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대적 사내 문화, 내부고발로 온 세상 공개... 망신살 뻗쳐
-보증금, 환불 외면 · 수납 강행... 이중적 행동으로 서민과 중소기업 주머니 털기

 

최근 일어난 사회지도층 갑질 사건은 우리 사회를 더욱 병들게 하고 있다. 이런 갑질 문화를 타파하는 게 국민적 관심사가 될 정도다. 이런 사회적 흐름을 놓치지 않고 지난해 4월 한전 노사협력처에서는 갑질 근절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했다.

갑질 관련 법령과 한전의 사내규정은 엄청나게 많았다. 공공기관운영법, 근로기준법, 임직원 행동강령, 임직원행동지침, 한전인 윤리헌장, 전력서비스 헌장, 취업규칙,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까지. 이렇게나 많은 법과 규정들이 갑질과 관련돼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가이드라인 목차에서 제일 눈에 띄는 부분은 갑질의 개념과 판단 기준을 다루는 항목이다. 어떤 말과 행동이 갑질인지, 아닌지에 대한 기준을 모르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에는 그 외에도 주요 유형별 갑질 근절 가이드라인과 갑질 행위 대응 방법, 갑질 예방 대책 등이 실려 있다.

주요 갑질 유형은 아래와 같다.

법령, 규칙, 조례, 규정 등을 위반해 자기 또는 타인의 부당이익 추구하는 유형

우월적 지위로 금품, 향응, 편의 등 사적 이익을 요구수수하거나 제공받는 유형

자신 또는 특정인의 이익을 위해 채용승진평가 등 인사와 관련 부당하게 업무처리 하는 유형

발주기관이 부담해야할 비용을 시공사가 부담하게 하는 등 기관의 이익을 부당하게 추구하는 유형

정당한 사유 없이 민원접수를 거부하거나 취하를 종용하고, 고의로 지연시키는 유형

그 외 부적절한 시간대 업무지시, 모임참여 강요, 갑질 피해 신고방해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유형

그런데, 올해도 한전갑질 사건이 터졌다. 가이드라인이 무색해져 버렸다. 이에 공정뉴스는 한전 갑질의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고, 정부의 해결방안에 대해 분석해 본다.

직장 내 갑질 폭탄터지다

 

 

"결재과정에서 1시간은 기본. 지난주 목요일은 오전 8시부터 점심시간까지 3시간을 내리 깬다. 그 과정에서 X끼야, 야이 X 등 모욕적인 말을 한다. 주말에 집에 못가게 일을 강요하고 새벽까지 일을 시킨다. 하루하루 지옥이다. 우울증 약도, 정신과 처방도 무용지물이다. 가슴 떨리고, 두렵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가, 울었다 웃었다 사람이 이상하게 변해간다. 20년 근무했지만 이런 경우 처음이다. 정말 두렵다."

근로기준법을 일부 개정한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10개월가량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직장인들이 '사내 갑질' 문제로 힘들어 하고 있다. 직장 갑질 문제는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도 예외일 수 없다.

윗글은 지난달 26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게시된 글이다. 공기업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한국전력공사, 그것도 20년차 차장급이 겪은 일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한전 사내문화의 민낯'이란 제목으로 올라 온 게시글에 따르면 해당 직원은 "이런 갑질 과정에서 폭행이 3번에 걸쳐 일어났다", "처음 한두 달 전에는 폭언과 함께 등짝을 손으로 퍽 하는 소리가 나도록 세게 가격했다. 두 번째는 보고서를 말아서 제 이마를 찍고, 밀치고 나서 던졌다. 세 번째는 모두가 보고 있는 중앙 탁자에서 첫 번째 폭행과 같이 등짝을 2번 가격했다"고 폭로했다.

A씨에 따르면 B씨는 승진을 위해서는 명절 때 100, 200명에게 선물 돌리고, 주말 전 저녁 때는 1, 2, 3차 여자 끼고 술 마신 뒤 주말에도 나와서 일했다며 본인 사례를 들며 A씨를 압박했다. 이어 본인 외 부서 내 다른 차장들도 몇 달간 야근을 안 해본 날이 없고, 주말에 일하면서 52시간제에 안 걸리려고 다른 직원 아이디로 사내 컴퓨터 등에 접속해 일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내일 정식으로 신고하고 싸우려 한다", "노조 없는(직급 상 가입 못한다는 의미) 차장이 본사에서 혼자 싸울 것을 생각하니 겁이 나고, 오히려 내가 처벌받지 않을까 두렵고, 승진 하려면 참으라는 주위 만류도 있지만 더 이상 견딜 수 없기에 맞서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A씨는 현재 수사기관에도 한전 내에서 벌어지는 직장 갑질 행위를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게시 글이 올라온 후 블라인드 회원들은 "클라쓰 쩌네(갑질 수준이 어이없는 정도로 심하다는 뜻)", "깡패XX인가", "2020년도에 저런 곳이 있다니", "저걸(갑질을) 참는 것도 대단", 원래 한전 (갑질로)유명하다"라는 댓글을 달며 함께 분개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는 갑질 문제 등으로 피해를 본 노동자는 사업주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 사업주는 조사를 거쳐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만약 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회사 측에 알렸는데도, 오히려 신고자에 불이익을 준다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한전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28일 해당 갑질 문제와 관련해 "어제 감사실에 신고가 접수됐고, 절차에 따라 조사하고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사내 갑질 및 괴롭힘 관련 피해 신고가 접수됨에 따라 한전 측은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본격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높은 연봉과 워라밸(Work & Life Balance, 일과 생활의 균형)을 자랑하는 한전이 어떤 방식으로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대처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의 박점규 운영위원은 "개정법 시행 이후로 폭언 같은 건 많이 없어졌지만, 한전이나 포스코 같은 공기업들은 아직도 군대식 문화가 남아 있어 이런 잔재들이 상존하는 것 같다", "이는 공론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나 싶다"고 밝혔다.

사회적 약자에 보증금 갑질

한전이 서민들의 전기요금 보증금은 환불하지 않고,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중소기업에 과도한 보증금 수납을 강행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한전은 지난달 8일부터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타격 받은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의 전기요금 납부기한 유예신청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전기요금 납부조차 어려운 이들에게 가혹한 보증금 징수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감사원의 한전 감사 결과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보증기간이 만료된 고객에 대한 보증금 환불 내역을 확인한 결과 총 11억여 원을 환불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기요금 보증금은 임시전력을 사용하거나 요금미납으로 계약이 해지되는 등 체납 우려가 있는 고객에게 전기요금 3개월분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리 받고 전기를 공급했다가 계약 만료 시 다시 환불해 주는 제도다. 감사기간인 지난해 520~726일까지 한전 각 지사 담당자가 환불 대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도 환불조치를 하지 않은 보증금은 77,600만원, 전기사용 계약이 해지된 고객에게 환불하지 않은 보증금은 36,800만원에 달했다.

특히, 당초 감사원이 조사 발표한 금액은 환급 불가능 보증금인 15,400만원을 제외한 수치여서 시정조치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혹을 낳고 있다. 이에 대해 한전 측은 연락이 안 되거나 계좌번호가 없어 보증금 환불이 불가능한 고객을 제외하곤 모두 지급된 상태라면서도, 환불된 금액이 얼마인지에 대한 정확한 수치는 내놓지 못했다.

또한, 지난 3월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따르면 한전은 회생신청이 개시된 중소기업에게 과도한 보증금 납부를 강요하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422~515일까지 회생절차 개시 후 전기요금을 납부하지 못한 237개 기업 중 중소기업인 22개 기업에게만 회생절차 중이거나 과거 체납내역이 있다는 이유로 29,600만원의 보증금을 수납한 것으로 확인됐다.

채무자회생법 제122조 제1항에 따르면 전기·가스·수도 등 계속적 공급의무를 부담하는 채권자는 회생절차 개시 신청 후 의무 이행을 거부할 수 없도록 돼 있다. 회생절차 개시 후 전기요금 연체가 없는 경우 재정 상태가 열악한 중소기업에게 전기요금 보증금 납부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 감사원의 판단이다.

일시적 유동성 부족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게 한전이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채무자회생법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한전은 보증 설정을 면제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겠다는 의견을 감사원에 제출하기는 했다. 하지만, 재정난에도 무리하게 한전공대 설립 준비에 나선 한전이 이제는 서민과 중소기업의 속주머니까지 털고 있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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