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택배산업 불공정 관행 개선 선포... ‘위법사항 조사-표준계약서 반영’ 등 제도개선 추진
하루 14시간 과로로 사망-사고 끊이지 않아... 정부-소비자, 택배인력 처우 개선 공감대

[출처= 뉴시스]
[출처= 뉴시스]

택배 노동자들이 잇단 과로사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살인적 노동강도로 택배노동자의 과로사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한해 사망자만 16명.  택배노조는  설 연휴를 앞둔 27일 총파업에 나서기로 했다. 

정부와 여당은 21일 해결책을 내놨다. 택배 분류작업을 회사에서 책임지고 삼야 배송을 금지시켰다. 택배 노동자는 주 60시간 이상 일할 수 없게 됐다. 당장 설 연휴 물류 대란은 피했다. 근무시간이 줄어든 만큼 배송 지연과 택배비 인상이 불가피했다. 또한 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 “택배종사자 처우 개선하겠다”

앞서 18일 국토교통부(장관 변창흠)와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조성욱), 고용노동부(장관 이재갑)도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20년 11월12일)의 후속조치로 택배산업 내 불공정 사례를 공개했다. 특별제보기간 운영결과, 총 75건의 신고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주요 불공정 유형으론 ▲수수료 편취·지연지급 ▲영업점의 비용 전가 ▲부당한 업무지시 ▲택배 분실·훼손 책임 일방적 전가 ▲부당한 계약해지 ▲노조활동 불이익 등이 있었다.

제보된 내용은 사실관계를 파악해 위법사항이 밝혀질 경우 관련 법령에 따라 엄중 조치하고, 택배사에도 유형별 불공정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개선을 요구할 예정이다. 특히 이 같은 불공정 관행‧계약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상반기까지 표준계약서를 마련하고, 이를 적극 보급할 계획이다.

아울러 택배종사자 처우 개선 등을 위한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이 지난 8일 국회를 통과한 만큼 불공정관행 근절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해 시행령‧시행규칙에 적극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생활물류법에 규정된 택배기사의 6년 계약갱신청구권 보장, 택배사업자에 종사자 안전관리 의무 부여 등 종사자 보호조치가 현장에서 잘 작동하도록 철저히 준비할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회, 사업자단체, 대형화주, 소비자 단체 등과 함께 하는 ‘사회적 논의기구’ 등을 통해 택배산업 내 불공정 관행을 개선해 공정한 산업질서를 확립 하겠다”며 “택배업이 안전하고, 질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죽어나가는 택배노동자의 비참한 삶의 현장

성탄절을 앞둔 지난달 23일 30대 롯데글로벌로지스(롯데택배)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숨졌다. 그는 사망 일주일여 전 동료에게 "오늘도 300개 넘음"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날은 밤 11시가 넘도록 일했다.

가족과 동료들에 따르면 매일 아침 6시 출근, 보통 밤 9시~10시 퇴근이었다. 하루 14~15시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하루 평균 350개~380개 물량을 배송했다. 그는 평소 가족들에게 ‘그만두고 싶다‘, ‘너무 힘들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지난해 10월20일엔 로젠택배 강서지점에서 40대 후반의 택배기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 씨는 목숨을 끊기 직전 A4용지 3장 분량의 유서를 작성해 함께 일하던 노조 조합원에게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유서엔 "현실은 200만원도 못 버는 일", "직원을 줄이기 위해 소장을 모집해 보증금을 받고, 권리금을 팔았다" 등 생활고와 현실을 반영한 내용들이 담겼다. 이 외에도 퇴사를 희망하는 김 씨에게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이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압박한 사례 등 회사의 갑질 내용이 적혔다.

이 같은 택배 노동자들의 가슴 아픈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과로로 인한 현장 사고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2일 로젠택배 택배노동자는 손가락이 레일에서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14일엔 한진택배 택배노동자가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 받았다. 또 7일에 부산의 롯데택배 노동자는 배달 중 쓰러졌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1월 1~13일 CJ대한통운 등 주요 택배사 4곳의 택배노동자 1862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성수기 택배노동자의 하루 근무시간은 14시간 이상이라는 응답이 41.6%로 가장 많았다.

특히 일명 ‘까대기’라고 하는 택배 분류작업에 성수기(62.6%), 비성수기(44.3%) 할 거 없이 하루 5시간 이상 소요했다. 택배 분류작업은 택배기사 과로의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택배 분류작업을 하는 별도 인력이 있는 경우는 22.0%에 그쳤다. 이 경우도 비용은 택배노동자 본인 부담(44.6%)이었다.

택배노동자들은 하루 배송물량이 성수기엔 350~400개(20.5%), 비성수기엔 250~300개(24.2%) 수준이라고 답했다. 성수기 배송물량이 급증할 경우 야간근무 등을 통해 본인이 모두 배송한다는 응답(77.7%)이 대부분이었다. 대체 인력 고용은 19.4%에 불과했다.

또한 택배노동자의 점심식사 등 하루 휴게시간은 30분미만(88.8%)이라는 응답이 대부분이었다. 택배노동자 절반 가까이(41.2%)가 업무 중 점심식사 횟수는 주 1일 이하였고, 주 2~3일(28.1%)이 뒤를 이었다.

점심식사 장소는 업무용 차량(39.5%)과 편의점(23.3%)이 각각 1, 2위로 전체 절반이 넘었다. 택배노동자 10명 중 6명은 끼니 해결할 시간도 없어 근무 도중이나 이동하며 때운다는 의미다.

아울러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노동자는 개인사업자 형태로 도급 계약을 맺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방치돼있다. 또 특수고용노동자의 대부분은 산재보험 적용 제외자다. 지난해 7월 기준 고용부 통계에 따르면, 택배 노동자 59.9%가 산재보험을 이탈했다.

한편 택배업체들은 약속한 '과로사 방지' 대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J대한통운과 롯데택배는 지난해 10월 택배노동자 과로사가 사회문제로 불거지자 ▲1000명 규모의 택배 분류 인력 투입 ▲택배 자동화설비 추가 도입 등을 담은 과로사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런 대책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었다. 일부 업체는 분류작업에 투입되는 추가인력 비용을 택배노동자에게 전가시키는 수법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택배노동자들이 근무 중 사망하는 사고가 계속되자 사회적으로도 택배인력 처우 개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배송 수수료를 올릴 경우 소비자가 부담하는 택배 요금이 늘어나더라도 감내하겠다는 국민적 여론도 긍정적이다.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택배 종사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라면 택배요금 인상을 감내할 수 있다'고 응답한 국민은 73.9%에 달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지난달 24일 택배노동자 사망 사건이 알려지자 급하게 전체회의를 열어 '생활물류법'을 여야 합의로 의결했다. 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은 “택배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이 같은 죽음의 행렬을 어떻게 멈출지 환노위에서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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