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내 밥그릇에 탐을 내?”

재산을 둘러싼 재벌가의 법정 싸움은 재계의 단골 메뉴다. 삼성, 현대, 두산, 금호, 한진, 롯데 등 쩐의 전쟁을 거치지 않은 로열패밀리는 없을 정도. ‘형제의 난’ ‘모자의 난’ ‘숙부의 난그 종류도 다양하다. 주거니 받거니 서로 일감을 몰아주며 진한 우애(?)를 나누다가도 자신의 밥그릇에 손끝 하나 스치기라도 하면 그 순간부터 애증의 관계로 변모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경영권 세습을 위한 재벌가의 통과의례라고도 한다. 이에 [공정뉴스]는 유난히 보다 진한 재벌가의 치열했던 금호그룹 박씨 일가의 쩐의 전쟁의 내막을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사진=금호아시아나 로고]
[사진=금호아시아나 로고]

 

금호그룹(錦湖集團, KUMHO GROUP)의 설립자는 박인천이다. 1946년 광주택시로 창업하여 19489월 현재의 금호고속인 광주여객자동차의 설립으로 본격 운수업을 시작한다. 삼양타이어공업(1960), 한국합성고무(1968), 금호실업(1972)을 설립하고, 제일토건(1977, 현 금호산업)을 인수한다. 1988년 아시아나항공을 설립한다. 전기·전자·금융·섬유·건설·항공 등 분야에 연이어 진출한다. 재계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으로 성장한다. 창립 60주년이 되던 2006년 대우건설은 무리하게 인수한다. 2008년 대한통운까지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인수한다. 두 회사를 인수하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부실화된다. 무리한 M&A승자의 저주가 된 것. 세계적 금융위기가 겹치면서 유동성 위기를 맞이한다. 결국 워크아웃에 들어간다. 또 경영실패의 여파로 경영권 분쟁 등에 휘말린다. 이후 금호석유화학이 분사한다. 2018년 금호타이어를 중국에 매각한다. 2019년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한다. 금호아시아나는 금호고속과 금호산업 두 계열사만 남는다. 재계 60위권 밖의 중견기업으로 전락한다.

[사진=박삼구 회장(왼쪽),박찬구 회장(오른쪽)]
[사진=박삼구 회장(왼쪽),박찬구 회장(오른쪽)]

박성용-박정구-박삼구 형제경영 깨진 이유

금호의 창업주 박인천 회장은 1984년 타계했다. 이순정 여사 사이에는 53녀를 두고 있다. 박성용(1)-박경애(1)-박정구(2)-박강자(2)-박삼구(3)-박찬구(4)-박현주(3)-박종구(5) 자녀를 두었다. 특정 자녀를 후계자로 삼지 않았다. 2세대가 지분을 골고루 나눠 가졌다. 형제가 돌아가면서 경영권을 행사하는 후계 방식을 취했다.

2대 회장으로 박성용 회장이 취임한다. 예일대 박사 출신이다. 대통령 비서실 경제비서관, 경제기획원 장관 보좌관,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등을 거쳤다. 그룹의 토대를 닦았다는 평가다.

박 회장은 65세가 되던 1996년 그룹창사 50주년에 경영권을 둘째 동생 박정구 회장에게 넘겼다. 둘째도 IMF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며 사업 다각도에 성공한다. 박 회장은 200265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별세한다. 3남 박삼구 회장이 뒤를 잇는다. 박삼구 회장은 1991년부터 아시아나항공을 이끌었다. 장남 박성용 명예회장도 박정구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3년 후인 2005년에 사망한다.

박성용 명예회장은 3대 박정구 회장이 작고한 2002년경에 금호그룹 대주주 간 경영참여 및 재산관리 합의서를 주선하게 된다.

합의서에는 4형제가 주식을 균등하게 보유한다 임기는 10, 정년은 65세로 정한다는 등의 지침이 포함돼 있다. 모두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을 막기 위한 사전 조치들이었다.

박삼구 회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는다. 2004아시아나항공은 회사명을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변경한다.

2005년 장남인 박성용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나자 박삼구 회장은 형제공동경영합의서의 내용을 변경한다. 기존 합의서의 ‘65, 최장 10조항을 삭제한다. 대신 그룹 회장에 대한 4가계 합의해 추대하고, 의견이 엇갈릴 시 다수결 원칙과 연장자 의견에 따른다는 조항을 추가한다. 이후에도 몇 차례 합의서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수정한다. 형제들의 불만을 산다.

2006년 수정안에서는 그룹 존속 위해 그룹 분할, 해체를 금지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2008년에는 합의서 위반 시 소유 주식에 해당하는 금액 50%를 다른 가계에 보상한다는 조항을 신설한다. 4남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반기를 든다. 형제간에 균열이 발생했다. 박찬구 회장이 2008년 수정된 합의서의 서명 난에 날인을 하지 않는다.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다.

연장자인 박삼구 회장의 결정권을 강화한 점과 그룹 회장직에 대한 정년 조항을 삭제한 점 등이 박찬구 회장의 불만을 키웠다는 평가다. 당시 그룹 안팎에서는 박삼구 회장 다음은 박찬구 회장이 아니라 박삼구 회장의 아들인 박세창씨라는 관측이 돌았다. 박세창씨는 오너 형제들의 아들들이 부장급일 당시 상무로 승승장구했다.

무리한 M&A가 오너리스크 서막

금호는 200611월 대우건설을 인수한다. 시가보다 2조 얻은 64천억 원에 인수한다. 이어 20083월 대한통운까지 4조 원에 추가 인수한다. 재계 순위 7위 기업이 된다. 무리한 M&A는 결국 승자의 저주를 불러온다. 박찬구 회장은 형은 무리한 경영을 반대한다. 형제공동경영합의서 수정과정에서 갈등을 빚어온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 간에 갈등이 본격화 된다.

20096월 그룹이 대우건설 분리·매각 방침을 발표하자 박찬구 회장은 금호산업과 함께 그룹의 양대 계열사인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매집하며 화학 계열사 계열 분리에 나섰다.

대우건설, 대한통운 등 그룹의 공격적인 M&A에 우려감을 표시했던 박찬구 회장이 대우건설 매각 방침을 경영권을 확보하거나 그룹 분할을 주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은 금호에 승자의 저주만 안겨준 채 산업은행과 CJ그룹에 매각된다. 이후에도 자금난을 감당치 못한 계열사들의 구조조정이 이어진다. M&A에 반대하던 박찬구 회장이 금호산업의 지분을 팔고 석유화학의 경영권을 강화한다.

박찬구 회장이 단독행동에 나서자 박삼구 회장도 그룹이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동생이 형제간 황금지분율(10.01%)을 깼다며 이사회를 통해 박찬구 회장을 해임을 시킨다. 자신도 동반 퇴진했다. 1차 형제의 난이다.

박찬구 회장은 불명예 퇴진 8개월 만에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로 복귀한다. 박삼구 회장도 1년 만에 금호아시아나 그룹 회장으로 복귀한다.

20114월 검찰이 금호석유화학 압수수색에 나서면서 다시 2차 형제의 난이 불거졌다. 검찰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박찬구 회장에 대한 수사에 들어가자, 금호석유화학 측은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제보로 수사가 시작됐다며 반발했다. 최근엔 박찬구 회장 측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측근들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하는 등 2차 형제의 난이 본격화했다.

금호석유화학은 그룹 산하의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를 계열 분리해 줄 것을 공정위에 신청하면서 그룹 분할 작업에 나섰다. 결국 그룹은 둘로 쪼개진다. 박삼구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그룹으로 분리된다.

박삼구의 욕심이 부른 화

금호의 형제간 갈등의 단초는 박삼구 회장의 욕심이 부른 화하는 분석이다. 무리한 M&A로 부채가 증가하면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결국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금호는 아시아나 항공마저 매각한다. 박삼구 회장의 경영 리더십은 땅끝 추락한다. 형제간 경영의 아름다운 미덕은 깨지고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 게다가 그룹은 해체 수순 전 단계까지 갔다. 국내 10대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추락했다.

박삼구 회장은 그룹 재건에 미련을 못 버린 상태. 800%가 넘는 부채에도 과거 주력 계열사들을 재인수하려고 시도한다. 산업은행 등 주요 채권단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포기한다.

1·2차 형제의 난을 겪으며 2010년 금호에서 분가한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은 꾸준한 실적 성장으로 경영은 안정세이다. 독립경영 3년 만에 2012년 자율협약을 졸업했다. 2010년 말 부채비율은 311%에서 2018년 말 96%로 크게 감소했다.

[사진=아시아나IDT 박세창 대표]
[사진=아시아나IDT 박세창 대표]

3세 박세창 과제

박삼구 회장이 20193월 물러났다. 그룹의 경영에서 손을 뗐다. 장남 박세창 아시아나 IDT사장에게 경영권이 이양되고 있다. 현재 금호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회사의 주력이던 아시아나항공이 현대가로 넘어갔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25000억 원을 투자해 아시아나항공을 품고 모빌리티그룹으로 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4월이면 인수절차가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산업개발은 재계 30위권에서 10위권으로 도약한다. 반면 재계 28위인 금호는 대기업 집단에서 제외된다. 자산규모도 114000억 원 규모에서 3조 원대 회사로 쪼그라든다.

박성용·박정구 전 회장에 이어 2002년 경영 승계를 받은 박삼구 회장은 17년 만에 탄탄했던 그룹을 해체 시키고 중견기업으로 전락시켰다.

그런 박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장남이 경영을 승계한다고 해도 금호의 사정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975년생인 박세창 사장은 연세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메사추세스공과대학(MIT)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친 뒤 2002년 아시아나항공으로 입사했다. 금호타이어 경영기획부장, 전략 경영담당 이사, 전략관리부문 상무, 금호타이어 전무를 거쳤다. 이후 부사장까지 초고속 승진을 했다. 박 사장은 2018년도 기내식 대란이후 박 사장은 그룹 경영 전략실 사장에서 아시아나 IDT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 사장이 경영을 맡아왔던 아시아나IDT도 현대산업개발에 항공과 함께 패키지 매각됐기 때문에 곧 다른 계열사 자리를 옮겨야 할 상황이다.

박 사장은 위기 능력이 좋고 경영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다. 하지만 그룹 내부 매출이 높은 아시아나IDT와 아시아나세이버의 대표이사만 맡았기 때문에 확실한 경영능력을 평가받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경영실적도 마땅치 않다. 초라하다.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템에 따르면 아시아나IDT의 지난 20182454억 매출, 영업이익 158억 원, 당기순이익 156억 원을 기록했다. 경영실적이 미진한 상태에서 경영권을 이어받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주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실제 경쟁사인 한진그룹의 경우, 행동주의 펀드가 경영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대표적 예이다.

김선제 한국증권경제연구소장(성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창업자들은 기본적으로 도전과 혁신을 이끌어왔다. 2세들은 바통을 이어받아 몸집을 불리는 데는 성공했다면서 현재 국내 경영계는 3·4세로 경영이 승계되고 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하는 시대에 할아버지, 아버지가 해오던 방식만으로는 기존 그릇 지키기도 버거운 실정이다. 창업1·2세대는 도전정신에 바탕을 두고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을 펼쳐야 한다. 3·4세대 총수들이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인공지능으로 상징되는 새 시대의 변화와 혁신으로 기업을 이끌어 가야 한다고 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공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