서 자사 제품 시장도 확대하려는 전략이다. 인텔캐피탈을 통해 모바일, 인터넷, 가전, 사무자동화,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의 유망 중소 기술기업에 투자한다. 지금까지 인텔이 투자한 업체는 1천개가 넘는다.

예를 들면 2011년에 휴대성을 강화한 인텔 PC '울트라북'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3억 달러 규모 '울트라북 펀드'를 인텔캐피탈을 통해 조성한 바 있다. 울트라북에 알맞은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함께 만들고, 기술 개발을 앞당기기 위해 세계 각국의 울트라북 관련 업체에 투자한 것이다.

인텔캐피탈은 유망 중소기업을 선별해 투자하는 데에서 나아가 중소기업의 동반자 역할을 지향한다. 정기적으로 업체를 방문하고, 수시로 연락해 애로사항을 듣고, 개선 방안을 함께 고민한다. 투자한 중소업체의 새로운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경영 자율성을 존중하는 점도 특징이다. 투자한 기업이 반드시 인텔과 독점적인 거래를 해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네슬레

세계 1위 식품기업 네슬레는 동반성장의 핵심 요소로 꼽히는 '공유가치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 실현에 가장 적극적인 업체 중 하나로 유명하다. 네슬레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공유가치창출은 주주들에게 장기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동시에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기업을 경영할 수 있다는 믿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단순히 기업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개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기업 경쟁력과 주변 공동체의 번영이 상호 의존적이라는 인식에 기반을 둔다. 이를테면 제품 원료를 생산하는 농촌지역의 농가를 지원해 양질의 원료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으면서 고객 기반을 강화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식이다.

네슬레는 인도 모가 지역에서 50년 넘게 원유를 공급받고 있다. 원래 관개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송아지 사망률이 60%에 달하는 등 열악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네슬레가 원유 공급지의 관개 시설과 위생 상태를 개선하고, 젖소 관리 기술을 전수하는 등 지역과의 동반 성장에 나서면서 환경이 개선됐다. 젖소의 우유 생산성이 50% 증가하고, 원유 공급 농가도 400배 이상 늘었다. 인도 현지에서 네슬레 제품 소비도 늘어 네슬레가 인도 시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됐다.

# 선진국 대·중소기업 상생 모범사례

일본의 경우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은 협상력의 열세에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상호간에 이루어진 계약은 성실히 준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수탁중소기업의 역량이나 위상으로 볼 때 협상력이 우리나라의 경우보다는 높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지만, 계약을 중시하고 상거래 관계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우리와는 다른 문화적 요인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들 모두 상호간에 동반자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경영활동을 해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상거래의 윤리적 차원에서 동반자라는 개념 없이는 상생을 위한 협력을 정착시키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거래관계에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은 계약당사자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계약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노력함으로써 신뢰를 축적해가는 모습들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은 기업은 경쟁 속에서 살아가기 어렵고, 경쟁력도 쇠퇴해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쟁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중소기업의 문제를 덜어주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정부의 정책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일본의 경우, 계열화 붕괴로 인해 개방적 거래관계가 확산되면서 영업력이 부족한 수탁중소기업의 판로가 문제가 됐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대·중소기업간 알선제도에 초점을 둔 협력촉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정보제공이나 거래 상대자를 물색할 수 있는 상담회의를 개최함으로써 대·중소기업 간에 원활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거래의 개방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의 사례는 거래와 관련된 계약자의 선택, 계약의 실행 등은 거래당사자의 몫이고, 정부의 몫은 거래질서의 공정화 및 거래촉진을 위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임을 보여준다.

일본 도쿄 외곽에 자리한 금형배관 전문 업체 나미키(NMK)는 금속 대신 플라스틱으로 배관 부품을 제조해 타이어와 플라스틱 대기업인 브리지스톤에 공급하고 있다. 제품 개발과정에서 브리지스톤의 시혜적인 지원은 일절 없다. 대신 철두철미한 계약관계에 기반을 둔 브리지스톤과 NMK의 아름다운 동행이 있다. NMK는 제품개발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때 마다 철저한 이력 관리를 실시했다. 그리고 이를 문서로 만들어 해당 정보를 브리지스톤과 공유하면서 문제점을 함께 해결했다.

이 과정에는 브리지스톤의 기술 지원이 있었고, 지원 내용은 계약에 따라 이뤄졌다. 브리지스톤은 기술 지원에 대해 기간과 비용을 세부적인 사항까지 계약하고, 이에 따라 모든 지원에 일정 형태의 반대급부를 지급했다. 이 지원을 통해 NMK는 플라스틱 소재가 빨리 굳지 않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었고, 양산에도 성공했다.

철저한 계약을 기반으로 하는 일본 대·중소기업의 협력방식은 닛산-오츠카사례에서도 드러나는데 중소기업은 대기업 지원에 대해 그만한 대가를 지급하기도 한다.

오츠카는 자동차 부품 개발을 위해 닛산에서 기술 인력을 지원받지만, 이 인력들은 한국처럼 대기업 직원 신분으로 파견되지 않는다. 대기업에서 파견된 직원들은 계약기간에는 오츠카 직원이고, 근무기간·급여 등을 세부적으로 계약해 급여의 절반을 오츠카에서 부담한다. 기술지원에 대해 급여라는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있는 것이다. 파견 직원들은 제품개발 과정에서 협의의 통로로도 활용되며, 협력을 촉진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러한 파견은 일시적이지만, 협력은 영속적으로 연결되는 사례가 많다. 계약 기간 종료 후 아예 중소기업 직원으로 전직하는 예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은 특별한 노력 없이 기술 인력을 유치하고, 대기업은 자연스러운 구조조정 효과를 얻는 win-win 효과를 내고 있다. 오츠카는 3명의 닛산 출신이 정규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 협력은 결국 제조업 공동화 속에서도 일본에 잔류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독일 중소기업들은 일찍부터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기술과 품질 경쟁력을 갖춰 대기업과 대등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다.

독일 정부는 GWB(경쟁제한 억제법)라는 중소기업들의 카르텔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조항을 마련해 필요시 중소기업들의 협업과 제휴가 촉진되도록 하고 있다. 시장 여건이 중소기업들의 경쟁력 발휘에 구조적으로 불리한 상황일 때나 중소기업들이 카르텔을 통해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을 개선할 수 있을 때를 예외적인 사항으로 두어, 중소기업들이 구조적인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조항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기업 폭스바겐의 노사와 시 당국은 98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3자 협력모델을 만들자는 데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그 합의의 산물이 아우토비전 프로젝트이다. 그 목표는 지역 실업률을 절반 수준으로 낮추고, 지역경제가 지속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활성화시키며, 폭스바겐 일변도의 지역경제를 다변화하는 것이다.

··3자는 아우토비전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99년 함께 볼프스부르크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는 대기업이 골목길 상권까지 점령하면서 서민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우리나라의 상황과 반대 양상이다. 현재 폭스바겐은 협력사의 공정혁신을 목적으로 전체 공장을 세부적으로 진단하고 개선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가인하의 목적이라기보다는 미래지향적 win-win의 관점으로 해석된다.

 

저작권자 © 공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