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항공사 합병후 점유율 70% 초과,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해당
공정위, 합병시 보유 슬롯 일부 반납과 운수권 재분배 조건 달아 
조건부 승인 결정에 산은의 글로벌Top10 항공사 출범 계획도 흔들
공정위 조건 수용 시 대규모 인력구조조정과 정리해고 가능성도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2월 29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조건으로 일부 슬롯을 반납하고, 국제노선 일부를 재분배한다는 '조건부 승인'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전원회의에 상정했다. ⓒ 뉴시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2월 29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조건으로 일부 슬롯을 반납하고, 국제노선 일부를 재분배한다는 '조건부 승인'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전원회의에 상정했다. ⓒ 뉴시스

합병이 오히려 독이 된다?

1년여를 끌어왔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신청이 결국 '조건부 승인'으로 결론날 예정이다. 운수권과 슬롯(비행기 이착륙 횟수)을 반납하는 조건이 붙은 것으로 전해졌다. 

31일 항공업계 등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9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조건으로 일부 슬롯을 반납하고, 국제노선 일부를 재분배한다는 '조건부 승인'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전원회의에 상정한다고 밝혔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조건부로 승인하겠다는 것이다. 

공정위의 이 같은 방침이 알려지자 합병을 주도한 한진그룹과 아시아나항공 채권단, 그리고 직원들까지 모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로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려던 한진그룹은 인수 시너지가 사라질 상황이 됐다. 오랜기간 묵묵히 승인을 기다렸던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은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투자금을 되돌려받을 수 있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직원들 역시 슬롯 및 노선 반납 조건으로 인해 고용불안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 공정위의 결정에 반발하는 모습이다. 

 

◆ 슬롯 일부 반납·국제노선 재분배 조건

앞서 대한항공은 지난해 11월 산업은행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주식 중 63.88%를 취득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지난 1월 공정위에 기업결합을 신고했다. 

공정위는 곧바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에 나섰다.

특히 대한항공과 계열사인 진에어, 아시아나항공과 계열사인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5개 항공사가 운항 중인 250개 노선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항공업계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할 경우 국제선 여객노선의 주요 화물노선 점유율은 70%를 상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의 분석이 정확한다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쳐진 새로운 항공사는 항공업계에서 독점사업자에 가까운 점유율을 갖게 된다. 공정위가 시장지배적 사업자(독점 및 과점사업자)로 구분짓는 점유율 50%를 휠씬 넘어서기 때문이다. 

공정위에 이에 따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결합 승인 조건으로 '슬롯 일부 반납'과 함께 '국제 운수권 재분재' 등의 시정조치를 전면에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 합병에 따른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슬롯 일부 반납과 운수권 재분배 등의 시정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 뉴시스
공정거래위원회 ⓒ 뉴시스

공정위 측 관계자는 "두 회사의 결합 후 독점이 발생하는 노선은 대부분 규제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납하게 되는 슬롯과 운수권은 향후 국토부를 통해 국내저비용항공사(LCC)과 외국계항공사들에 재분배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공정위는 슬롯 일부 반납과 운수권 재분배 등 시정조치가 이행될 때까지 각 노선의 운임 인상 제한, 공급 축소 금지, 서비스 축소 금지 등의 조치도 부과한다. 

 

◆ 한진·산은의 '항공빅딜' 무산되나

공정위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추진해왔던 한진그룹과 산업은행은 허탈한 분위기다. 공정위의 승인 조건을 받아들이게 되면 당초 예상했던 항공빅딜 시너지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진그룹과 산업은행은 그동안 두 회사의 통합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고 항공산업의 글로벌경쟁력을 높이겠다면서 '항공빅딜'을 추진해왔다. 국제선 여객수송 기준 18위의 대한항공과 32위인 아시아나항공으 통합해 글로벌 Top10 항공사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위의 기업결합 선결조건을 받아들일 경우 한진그룹과 산은이 기획했던 항공빅딜의 꿈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먼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보유 중인 슬롯을 일부 반납할 경우 LCC와 외국 항공사가 반납된 슬롯을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슬롯 재분배 여부는 공항 혼잡성을 기준으로 나뉘는데, 가장 여유로운 레벨1부터 가장 혼잡성 레벨3으로 구분된다. 레벨3으로 분류된 공항의 경우에는 슬롯 재분배 대상이 되지만, 레벨1의 공항은 슬롯 재분배 대상에서 빠진다. 

문제는 레벨3으로 분류된 공항들이 글로벌 허브공항이란 점이다. 대표적인 곳으로는 인천공항과 , 런던 히드로 공항, 파리 드골공항, 뉴욕의 JFK공항 등이 있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글로벌 허브공항의 슬롯을 반납하게 될 경우 곧바로 여객 운송 능력이 줄어들게 된다. 게다가 허브공항의 특성상 환승여객 비중도 높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여객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운수권 재분배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일부 노선의 운수권을 반납할 경우 항공법상 국내 항공사들이 해당 운수권을 재분배 받게 된다. 

산은 내 한 관계자는 "공정위가 기업결합 조건이 이행될 경우 당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합병시키려 했던 근본적인 이유가 사라질 수 있다"면서 "공정위가 고심 끝에 결론을 내렸겠지만, 이 조건은 글로벌 항공사의 출현을 막고, 외국계항공사들만 웃게 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조건부 통합시 대규모 정리해고 가능성도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 결정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에게 큰 후폭풍을 줄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합병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 가능성이 이미 제기된 상황에서 조건부 승인 요건을 맞출 경우 대규모 정리해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당초 한진그룹과 산은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통합해 글로벌 Top10 규모의 대형 항공사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두 회사를 통합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면서 인력구조조정을 최소화하고,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의도였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이와 관련 지난 11월 "미래경쟁력을 훼손할 정도로 운수권을 축소하거나 슬롯을 줄인다면 사업량 유지를 전제로 한 고용유지, 경쟁력 제고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 뉴시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이와 관련 지난 11월 "미래경쟁력을 훼손할 정도로 운수권을 축소하거나 슬롯을 줄인다면 사업량 유지를 전제로 한 고용유지, 경쟁력 제고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 뉴시스

그러나 기업결합 심사를 맡은 공정위가 선결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직원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슬롯·운수권 재분배가 진행될 경우 통합항공사의 규모는 현 두 회사를 유지했을 때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이와 관련 지난 11월 "미래경쟁력을 훼손할 정도로 운수권을 축소하거나 슬롯을 줄인다면 사업량 유지를 전제로 한 고용유지, 경쟁력 제고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항공은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 지연으로 인해 아시아나항공 지분 취득 예정일을 올해 12월31일에서 내년 3월31일로 3개월 더 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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