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論語)는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인간 세상의 윤리(倫理), 그 이치(理致)를 담고 있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B.C. 8세기~B.C. 3세기) 유가 학파의 창시자 공자(孔子 B.C. 552~B.C.476)와 제자들의 어록(語錄)을 엮은 경전이다. 세상과 인간의 삶에 기본이 되는 윤리와 사회적 행위를 담고 있다. 자신의 행동과 생각이 가치를 가지도록 하고 있다. 자녀 교육은 실상 부모로부터 출발한다. 부모의 바른 가르침이 자녀를 올바르게 성장시킨다.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를 논의를 통해 깨닫게 한다.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하나인 대학에 나오는 구절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 修身齊家治國平天下·몸을 닦고 가정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를 태평하게 한다.)는 말이 있다. 자기 몸을 바르게 가다듬은 후에야 가정을 돌볼 수 있고, 그 후에야 나라를 다시리고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수신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제가는 이루어질 수 없다. 쉽게 말해 자녀를 가르치기 이전이나, 나라를 다스리기 이전에 자신부터 바로서야 한다는 것이다. 일승 양방웅 역자는 <논어>에 나오는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용과 공존의 논리인 화이부동(和而不同)을 통해 천하평(天下平)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화이부동

논어(論語)의 주인공 공자공자(孔子 B.C. 552~B.C.476)는 16개국이 난립하던 춘추시대 유가(儒家)학파의 창시자이다. 공자는 백성들이 살만한 세상을 고대사에서 찾았다.

고대 중국의 신화 속에 나오는 황제(皇帝), 그리고 요(堯)와 순(舜)이 부락연맹체의 수령으로 다스리던 시대를 대동(大同)이라 불렀다. 대동사회 때는 토담 집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위해 필요한 것은 모두 천하위공(天下爲公). 즉 공용(公用)이었다. 국가·계급의 간섭이 없었다. 윤리가 통하는 사회였다. 어린이는 건강하게 자라고 젊은이는 일하고 적시에 짝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가정이 중심이 됐다. 홀로 살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은 이웃의 보실핌을 받았다. 노인은 편히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 논어 20편 요왈

기원전 2070년 수령 우(禹)가 부락연맹을 규합하여 하(夏)왕조를 건국하고 국왕으로 등장하면서 대동시대가 마감한다. 상(商 B.C 1600~b.C1046)을 거쳐 서주(西周: B.C 1046~B.C770)시대가 열린다. 서주시대 다음 동주(東周:B.C. 770~B.C.476)시대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뉜다. 이 시기에는 철제농기구가 만들어져 농업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철제 무기도 만들어 이웃나라들과 자주 전쟁을 일으킨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 만기에는, 주 왕실의 권위가 붕괴되고 종법(宗法)질서가 무너지면서 혼란기에 접어든다. 

종법질서는  맏아들에게 권력을 넘겨 가족과 나라의 질서를 유지하는 제도이다.  주나라 시절 맏아들은 천자(天子)가 되고, 다른 아들은 먼 지역으로 내려가 제후(諸侯)가 된다. 제후국에서는 맏아들이 제후가 되고, 다른 아들은 먼 곳으로 가서 대부(大不)가 된다. 이런 질서가 무너지면서, 힘 있는 자의 침탈과 흡수합병이 시작된다.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백성은 고달퍼진다. 공자는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천하평(天下平)세상을 꿈꾼다.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덕(德)으로 다스리는 왕도정치(王道政治)에서 찾는다. 그건 지도층 인사들이 수신을 통하여 인(仁)의 품성을 함양하고, 예(禮)의 모습을 갖추어야 실현될수 있다가 보았다. 인은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애인(愛人)의 마음이다. 인은 사랑의 힘이다. 유약(柔弱)함을 귀히 여겨 어루먼져주고 포용하는 평화의 바람이다.

공자는 인을 확산하는 방법으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강조했다. 화(和)는 내적으로 해화(諧和·和諧)함이고, 동(同)은 외적으로 모습이 갈라지는 것이며, 화는 이웃과 어우러져 내는 화음이고, 동은 부회뇌동하며 내는 소리이며, 화는 이웃을 준중하고 공전하는 논리이고, 동은 이웃을 지배하려는 힘의 논리를 말한다. 다시 말해 공자의 꿈은 화이부동으로 천하평을 이루자는 것이다.

공자는 평화공전을 이념의 원리로 삼아 제자들과 함께 제후국 지도자를 만나러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의 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까닭은 힘 쎈 나라일수록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워, 약한 나라를 지배하려는 패권(覇權)주의 풍토가 만연해 있던 때였기 때문이다. 공자는 그의 꿈이 실현되기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68세가 되던 해, 1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학사(學舍)를 세우고 교육에 치중한다.

앞에서 언급한 애인의 인은 당시의 귀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귀족은 사(士)의 계급이상의 지배계층 백관(百官)들이다. 본래 백관은 모계(母系)에 따른 성(姓)이 있었다. 이들이 백성(百姓)이다. 사는 백관 중에 가장 낮은 전사(戰士)계급의 사관(士官)이다. 이어 농공상(農·工·商)애 종사하는 피지배계층 사람들을 서민(庶民)이라고 불렀다. 서민은 성이 없었다. 서(庶)는 많다는 중(衆)의 뜻이다. 서민은 곧 중민(衆民)이며 민중(民衆)이다.서민보다 낮은 층에 민(民)이라는 노예가 있다. 민은 길러지고 부려지는 가축과 같은 존재로써, 귀족의 소유물이었다. 그래서 귀족을 목민(牧民)하고 사민(伺民)한 것이다. 전국시대를 지나면서 귀족·서민·노예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이들을 모두 백성이라고 불렸다.

공자는 여성주의자인 노자(老子)와 달리 남성주의자였다. 공자는 귀족자제 중에서 남자 만을 교육대상으로 삼았다. 드물게 서민 출신도 있었지만, 여자와 노예는 없었다. 훗날 남성우월의식으로 삼강오륜(三綱五倫)이 나오고 유교문화가 발흥된다. 이점이 기독교문화와 비슷하다. 

공자는 귀신(鬼神)은 공경하되 말리하고 말한다. 귀신을 유령이 아니다는 <초간본 노자>에 나오는 천지(天地)·음양(陰陽)·기운(氣運)의 주체를 가르키고 있다. 공자는 우주의 궁국적 존재로서의 신(神:太一,GOD)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신의 섭리를 간과하였다. 신의 섭리를 강조하는 기독교와 다르다. 

공자는 고전(古典)을 열심히 공부하여 선인(仙人)들이 쌓은 지혜를 얻은 사 람이지, 초인적 선지자(先知者)가 아닙니다..옛 현인들과 자신이 겪은 경험을 강조한다. 이 점이 신의 속성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예수와 다르다. 

공자는 제자들의 학습도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학생은 항상 왜(Wsy)라는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의문이 생기면 공부하고 표현해야 한다. 이미 일어난 일은 발생 원인을 찾고, 그 일에서 얻은 교훈을 기초로 참신한 아이디어를 찾아내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옛것을 복습해 새로운 것을 안다.)을 강조했다.  현대의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금언(金言)이다.

공저는 '어떤 현상이든 관찰하여 발생한 원인을 찾아보라(溫故)'는 진취적인 학습태도를 말했다.  공맹 철학을 공부한다는 청초과 조선의 주자학 성리학자들은 이를 ' 옛것을 잘 익히라'는 되행적인 뜻으로 해석했다. 옛날 제사지내던 관습이나 예법에 속박당하여 새로운 사고의 분출 구를 막아버린 것이다.

국가의 지도층 인사들이 구태 의연한 사고 방식과 관념론에 빠지면 사물의 운동과 변화원리를 탐구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혁신을 소홀히 하게 된다.  그 결과 산업화가 늦어져 나라가 통째로 서구 열강과 일제의 과학 문명에 참패를 당한다. 중국은 문화대혁명 1966 ~ 1976 때 유교가 낡은 풍속을 부추긴다고 하여 홍위병들이 공자묘 대성문 체험 현관을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다. 지금은 다르다.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맥락이 시대흐름에 따라 변하고 있다. 생산수단 중에서도 토지를 제외한 공장 · 기업 등 많은 부 분이 사유화되고 있다. 중학교 학생들에게 < 논어 > 를 가르치고, 가정과 사회에서 유교적 윤리를 중시하며 공자를 존경한다.  중국 교육부는 전 세계에 중국문화 보급을 위해 공자학원(孔子学校)설립을 지원했다.

미국 조지아대학 박한식 교수는 '지금의 중국체제는 사실상 유교식 사회주의' 라고 한다. 북한 고위급 망명자인 황장엽과 원광대학교 이재봉 교수는 '북한도 정통 사회주의를 따르지 않고, 민족주의와 유교사상을 접 합한 민족적 유교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해왔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공자가 꿈꾼 ' 천하평' 세상의 구현을 위한 화이부동 담론이 일고 있다.

박 교수는 '남북이 서로를 악마(evil)나 적(enemy 으로 보지 않고, 이질성을 포용하고 해화(諧和·和諧)추구하는 변증법적 통일을 모색해야 한다.  정전협정을 중전선언이나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여야한다'고 역설한다.

시카고 대학 부르스 커밍스 교수도 "만일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 요구에 옹 한다면 북핵문제는 빠르게 해결될 것" 이라고 한다.

이재봉 원광대 교수는 "남북이 적대관계를 풀고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는 통일(統一)에서 점차적 으로 통일(統一) 로 나가야하며, 한반도 중립화'를 추구해야한다"고 강조한다. 남북정상이 합의한 공동선언문은 물론 교수들 주장 모두 공자의 화이부동을 이념으로 삼고 있다. 그 이념은 주권 사이에서 성립되 는 원리이다.  당당하게 화이부동 정신을 살릴 수 있는 새날이 어서 오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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