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 의혹 공정수사 지시... 대검 무혐의 처분
여론 찬반 갈려... ‘상식적·정당한 지휘권 행사’ VS ‘직권남용·법치파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 [출처 뉴시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 [출처 뉴시스]

유죄판결이 확정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에 대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직접 ‘기소가능성을 심의하라'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이후 파장이 커지고 있다.

대검찰청은 20일 한명숙 전 총리 관련 모해위증 의혹 사건에 대해 무혐의 종결하기로 최종 결정하고, 21일 법무부에 보고했다. 이에 따라 한 전 총리 위증 의혹 사건은 최종 종결됐다.

전국 고검장·대검 부장들은 19일, 11시간30분에 이르는 마라톤 회의 끝에 사건 공소시효를 사흘 앞둔 재소자 김 모 씨를 기존 대검의 판단대로 불기소하기로 의결했다.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 대검 부장(검사장급) 7명, 전국 고검장 6명 등 14명이 표결에 참여했다. 이 중 10명이 불기소 의견, 기소 의견 2명, 2명은 기권했다.

앞서 박범계 장관은 17일, 대검찰청이 불기소 처분한 ‘한명숙 수사팀 모해위증 의혹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대검 부장회의를 열어 위증했다고 지목된 증인 김 모 씨의 공소시효가 끝나는 오는 22일까지 기소 여부를 다시 결정하라고 검찰총장 직무대행인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에게 지휘했다.

대검이 지난 5일 부부장검사급 검찰연구관 회의를 열어 수감자 한 모 씨 등이 제기한 전·현직 검사 16명에 대한 모해위증 사건을 혐의 없음 취지로 종결한 것에 대한 수사지휘권 발동이다.

박 장관은 수사지휘서에서 “(대검은) 사건 조사를 담당해온 한동수 감찰부장과 임은정 검사(대검 감찰정책연구관)가 최종 판단에 참여하지 않은 채 결론을 냈다”며 “실체 진실 발견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박 장관은 “대검 감찰부장은 작년 9월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으로 발령 난 임은정 검사에게 검토조사를 지시해 왔는데, 대검은 임 검사에 대해 직무대리 발령을 내주지 않았다”며 “법무부가 임 검사에게 수사권한을 부여했는데도 대검이 임 검사의 사건 담당에 부정적이었다”고 했다.

한 감찰부장 지시로 사건을 검토하던 임 검사는 지난달 26일 최 씨와 김 씨를 기소하겠다고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은 사퇴 직전인 지난 2일 허정수 감찰3과장을 사건 주임검사로 전격 지정하면서 기소 절차는 중단됐다.

대검은 5일 “(한 전 총리) 과거 재판 관련 증인 2명 및 전·현직 검찰 공무원들에 대한 모해위증, 모해위증 교사 및 방조 등 민원 사건에 대해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 [출처= 뉴시스]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 [출처= 뉴시스]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발동에 여론 양분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해 여론이 찬반으로 갈렸다.

우선 박 장관의 전임인 추미애 전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번 (대검) 연구관 회의에선 기록을 보지 않은 사람들이 거수기 역할을 해서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며 “비합리적 의사 결정이었다고 (박) 장관은 판단을 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검찰이) 증인으로 하여금 허위 진술을 하게 해 증거를 날조한 것”이라며 “장관으로선 이런 중대한 사건에 마땅히 해야 할 지휘권을 감독자로서 행사하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18일, 박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해 고육지책의 의지로 본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정 총리는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정책종합질의에 출석해 "한 전 총리 사건은 논란이 많았던 사건이라서 감찰을 하도록 한 것인데, 그 과정에서 누가 배제되기도 하고, 우여곡절이 있었던 거 같다"며 "공소시효도 22일로 끝나는 등 여러 종합적 판단으로 지휘권을 발동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런 논란이 지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서 수사지휘권 절차를 통해 어떤 형태로 결론 나든 종결될 수 있다면 그런대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대검은 지난해 9월부터 허위증언 강요의혹 사건을 조사해온 임 연구관을 배제하고, 서둘러 무혐의 처리했다”며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는 사안의 심각성과 검찰의 부적절한 처리 과정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조처로 보인다”라고 했다.

이어 “한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해 재소자들에게 연습을 시켜 법정에서 허위 증언을 강요했다는 의혹이 지난해 제기됐다. 사실이라면 형사사법 절차의 정당성이 부정되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최종적으로 한겨레는 “대검 부장회의가 감찰부장 등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재결정하도록 한 이번 수사지휘는 지극히 상식적”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세계일보는 사설에서 “법치 파괴”라고 표현했다. 세계일보는 “무리한 수사지휘권 행사로 검찰의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검찰과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됐다”라고 주장했다.

세계일보는 이미 대검이 공식 절차를 거쳐 내린 무혐의 처분인데, 박 장관이 이를 번복하겠다는 것은 ‘여권의 대모’ 격인 한 전 총리를 구명하기 위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세계일보는 “최근 검찰 인사에선 친정권 성향인 임은정 부장검사를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겸임 발령해 수사권까지 쥐여줬다. ‘자기편’ 검사를 이용해 한 전 총리를 수사·기소한 검사들에게 보복하겠다는 꼼수”라며 정권과 검찰의 갈등으로 번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국민의힘도 “직권 남용”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18일 성명을 통해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렸음에도 무리한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것은 사실상 ‘기소’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과 다름없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법무부 장관이 선택적 정의와 선택적 의심으로 구체적 사건을 판단하려 한다면 공정성과 중립성이 생명인 장관직을 유지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일보는 사설을 통해 “이처럼 주장이 엇갈리고, 심지어 검찰 내부에서조차 무혐의 처분이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에선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 불가피하다”며 “정말 문제될 게 없다면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지적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했다.

한편 2015년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한 전 총리 사건은 지난해 4월 재소자들이 1심 재판에서 한 증언은 검찰 지시에 따른 허위 증언이었다고 하자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에게 해당 사건이 맡겨졌다. 이 과정에서 대검에서 임 연구관의 조사를 막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임 연구관의 강압수사와 모해위증교사 의혹에 대해 기소해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 대검은 최근 무혐의로 결정했다. 이에 박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며 임 연구관의 의견을 들으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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